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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알자] 새해 사건사고와 일본인들의 트라우마

정회주 전문위원 승인 2024.01.13 14:00 | 최종 수정 2024.01.13 14:16 의견 0

새해 일본에서는 대규모 지진, 여객기 충돌사건, 대형화재 등이 계속되었다. 연초부터 발생한 이번 사고는 일본인들에게 트라우마가 작용하는 사건이다.

①가장 큰 것은 지난 1월 1일 발생한 이시카와현 노토 반도 지진이다. 최근에 발생한 진도 7의 지진(일본 기상청 기준)은 동일본대지진(2011)과 구마모토(2016), 홋카이도(2018) 지진이 있으며 이번에 발생한 이시카와현 노토 반도 지진(2024)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대체로 지진은 과거에 지진이 발생한 곳에서 또 다시 발생한다.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였던 동북 지방의 태평양 쪽 바다를 산리쿠오키(三陸沖)라고 하는데 1896년(明治三陸地震:21,959명 사망·실종)과 1933년(昭和三陸地震:3,064명사망·실종)에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향후에도 관동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직하지진과 관서지역을 포함한 남해해구지진 등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②다음으로 1월 2일 하네다공항에서 발생한 민항기 충돌사고다. 일본인들의 뇌리 속에 남아 있는 민항기 사고라면 1985년 8월 12일 발생한 ‘닛코기’((JAL을 일본항공, 즉 일본식 발음으로는 닛코-라고 한다) 추락사고다. 승객과 승무원 524명 가운데 4명만이 생존한 사고로, 아직까지 단독 항공기 사고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사고로 분류된다.

③마지막으로 1월 3일 키타 큐슈 토리마치(鳥町) 식당가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35개 점포를 포함한 2,900평방미터가 타버렸다. 2022년에도 ‘키타 큐슈의 부엌’(北九州の台所) 이라고 하는 ‘탄카 이치바’(旦過市場)에서도 2번이나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다. 전통적으로 오래된 목재 가옥이 많은 일본에서는 화재가 발생하게 되면 쉽게 확산되며, 그러다보니 육상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화재를 동반된다. 1921년 발생한 관동대지진의 경우 도쿄에서만 66,000여명(96%)이 화재로 인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역사적으로도 태풍이나 지진, 화산 분화는 수 년 혹은 수십 년마다 발생하였고, 이를 예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은 대재해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새해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오죽하면 일본인들은 지난 한 해 동안 무사했음을 축하하는 인사를 한다.(あ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고 인사한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일본인들은 작년의 무사에 대한 축하와 함께 새로운 한 해의 행운를 바라며 절 또는 신사에 참배를 하는데 이를 하츠모데(初詣)라고 한다. 도쿄 시내의 메이지진구(明治神宮), 나리타 공항 인근의 나리타야마 신쇼지(成田山 新勝寺)가 유명한데, 매년 각각 약 300만 명 정도가 참배를 한다.

특이한 것은 신사나 절에 간 참배객들의 대부분은 한 해의 길흉을 점치거나 부적을 사 온다. 8백만신(八百万神)이 있다고 하는 일본이니만큼 새해 연초부터 대형사고가 겹친 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 내각관방에서 실시한 일상생활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2020년부터 고민과 불안감이 증가했다는 결과가 있다.

일상생활에 대한 고민 및 불안 (출처: 일본 내각부 「国民生活に関する世論調査」)


한편, 대형 재해 및 재난이 발생하게 되면 국민 스스로 생존을 위한 조치도 강화된다. 일본 정부도 ‘한신·아와지 대지진’ 때 구조된 인원의 8할이 가족 및 주민에 의해 구조되었음을 사례로 들면서, 대규모 광역 지진 시 국가기관이 개입한 구조에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2014년 방재백서)한다. 특히, 유치원 때부터 배우는 재해대책 교육중에는 ‘자조(自助), 공조(共助), 공조(公助)’ 중에 생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자조(自助)라고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2020년 3월 SNS상에 갑자기 ‘아마비에’라는 요괴가 등장했다. ‘아마비에’는 히고국(현재의 구마모토 현)에서 내려져 전승되어 오던 요괴인데 풍년과 전염병을 예고하면서, 사람들에게 “전염병이 유행하면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갑자기 SNS에 유행했고, 이것이 SNS 뿐 아니라 술 상표에도 등장하는 등 굿즈로까지도 유행했다. ‘아마비에’가 유행한 것은 ‘아마비에’라는 요괴가 ①단지 오락적 기능을 할 뿐 아니라 ②역병의 퇴치를 원하는 현대인들의 신앙적 기능과 ③감염증 종식을 원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주위로 전파하는 신앙적 기능적 측면도 있다.

아마비에 (『肥後国海中の怪(アマビエの図)』 (출처: 京都大学附属図書館所蔵)


한편, 이 같은 적극적 혹은 소극적 대응과는 달리 대재해를 앞두고 일본 사회는 운명적인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현상도 뿌리 깊다. 이런 점은 일본 3대 고전 수필이라고 일컬어지는 카모 쵸메이(鴨長命)의 호죠키(方丈記)에 잘 나타나 있다. 저자인 쵸메이는 호죠키에서 그가 겪은 1177년의 대화재, 1180년의 천도 및 환도, 1181년부터 2년간의 대기근, 1185년 대지진의 체험을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인 카모는 첫 문장에서 “강물은 끊임없이 흐른다. 하지만 그 물은 원래 흐르던 물이 아니다. 계속 바뀌며 흐르기 때문이다. 강물이 흐르다 멈춰 있는 곳에 떠오른 물거품은 사라졌다가 다시 생긴다. 그래서 똑같은 모습으로 오래 머물러 있는 물거품은 하나도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집도 마찬가지다”라면서 지진, 태풍, 역병 등 인간의 힘이 맞설 수 없는 자연재해가 연속해서 일어나면 절망만 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여 담담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지진에 대비해 자조와 관련된 선택율의 추이 (출처: 일본 내각부 방재관련 여론조사)


종교 혹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의존하기도 하지만, 비상식량 및 물 등을 준비하는 등 실질적인 대비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일본에 있을 때 동일본대지진을 겪었던 우리 가족들은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일본서 돌아온 지 10년이 다되어 가는 데도 현관문 앞에는 핫팩을 충분히 넣은 도망백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동일본대지진이 났을 때 일본 친구에게 지진이 무서워 우리는 일본에서 못 살겠다고 했더니 당시 그 일본 친구는 지진보다 북한 미사일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한국이 더 무섭지 않느냐고 반문했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적어도 우리 국민들은 핫팩을 충분히 넣어 둔 도망백 정도는 현관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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