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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일기(04)] 3월 7일(월) 왜 나도 격리된 느낌이지?

조연호 작가 승인 2022.04.27 16:00 | 최종 수정 2022.05.02 23:07 의견 0

아침에 일어나 주아의 체온을 재보니, 다행히 높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절하게 코로나가 아니기를 바랐습니다. 신속항원 검사의 오류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이미, 토요일 오후부터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가족들의 마음도 저 이상으로 간절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오전 9시가 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 9시 20분쯤, 문자가 왔습니다. ‘확진’이었습니다. 실망감으로 낙심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온 가족에게 알려야 했으니까요.

회사에 출근한 아내에게 가장 먼저 확진 결과를 알렸고, 어린이집에 통보했습니다. 그리고 안아의 학교에 연락해서 등교하지 않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좁은 집이 더 좁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주아가 가장 큰 방(엄마, 아빠가 사용하는 방)에 격리되고 안아는 공부방에 들어가고 할머니는 원래 사용하던 방에 잠시 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런 이동이 있은 후에 언니 안아와 고령인 할머니께도 각별히 주의하시라고 말씀드렸고요. 주아는 어쩔 수 없이 혼자 큰 방에 격리돼 있어야 했습니다. 다른 질병과 달리, 아빠도 같이 있을 수 없었으니 5살짜리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 까요? 밥도 방에서 먹고,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떼쓰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섯 살 난 아이의 마음에도 ‘코로나는 위험하니,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2년이 넘는 시간은 다섯 살 아이도 성숙하게 만드는 병적인 힘이 있었나 봅니다.

안아는 학교에 등교하지 않으니 혼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아의 체온을 재보니 37.6도를 찍습니다. ‘어? 뭐지?’ 평소보다 체온이 높아서 당황스러운 마음에 아내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안아도 열이 나네!!”
“응? 일시적일 수도 있으니까, 기다려 보자.”
“알았어!”

한 시간 후 다시 체온을 측정해 보니, 37.8도입니다. ‘더 올랐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30분 후 다시 측정해 보니, 38.2도입니다. 이제 더 망설일 수 없었습니다. 해열제를 바로 먹이고, PCR 검사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연히 저도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이틀 동안 주아와 가장 밀접하게 접촉해 있었으니까요.

보건소에 전화를 하니, 오전 검사는 끝나서 오후 검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오후 2시부터 시작이지만, 대기자가 많을 테니 조금 일찍 오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줬습니다.

오후 한 시가 넘어서 안아를 데리고 보건소로 출발했습니다. 주변에 차를 댈 공간이 없어서 좁은 골목골목을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주차공간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공사장 옆 빈 자리를 발견했습니다. 주변에는 깨진 병 조각들이 널려 있어서 다른 차들이 피해간 듯했습니다.

그러나 혼자도 아니고 안아까지 동행했으니 망설일 수 없었죠. 조심스럽게 유리 조각을 피해서 전면 주차했습니다. 보통 후면주차를 하지만 좁디좁은 길에서 후면 주차는 사치였습니다. 진땀나는 주차를 마치고 보건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20분쯤이었습니다. 2시까지는 40분이 남았는데, 이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꼬불꼬불한 긴 줄 끝에 붙어 우리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줄 서 있는 분한테

“여기가 PCR검사 줄인가요?”라고 물었더니,
“네!”라는 퉁명스러운 답을 해줍니다.

사실, 뭐 좋은 일이라고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겠는가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톤이 굉장히 신경질적이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하기야 그 사람도 우리 바로 앞에 있을 뿐이었으니, 답답했을 듯합니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 오후 2시가 되니, 줄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여러 절차를 거쳐 안아와 저는 PCR검사를 했습니다. 절차가 복잡해서 어르신들은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검사 받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친절히 도와주시는 직원들로 인해서 막히지 않고 줄은 정상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던 순간이 왔습니다. 얼마 전에 해외에 다녀 올 때 검사했던 경험을 포함해서 5번 째 PCR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제발, 우리는 안 걸렸기를 …’

검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제 주아 한 방, 안아 한 방, 어머니 한 방, 저는 거실에 머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아도 비대면 진료로 약을 받아서 매끼 식사 후에 약을 먹였습니다. 열이 나는 폼이 확진이 거의 확실했습니다.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빨리 약을 먹고 병을 낫게 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주아 때는 그렇게 아니기를 바랐는데, 한 번 낙심을 하고 나니, 마음도 본능적으로 방어기제를 작동해 낙심에 대비하나 봅니다. 다행히 10살이 된 안아는 알약도 쉽게 먹을 수 있어서 약 먹이는 게 한결 편했습니다. 주아도 약 먹는 데 크게 어려움 없었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 딸들은 참 약을 잘 먹어!’ 라는 생각을 하면서 웃게 되네요.

이제 아빠의 간호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둘을 각 방에 격리시키고 거실에서 지내면서 밥도 주고, 간식도 줬습니다. 수시로 열도 체크했고요. 둘 다 열이 높지 않았지만, 37도 후반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38도가 넘지 않으면 해열제를 먹이지 않았는데, 둘 다 38도를 넘기지는 않아서 해열제를 더 먹이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안아의 검사 소식을 듣고 당분간 사무실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자가진단 결과 음성이었고 별다른 증상은 없어서 평소처럼 일을 할 수 있었고요. 몇 식구 되지 않는 가족, 넓지 않은 집에서 각자의 영역을 차지하고 철저히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두 딸은 현대판 아이들의 판도라 상자, 태블릿PC를 끼고 있어서 긴 시간을 아주 무용하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분주하게 이래저래 아이들을 챙기느라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매끼 식사를 챙기고 간식을 주고, 그러고 나서 설거지를 합니다. 2년 전만해도 설거지 할 때 고무장갑을 끼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고무장갑을 손에 낍니다. 과거에는 답답해서 맨 손으로 설거지를 했는데, 요즘에도 손이 부르트는 것이 싫어서 고무장갑을 낍니다. 특히, 코로나 가족 상황에서 설거지는 평소보다 몇 배가 늘어나니, 고무장갑은 필수였습니다. 환자용 그릇과 수저를 별도로 사용하는 데도 설거지하는 절대적 횟수는 평소보다 많았습니다. 아이들 혼자 격리된 방인데도 이상하게 평소보다 더 지저분해져서 청소도 더 자주해야했고요. 주아는 어리니 음식물을 흘리고 먹었습니다. 어쩔 수 없었죠. 그래도 울지 않고, 혼자 있어주니 정말 고마웠습니다.

밤이 돼 두 아이의 잠자리를 봐주고 전 거실 바닥에 누웠습니다. 쌀쌀한 초봄임에도 환기를 위해서 거실 창문을 조금씩 열어뒀기에 거실 아래 공기는 서늘했습니다. 요 대신 뽀로로 매트가 깔려있었고, 덮는 이불은 두껍지않은 홑이불이었고 제 몸에 둘렀습니다. 그리고 머리 밑에는 채 정리하지 못한 이불더미가 놓여졌습니다. 모든 방문이 다 닫혀있어서 거실에 있는 저 또한 격리된 느낌이었습니다.

‘뭐지? 나도 격리된 이 느낌은?’

코로나는 확진자만을 격리시킨 게 아니었습니다. 온 가족을 격리시켰습니다. 그런 힘이 2년 넘게 세상을 덮었으니, 이 세상이 정상일 수 있을까요? 남아도는 백신이 있어도 버릴망정 아프리카로 가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델타, 그리고 이제 오미크론. 인간의 이기적인 격리는 코로나 번성에 아주 좋은 거름이 됐습니다.

이제 눈꺼풀이 무거워집니다. 더 무거워서 들지 못하기 전에 아이들의 체온을 재봅니다. 밤 11시, 체온은 정상입니다. 그렇게 새벽에 몇 차례 더 확인했는데, 열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저만의 격리된 공간에서 잠시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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