윤준식: 그러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안은 어디서 찾아봐야 될까요.
김형중: 저는 전통시장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 생각해요. 풀려고 그래도 갈피를 찾을 수가 없어요. 지붕 없는 길에 캐노피를 씌우고, 가게 조명을 밝게 하고, 전기를 더 넣어주고, 옹색하게나마 주차장 몇 면을 더 만들어주고... 이런 작업을 지난 20년 동안 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전통시장이 막 엄청나게 활성화되고 쾌적해졌느냐?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거든요. 인정할 걸 인정을 해야 된다는 거죠.
좀 큼지막한 상가 건물이나 상가 건물 한두 개 정도의 건물형 전통시장이나 골목에 한두 동 정도의 블록으로 구성된 골목형 전통시장 같은 경우 40~50년 된 2층 정도의 저층 저밀도 건물 한두 동 달랑 있는 거거든요.
이런 상태를 유지를 그대로 하면서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저는 현실적으로 없다. 그래서 이게 일종의 고르디우스의 매듭인 거죠. 손상시키지 않고 풀어내려고 하면 풀리지가 않는 거예요.
차를 가지고 들어가기도 힘들고, 장마철에는 우산 쓰고 장을 봐야 되고, 가게가 어디 있는지 찾으려면 한참 걸리는 이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 소비자에게 매력이나 뭐 친화성을 높여 매력도를 높일 만한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vl_DLrLlXc
그래서 건물을 비롯해 제반 시설을 현대화하는 걸 추진해야 전통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라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데가 노량진 수산시장이거든요. 완전히 극명하게 바뀌었지 않았습니까? 그건 건물을 새로 지었기 때문이거든요.
현재 시장 현대화가 추진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이에요. 자갈치시장, 노량진시장도 건물형 시장인 거죠. 건물 자체를 증·개축해서 시설을 현대화하는 방법이 있겠죠.
또 다른 한 가지로는 용산전자상가처럼 재개발을 추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용산전자상가는 주로 젊은 층들이 많이 소비를 하던 데지 않습니까? 그런데 e-커머스가 발전하면서 직접적으로 굉장히 크게 타격을 입었던 데가 여기에요...
용산전자상가가 특이한 점은 용산전자랜드를 포함해 원효상가, 나진상가, 선인상가 등 대형 상가 건물 여러 개가 밀집해 있는 상가군입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가 인접해 있기 때문에 순차 개발을 통해서 대부분의 지구가 호텔이나 컨벤션 센터로 바뀔 거거든요.
https://www.youtube.com/watch?v=Wx_zj64BXWw
윤준식: 이곳이 전자상가가 되기 전에는 여기도 농산물 시장이 있었대요. 우리나라 전자산업하면 세운상가가 유명했는데 컴퓨터 특수가 옮겨가면서 용산 전자상가가 생기기 시작한 거거든요. 용산 전자상가는 지금 없어진 터미널상가와 전자랜드 등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컴퓨터 부품이나 주변기기를 유통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용산 전자상가 초창기에 일하셨던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컴퓨터 부품 가지고 왔다갔다 하다보면, 상가 한쪽에서 시래기 말리는 듯한 냄새가 많이 났었다고... 그러니까 그 당시 거기도 청과물도매시장이 있었던 곳이었거든요.
그 맥락이 한 번 탈바꿈하면서 전자상가로 변신을 했던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이 노후화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끊어지기 시작하면서 컨벤션 센터로 한 번 더 변신하는 그런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형태로 재개발되는 방향을 이야기해주시는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uZWwoZ4BYUg
김형중: 용산전자상가 중 일부는 이미 건물 내부 연한이 다 지나서 철거해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전통시장들은 규모 면에서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이나 용산전자상가와는 비교가 안 되거든요. 규모가 작으니까 수익을 내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저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안으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마크탈을 예로 들고 싶어요. 한 11층 정도 되는 건물인데, 이 건물이 2014년에 지어진 복합 건물이거든요. 이 건물 저층부가 전통시장의 점포가 밀집돼 있는 공간이고, 그래서 건물 이름이 ‘마크탈(Markthal)’, 영어로 ‘마켓홀(Market Hall)’. 그러니까 큰 건물의 라운지 부분에 전통시장 점포를 입주시킨 거예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거를 지으면 어떻겠냐는 거죠.
원도심의 잘 알려진 전통시장을 보면 시장 자체의 면적이 되게 넓어요. 사실 밀도가 낮기 때문에, 주위와 비교하면 땅 자체가 엄청 넓거든요. 대표적인 사례로는 남대문시장, 방산시장, 연면적이 제일 넓은 서울 약령시장... 약령 시장은 위치가 외진 것이 문제가 있겠죠.
적어도 그 중 하나 정도를 선택해 고밀도로 개발해 ‘마크탈’ 같은 전통시장 재개발을 추진하는 거예요. 그나마 국내 비슷한 사례가 코엑스와 코엑스몰일 것 같은데, 빌딩에 식당이나 상점을 집적시키는 거죠. 중·상층부는 마크탈처럼 주거지랑 사무 공간으로 쓰는 것을 전제로 분양을 하면, 건물 신축에 따른 수익성 문제가 크게 해소가 될 거라고 보입니다.
윤준식: 미시적으로 본다면 시장 건물이 계획돼서 건축하는 기간 동안, 상인들이 어디서, 어떻게 장사하느냐는 문제가 있을 거예요.
김형중: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는 게, 밀도가 낮지 않습니까? 그러면 부지에 한 3~4층 정도 되는 가건물을 세워도 된다고 봐요. 일단 상가를 거기로 옮겨 임시 수용했다가 건물이 완성되면 입주하는 거죠. 시장 면적이 넓으니까, 이를테면 마크탈-1 밑에 상점가를 하나 넣어놓고, 마크탈-2 밑에 또 하나 넣고... 이런 식으로 순환개발을 할 수도 있을 거거든요.
윤준식: 지혜를 모아 연구해야 될 부분인 것 같은데, 선행 사례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네요.
김형중: 마크탈은 단순히 전통시장의 상점, 식당 등을 집적시켜 놓기만 한 공간은 아니고요.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영업시간, 보도자료, 그리고 입주한 상점 소개, 요즘에는 코로나19 관련된 각종 알림, 이런 것들이 쭉 나오거든요. 그래서 일종의 관광시장의 성격을 함께 띄고 있고, 건물 내부와 외부도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사실 노량진수산시장도 새로 지은 거 보면 예쁘고, 자갈치시장도 새로 지은 거 보면 생선 모양으로 만들어 굉장히 예쁘거든요. 이런 형태로 상가와 음식점 집적지를 만들면, 신규로 만드는 데기 때문에 청년들에게도 창업할 때 좋은 공간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셈이죠.
예전에 동대문 의류상가 청평화시장 쪽에 밀레오레와 두산타워를 만들던 당시 젊은 분들이 신규로 많이 창업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7BWYclkA1g&t=694s
윤준식: 제가 남대문시장이라든가 약령시장 이런 데를 재개발·재건축할 경우 상인들은 어떻게 하느냐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전통시장 전반을 놓고 본다면 어마어마한 점포와 상인 수가 될 것 같거든요. 마크탈 사례처럼 개발을 통해 많은 전통시장이 현대화되는 동시에 관광객까지 유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변한다는 거는 기대되긴 하지만, 이 문제가 단일 시장이 아니라 전체 전통시장으로 놓고 보면 상인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게 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좀 들어요.
김형중: 두 가지 문제가 있겠죠. 하나는 임대료 문제가 있을 거예요. 의외로 임대료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부 구역에 예외적으로 용적률이 높은 건물을 짓게 해주는 거죠. 대신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행정청에서 전통시장을 집어넣을 수 있는 공간을 기부체납을 받으면 돼요. 그러면 임대료를 그렇게 생각만큼 많이 상승시키지 않아도 됩니다.
기부체납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보통 분양가 기준으로 한 2조 원 정도 되는 주상복합 하나를 인허가하는 과정에서 기부체납 받는 가치가 수천 억 정도 되거든요. 이 정도면 건물 하나를 지을 돈이지 않습니까? “건물 하나 짓고 그 밑에 상가를 깨끗하게 조성해 원래 이곳에서 장사하고 있던 상인들을 입주시킬 테니 떼놔라” 아니면 저리에 정부나 지자체가 임대 후 다시 재임차하는 방법도 있거든요.
사실 행정이 가지는 권한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기 때문에 트레이드오프(Trade off)할 수 있는 점들이 있고, 이를 적절하게 활용을 하면 신축 건물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인 임대료 상승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겠지요.
윤준식: 그런데 상인들 입장에서는 당장의 생계도 문제지만 자기들이 그 터전을 떠나게 될 경우 고객을 잃는다는 두려움이 가장 크거든요? 그거는 아까 말씀드렸던 저밀도 지역 같은 경우에는 해소할 수 있는 순환개발방안을 통해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올 텐데... 고밀도 지역일 경우에는 좀 막막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죠.
김형중: 전통시장 중에 고밀도로 인식될 만한 건물 자체가 없거든요. 사실 높아봐야 한 6층 정도 되는데 전통시장 쪽에 가보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이 없지 않습니까? 매우 밀도가 낮다는 거예요.
윤준식: 마크탈 같은 건물이 서울의 전통시장 전체를 다 수용할 수는 없잖아요? 전통시장 개수도 많기 때문에 그러면 여기에 대한 대안도 좀 고민을 해봐야 될 것 같아요.
김형중: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에만 전통시장이 349개소, 점포는 한 6만 개 소 정도 됩니다. 그러면 이 6만 개의 점포를 마크탈을 모델로 한 건물에 다 입주시키겠다! 이거는 불가능하죠.
여기서 우리가 현실을 또 인정하고 들어가야 할 게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은 전통시장이 자연발생적으로 사회적, 경제적 불필요성에 의해 소멸되고 있다는 겁니다. 예전에 전통시장이 활성화됐던 건 거래를 할 수 있는 곳이 전통시장밖에 없어서였거든요.
만약에 지금 와서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아파트 상가, 편의점, 쇼핑몰, 백화점, 온라인 상거래를 다 금지한다고 해도 모든 전통시장이 지금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현실을 우리가 인정을 해야 되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의 모든 소매 소비자는 전통시장 상인을 위해서 존재해야 되는 건데, 그거는 또 부합하지 않죠.
지금의 전통시장 활성화 방안은 사회가 발전하고 소비자의 수요가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역사의 흐름을 정책자금을 투입해서 지연시키는 거거든요.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여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일단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서울 전역에 있는 전통시장을 다 어떻게 할 거냐 그러면, 두 가지 방법이 있겠죠. 전통시장이 있는 곳들은 애초에 밀도가 낮거든요. 땅이 그래서 굉장히 넓어요. 돌아다녀보면 시장이 생각보다도 넓습니다. 그래서 시장 안에 있는 가게를 못 찾는 거거든요.
근데 전통시장 자체의 수익성만을 배려해 시장 기능을 유지하면서 증개축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그러면 시장 기능이 상실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윤준식: 그럼 그게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르는 거네요?
김형중: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를 뿐만 아니라, 그 시장을 운영하고 있는 운영자-보통 주식회사 형태-가 망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게... 상가에 있는 점포들이 다 공실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게...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게 모두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그럴 바에는 전통시장 자체가 저층 건물들이 많기 때문에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시장 부지의 일부를 고밀도로 개발하면 점포 대부분을 입주시킬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 점포를 입주를 시키고 시장 이외의 건물은 분양하는 거죠. 그러면 이 시장 부지를 다시 활용하는 만큼 충분히 수익이 나고 활성화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시장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캐노피를 씌우고, 칠을 새로 하고, 하수관로를 새로 넣는 일을 계속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 이외의 일은 비용 투자가 많은데 비해 수익이 없기 때문이거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시장 대부분의 입지가 굉장히 좋아요. 창업보육센터나 청년 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들이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임대료가 저렴한 한적한 곳에 있거나 공간 제약 때문에 기능이 흩어져 있습니다. 새로운 시장공간이 조성되고 나면, 지자체에서 층단위로 임차한다거나 기부체납을 받는다거나 해서 창업지원시설이나 장애인 복지시설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죠.
윤준식: 입지가 좋기 때문에 시민사회를 위한 부대시설까지도 집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계속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시장 기능이 더더욱 활성화될 수밖에 없게 만들어주는 거네요. 입지 자체도 좋지만 상권 자체도 더 활성화 시킬 수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하드웨어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청년들이 전통시장 등에서 점포 창업을 하기가 어려운데, 전통시장과 연계한 응용 창업으로 갈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전통시장이 자연스럽게 온라인화가 될 수 있는 거고... 또 요즘 배송이 되게 중요해졌잖아요? 전통시장도 쿠팡처럼 주문만 하면 당일배송해 주는 서비스를 열 수 있다든지... 이런 다양한 응용 상황이 나올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하나, 전통시장을 이용하시는 분들이 보통 세대로 따지면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이 많이 이용을 하시거든요? 이분들의 어려움 중에 하나가 온라인 접근성이 떨어져요. 그 문제를 해소해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반들도 조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형중: 어르신들 얘기를 하셔서 기억이 나는데... 일단 마크탈 같은 경우는 휠체어가 다닐 수 있어요. 지금 어르신들 보면 보행 보조 장비를 이용하시는 분들이 다수 있는데... 그런 분들은 라이프스타일상 아직도 전통시장을 다니셔요. 그런데 전통시장 구조상 좁은 길과 계단 등 장을 보러 다니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거죠. 그런 것들을 해소할 수 있거든요.
배송문제는 서울시에서도 계속 추진하고 있는 정책인데, 공동배송제를 하기 위해서는 물건을 싣고 내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되거든요. 지금의 시장 구조에서는 뭘 실으러 가는 것도 힘들어요. 즉 서울시 정책은 크게 소비자들 입장에서 피부에 와 닿는 예산 투하가 아닌 거죠.
적은 예산 같아도 수십 년간 막대한 예산을 누적해 썼지만 여전히 전통시장 가면 우산 쓰고 다닌다고요. 여전히 백열전구 켜져 있고, 여전히 전선은 이리 길고 저리 뻗어 돌아다니다 보면 무섭고...
거기에서 좀 벗어나려면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전통시장을 활성화시켜야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탈피를 해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향적인 접근을 하면... 민간 자본을 투하해서 전통시장 위치에 건물을 지을 수 있을 만큼 수익이 나도록 해주고 반대급부로 시장을 그 안에 입주시키면, 그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밑에 있는 전통시장이 아파트 상가가 되는 거거든요.
윤준식: 이번 달에도 좋은 취재를 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특히 네덜란드의 막탈 사례 같은 경우... 공무원들이나 연구자분들이 해외 선진사례 되게 강조하시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되게 많이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로컬노믹스 2022년도 첫 번째 시간 이렇게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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