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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알자] 개미의 눈물과 변하는 일본

정회주 전문위원 승인 2023.07.14 14:28 의견 0

지난 7월 8일은 아베 전 총리에 대한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된 날이다. 1주기 법요에서 아베 아키에 부인은 “지난해 일을 생각하면 아침부터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고 언급하며 대중 앞에서 눈물을 보였고, 각 언론은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일본에서 장기간 체류한 경험이 있는데,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눈물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었다. 특히 동일본대지진 당시 피해자들의 언론 인터뷰를 보아도 눈물 흘리는 장면이 보도된 것을 본 적이 없다.

이같은 원인은 역사적으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현재의 도쿄로 본거지로 옮긴 때부터 명치유신 이전까지를 ‘에도시대’라고 하는데, 이때 도쿄 주민 100만여 명 가운데 절반을 차지한 서민들이 사는 공간은 당시 도쿄 면적의 15%~20%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인구밀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을 뿐 아니라, 이들이 사는 건물들 또한 ‘나가야’(長屋)라고 부르는 서로 벽이 붙은 목조 연립주택이었다.

서민(町民)들의 나가야지역 모형(에도 도쿄박물관)

전형적인 나가야 모형(에도 도쿄박물관)


일반적으로 ‘나가야’는 목조라서 화재가 나기 쉬었으며, 옆집의 소음이 다 들리는 구조였다. 지진 등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게 되면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집을 부숴 방화선을 구축하였기 때문에 되도록 단순하게 지었고, 초기 진압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웃이 서로 감시하고 돕는 ‘도나리구미’(隣組) 혹은 ‘고닌구미’(5人組) 등의 제도도 있었다. 그래서 옆집 소음을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고, 서민들 스스로 주변의 눈치를 보며 의식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2차대전이 일어나면서 전사자가 발생하게 되었고, 가족이 전사하였다는 전사통지(死亡告知書)를 받게 되면 타인들 앞에서 울지 못했다. 만일 울게 되면 ‘비(非)국민’으로 낙인(泣けば非国民)찍혔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이 일본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쿠우키(空氣) 즉, 분위기를 따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동일본대지진 때도 가족의 죽음을 두고 공공장소에서 울지 못하고 이불속에서 울었던 것이다.

한편 필자 입장에서 눈길을 끄는 특이한 광고를 본 적이 있는데, 1990년대 일본의 대기업인 스즈요 그룹(鈴与グループ)의 TV CM이다. “본 적이 없는 것을 보고 싶어. 고래의 춤, 북국의 오로라, 개미의 눈물”이라는 내용인데, 일본의 속설에 따르면 개미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하는 걸로 비춰보아 이 광고는 일본인들이 우는 모습은 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베 전 총리 테러사건 1주기 즈음하여 아키에 부인이 대중 앞에서 우는 모습이 방송되는 것을 보며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일본도 변한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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