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코로나 일기(09)] 3월 12일(토) 주변 기운(氣運)이 중요합니다

조연호 작가 승인 2022.05.10 15:15 의견 0


다행히 아이들에게 심한 코로나 증상이 없었습니다. 안아(큰딸)도 기침을 거의 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둘 다 약을 먹지 않아도 됐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코로나의 절정을 넘기셨는지, 이틀 정도 고생하시더니 3일째부터는 훨씬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가족들이 건강을 회복하는 것과는 반대로 저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꾸준히 운동하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 자체가 건강한 사람한테 좋지 않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었습니다.

과거 일반인들이 동경하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직업병이라고 할 만한 증상들이 꽤 있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항상 우울한 분위기를 풍겼고, 법조계에 종사하는 지인들 역시 표정이 굳어져 있었습니다. 주변 환경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작년쯤 기(氣)를 수련하시는 분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조 선생, 주변에 힘들다고 하는 어르신들 꽤 많죠?”
“네, 저희 어머님도 그런 분이시죠.”
“그런데도 손주들 보는 거 보면 신기하지 않아요?”

사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기운이 없다고 하시면서도 손주들 돌보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긴 했습니다.

“서로 영향이 있나요?”
“아이들은 건강한 기운이 있어요. 그래서 어른들한테 좋은 기운을 나눠주기 때문에 그 어려운 아이 돌보기가 가능한 것이랍니다.”

바로 수긍하지는 못했지만, 일리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사람은 주변 분위기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바뀌니까요. 이번 대선을 보니, 대충 대구・경북에서 75%정도가 당선자를 지지했고, 호남에서 85%정도가 다른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이 정도면 압도적으로 지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지역에서 살면,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는 말도 할 수 없을 테고 어느 순간 본인도 모르게 정치적 성향도 바뀔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2030은 다를 것 같지만, 실제로 지역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면, 그들이 나이가 더 들었을 때 윗세대와 크게 다를 거로 기대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렇다고 두 지역 주민을 인위적으로 섞을 수도 없으니,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빈번한 교류와 더불어 정치꾼들이 정치적 이용을 그만둬야 합니다. 지역의 성장과 발전은 다양성과 개방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정치적 폐쇄성으로 인해 그 기회를 날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활개 치며 날아다니는 공간에서 인위적으로 기분을 전환하려고 계속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분명 한계가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서 산책도 하고 진한 커피도 사다가 마셨지만, 정신이 맑아지지 않았습니다. 좀처럼 둔탁한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다른 가족들이 조금씩 회복한다는 것이 위안이었죠.

“주아(작은딸)야, 오늘 주아의 마지막 코로나 날인데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격리 마지막 날을 기념하면서 주아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사주고 싶었습니다.

“피자 먹고 싶어요!!”

사실, 뭐든 사달라고는 하지만 잘 먹지 않는 주아였기에 다른 음식을 사줘도 괜찮았겠지만, 원하는 피자를 시켰습니다. 주아의 결정은 곧 우리 가족 저녁 만찬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안아는 컨디션을 거의 회복했으니 상관없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어떨지 몰랐습니다. 입맛이 없다고 하시면서 같은 음식을 두 번 이상 드시기 싫어하셨기에 피자를 안 드실 수도 있었죠. 하지만, 막상 피자가 오니 적당히 드셨고 저도 부지런히 남은 피자를 먹었습니다.

‘이제, 하나는 끝났다. 내일 또 하나 끝나는 구나!’

평소 같았으면 가족이 두런두런 앉아 노닥거릴 시간이었지만, 코로나는 그 시간을 빼앗아버렸습니다. 정확하게는 제가 들어 갈 공간이 없었죠. 아이들과 할머니는 텔레비전도 보고, 같이 식사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저는 그럴 수 없었죠. 다시 혼자만의 방에 들어가서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작은 공간, 그리고 쿠션이 거의 없는 뽀로로 매트리스, 그 위에 깔린 얇은 이불이 저의 침실이었습니다. 여전히 밤공기는 찼습니다. 그래도 서늘한 공기가 머리를 쓰다듬고, 마스크에 가려지지 않은 얼굴을 ‘스르렁’ 만져주니, 잠이 몰려옵니다. 그렇게 주아의 격리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계속)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