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는 긍정적인 신호를 다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긍정론은 환상일 수도 있다. 블록체인 거버넌스와 관련한 실험을 진행하고 정착하기까지는 다양한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정리하며 ‘블록체인 거버넌스’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마감하고자 한다.
◇모든 것은 대중에 달렸다
가장 큰 장애물은 역시 대중의 인지 부족이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 진화의 첫 혁명으로 ‘인지 혁명’을 주장했는데, 현재도 ‘인지’는 중요하다. 작동원리를 알지 못하면서 편리하게 사용하는 기기가 많다는 것은 이를 증명한다.
원리와 의미는 몰라도 몸으로 자연스레 사용하는 것들은 상당히 많다. 자동차 같은 경우는 기본적인 작동 방법과 안전과 관련한 규칙만 숙지해 면허증만 발급받으면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스마트폰이 왜 스마트폰으로 불리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스마트폰의 편리함을 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이나 거버넌스는 그 개념을 잘 모르면 사용하기 힘들다. 눈으로 보이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가상’, ‘암호’와 같은 개념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거버넌스도 마찬가지다 거버먼트와 거버넌스를 구분하지 못하면 두 가지 모두 유사한 형태라고 생각하기 쉽다.
앞서 덴마크의 ‘휘게’와 스마트 시티 1위 도시 ‘코펜하겐’을 언급하면서 시민 수준이 스마트 시티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도시나 국가의 시민, 국민의 수준이 블록체인 거버넌스의 실현을 판가름할 것이다. 최근의 저작물인 <디커플링>이라는 비즈니스 서적은 ‘기술’의 혁신으로 비즈니스 생태계가 변한 게 아니라 ‘사용자’가 변해서 비즈니스가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즉, 사용자의 활용능력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바보야! 문제는 규제야!
다음은 규제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규제를 풀어 준다는 말은 무성하지만, 쉽게 풀어주지 않는다. 사회안전과 공평성을 위해 규제가 필요할 수 있으나, 신기술 분야는 자유롭게 실험하고 기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분야에 따라 규제 정도를 달리해야만 한다. 그러나 특별히 차이점을 두고 규제를 풀고 조이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블록체인 강소국(스위스, 몰타,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싱가포르 등)은 있지만, 강대국은 없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기득권 보호도 하나의 원인이다. 인터넷이 세상을 변혁할 거라 했지만, 일부 승자독식으로 부자가 된 몇몇을 제외하면 특별히 세상이 평등해지거나 경제 성장에 크게 도움 된 건 아니다. 아울러 중국과 같이 인터넷을 통제하는 국가도 있다. 블록체인 역시 국가 통제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규제가 풀어지지 않는 한 블록체인 거버넌스의 실현은 어려울 것이다.
◇사행성 코인사태로 인한 부정적 인식
다음은 블록체인에 대한 오해이다. 우리나라는 블록체인 하면 비트코인을 떠올린다. 한 창 비트코인의 가치가 오를 때 수많은 사람이 투기했고, 어디서나 비트코인 이야기가 들렸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떡 낙!”으로 많은 사람이 오열했고, 가산을 탕진한 사람들이 등장했다.
사실, 블록체인은 암호화폐를 포함하는 시스템일 뿐인데 한 번의 사행과 몰락으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졌다. 덧붙여서 비트코인이 상승하고 있을 때 유사 암호화폐(원코인 등)가 등장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급속도로 확산했다.
이런 경험으로 대중의 마음에는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깊게 새겨졌고, 이를 해소할 기회나 방법이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초기 좋지 않은 편견은 블록체인과 대중과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했고, 이런 가운데 블록체인 거버넌스를 논하는 건 시기상조이다.
◇본질은 외면한 채 유행따라 번지는 것도 문제
무분별한 지역 화폐 발급도 문제다. 모든 도시가 암호화폐를 발행하는 건 아니지만, 지역 화폐를 발행했다는 지자체들의 홍보를 왕왕 볼 수 있다. 실험적으로 발행하는 건 좋고, 상용화를 위해 홍보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발행하고 홍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님비 현상’ 외에도 ‘핌피 현상(PIMFY syndrome)’이 만연하다. 사실 시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분야인데도 의원들의 치적을 위해서 다른 지역에서 하는 건 무조건하고 본다는 심산으로 예산을 낭비한다. 이런 생각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도 우리보다 인구도 많고 면적도 넓은 공동개최국 일본보다 월드컵 경기장을 많이 건설하게 만들었다. 우리 지자체 관내에도 이런 시설이 들어서야 하고, 우리 관내에도 월드컵 경기를 유치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하려고 하니, 모든 구가 나서서 걷고 싶은 거리 조성계획을 들이밀며 예산을 받아갔다. 문화 콘텐츠가 한 지역에서 흥하면 다른 지역에서 유사한 콘텐츠가 곧바로 생긴다. 분명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텐데, 만들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 똑같은 콘텐츠다.
지역 화폐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의 사용 의지, 사용 능력, 사용자 수 등을 고려하지 않고 지자체의 치적용으로 발급하고 있다. 정부의 보조가 있으니 무조건 한다는 식이다. 지역 화폐는 블록체인과 함께 발전하는 게 맞는데도 현재 지역 화폐는 상품권과 다르지 않다. 사용자 수준과 인식이 블록체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보여준다.
◇결국 ‘장(場)’을 형성해야 실현된다
요컨대, 현재 국내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의 상황을 볼 때 블록체인 자체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부족하다. 여기에 거버넌스 개념까지 추가한 ‘거버넌스 블록체인’의 실현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이에 “언젠가 되겠지”라는 낙관적인 생각으로 접근한다면, 케인즈가 말했듯 “장기적으로 볼 때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말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시기를 앞서 나오면 사장된다. 그러나 반대로 시기를 놓치면 기존에 유지하고 있던 여러 지위를 내려놔야 한다. 대표적인 필름회사 코닥이 사라졌고, 휴대폰 시장의 절대 강자 노키아가 미끄러졌다. SONY의 위상은 현재 애플과 삼성이 나눠 가졌다.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언제까지 기다려 주지는 않을 것이다. 블록체인과 거버넌스를 기대하는 건 현재 시스템을 개혁하고 평등한 미래를 기대하기에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 많은 사용자가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교육, 학습 프로그램부터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이 형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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