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갑진년(甲辰年)은 청룡의 해다.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다섯 번째 동물인 용은 열두 띠 동물 중 유일하게 상상 속의 동물이면서,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고 전하는 합성수(合成獸)의 모습이다. 용은 그 누구도 실물을 보지 못하지만, 그 모습을 누구나 알고 있다.
동아시아 용의 기원은 7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동북부 용 유적(내몽골 자치구에서 랴오닝성에 걸친 다수의 유적 등)은 밭농사(畑作)와 목축 문명의 기원이기도 한데, 태고의 용이 있었다는 곳은 대하(大河) 유역이 아닌 산악지역이었다. 이어서 중국 남부의 창장(長江) 유역의 벼농사(稻作) 및 어로 문명인 리앙주(良渚) 문명을 살펴보면 5,300년 전까지 용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여기서 용 문화 전파에 얽힌 흥미로운 가설은 5,700년 전과 4,200년 전, 2번에 걸친 한랭화에 의해 중국 동북부에서 밭농사(畑作) 목축을 하던 사람들이 남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용 신앙이 남쪽의 창장(長江) 문명으로 전파되었고, 이때를 기점으로 용의 속성이 산에서 물의 신으로 바뀌었다.(十二支神 용, 이어령 - 일본의 동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용과 현대문명, 하마다 요(濱田 陽)/이향숙(李 珦淑))
이와는 달리 초자연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용은 비늘 혹은 등딱지를 가진 종류(鱗介類)의 가장 우두머리, 혹은 물과의 관계와 다리 모습으로 인해 악어 기원설 등도 존재한다.(考古学から見る龍の源流2-黄河流域の考古発見を中心に, 龍谷大学 徐光輝)
한편, 일본에서 사용하는 용과 관련한 말과 속담은 ①용궁(竜宮), ②용신(竜神), ③용왕(竜王), ④용두사미(竜頭蛇尾), ⑤등용문(登竜門), ⑥‘역린을 건드리다(逆鱗に触れる)’ 와 같이 우리에게도 친숙한 말이 있는 반면, ⑦‘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雲は竜に従い、風は虎に従う:훌륭하고 총명한 군주 밑에는 반드시 현명한 신하가 있다.), ⑧‘용의 턱밑에 있는 보옥을 취한다’(竜の頷の珠を取る:어떤 목적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다), ⑨‘용의 물을 얻는 것과 같다’(竜の水を得る如し:용이 물을 얻고 승천하듯 기세를 얻어 크게 활약하는 것), ⑩‘용의 수염을 만지다’(竜の鬚を撫でる:지극히 위험한 일), ⑪‘용의 수염을 개미가 노리다’(竜の髭を蟻が狙う:약자가 강자에게 맞서다) 등 우리에는 생소한 속담과 표현이 있다.
일본의 용은 대륙의 용, 불교의 용, 토착 뱀신 등 3개의 요소가 녹아있다고 하는데, ①대륙의 용은 중국 황제의 예복을 본뜬 곤룡포가 있으며, 이는 대보(大宝) 율령이 정해진 701년부터 도입되어 활용되었다. ②불교의 용은 밀교승 쿠카이(空海)의 기우제(824년) 사례가 있는데 기우제 7일째가 되어도 효과가 없자 인도 부처의 수호신 용왕(善女龍王)을 불러들였고, 용왕은 큰 뱀의 머리에 올라탄 작은 금색용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용왕의 힘에 의해 3일간 큰비가 계속 내렸다고 한다. ③토착의 뱀신은 일본 전국 각지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죠몬 토기에도 뱀이 다수 그려져 있다. 머리와 꼬리가 8개 있다는 야마타노오로치(八岐大蛇)와 나라의 미와야마(三輪山)를 신체로 하는 오미와(大神)신사의 뱀신이 유명하다. 종합적으로 일본의 용이란 압도적인 권위를 발휘하며, 부처의 가르침을 지키는 수호신이고, 생과 사의 순환 등과 관련이 된 존재였다.(앞의 책, 濱田 陽/李 珦淑)
하지만 앞서 설명한 일본의 용은 우리와도 유사하면서도 시대, 지역 풍토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우리의 용은 순우리말로 ‘미르’라고 하면서 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등장하며, 전국에 용 관련 지명도 많다. 전국 고시 지명 10만 개 중 십이지 관련 지명은 4,109개(4.1%)이고 이 가운데 용 관련 지명은 1,261개로 가장 많다. 한편, 그리고 현대에서는 월남전 파병부대 부대의 이름인 청룡부대와 초창기 프로야구 팀의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
한편, 고인이 되신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용이 지식정보사회인 21세기에 융합의 상징이라면서 다양성과 변화를 포용한다고 했다. 내년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합성수(合成獸)이면서 신통력을 발휘하는 용처럼 서로 섞이고 융합하는 통합의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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