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는 계속 도는 데도, 이른 봄 아침의 차가움까지는 덥힐 수 없나 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릅니다. 누구한테 복수할 일도 없는데, 왜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지 …
‘코로나한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고생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혼자서 지금 상황에 불만을 털어놓는 중에 어머니 방 쪽에서 기침 소리가 들립니다. 어제보다 더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PCR검사 하세요. 이따가 아내가 올 텐데, 같이 다녀오세요.”
어제까지는 완강하게 거부하시던 어머니도 스스로 뭔가 달라진 게 느껴지셨는지,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오전 8시 30분, 아내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와서 어머니께서는 주차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아이들은 어제보다 컨디션이 좋아진 모습이었습니다. 정말 신나게 격리 생활을 즐기는 중이었습니다. 간단히 차려준 아침을 먹고, 열심히 노는 소리가 들립니다.
두 아이 모두 아픈 데가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주아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약도 주지 않았습니다. 안아만 간헐적으로 큭큭 기침을 해서 조제해 온 약을 꾸준히 먹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챙겨주고 간식을 챙겨주고 설거지를 하는 게 주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가끔 아이들 방을 청소해줬고요.
아이들은 평일인지, 휴일인지 구분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대통령 선거 날이니 어차피 학교는 가지 않았겠죠. 차라리 학기 초에 걸린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워낙 많은 아이들이 확진되다 보니,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으니까요. 이제 어머니께서 확진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혹 어머니께서 확진이 되시면, 전 또 PCR 검사를 해야 했습니다. 이번에 하게 되면 작년 11월부터 총 여섯 번, 콧속을 헤집게 내버려둬야 하네요.
오전 10시쯤 되니 어머니께서 돌아 오셨습니다. 기분이 별로시네요. 그리고 이후 계속 기침을 하셨습니다. 선거 전에 투표를 하셔서 투표에 대한 부담은 없었지만, 대신 코로나에 대한 부담이 커졌습니다.
대선 후보 모두 자신을 찍으면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큰 소리 치지만, 사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도긴개긴’, ‘오십보백보’라는 말이 딱 어울릴만한 그런 선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하는 데, 이번 선거는 ‘최악 아니면, 차악’이니 투표하는 것 자체가 범죄를 저지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보니, 투표율이 70% 후반을 찍었는데 역시 매스 미디어의 선거 홍보 효과가 대단한 듯합니다. 투표하지 않으면 왠지 권리를 포기하고 의무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여기게 하니, 투표장에 달려가도록 하는 것이죠. 뭐 저만의 생각입니다. 어쨌든 만족의 여부를 떠나 “저 사람이 되면 안 되잖아!!”라는 마음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어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도 코로나 걸린 거 같다.”
몸이 달라진 걸 확실하게 느끼신 듯했습니다. 기침도 더 자주하시고 더 심했습니다.
‘아, 이제 안 걸린 사람은 나 밖에 없구나.’
어쨌든 어머니께서도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스스로 격리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식사를 챙겨줘야 할 사람이 3명으로 늘었습니다.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삼계탕과 초밥을 사오기도 했고, 지인들이 보내 준 죽 쿠폰으로 죽을 사서 방에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가장 작은 방에 이부자리를 가지고 들어가서 저만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집안 구석구석에 소독제를 뿌렸습니다. 화장실을 사용할 때도 소독제를 뿌리면서 사용했고요.
투표가 끝난 후 사전 투표결과 예측을 보니, 근소한 차이로 야당 후보의 승리가 예측됐습니다. 역대 최소 차이라고 합니다. 지지율차이는 최소지만, 최소 득표수 차는 박정희 vs 윤보선(5대 대통령 선거 약 15만 표 차이) 때가 더 적었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며, 제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이 공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을 확률은 후보들의 득표율 차이보다 클까? 적을까?’
저에게 중요한 것은 두 대선 후보의 득표율이 아니라, 어머니의 코로나 확진 여부와 저의 건강이었습니다. 둘 중 누가 대통령이 되도 지금 당면한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을 테니까요. 아무튼 아직 다음 날이 오지 않았기에, 실 날 같은 희망을 가지고 또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아마 투표장에 달려가서 투표한 유권자의 마음에는 ‘저 사람이 되면 내가 더 힘들어 질지도 몰라!’와 같은 불안감이 있었겠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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