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박물관 (출처: 픽사베이)
◆ 상상력들
포드의 상상력이 없었다면, 자동차의 보편화는 더 늦어졌을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더 빠른 마차를 원했으니 말이다. 지금쯤에는 자동차가 도로에 가득하겠지만, 자동차 산업 발전은 좀 더 더디지 않았을까?
후일 GM이 시도한 할부제도가 없었다면, 자동차는 지금처럼 필수품이 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일시불로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과거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방송에 나와서 본인이 자·작곡한 “사랑할수록”이 그야말로 초대박을 치자 그랜저를 일시불로 샀다고 자랑한 적이 있는데, 자동차와 같은 고가품을 구매하는 일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소니(Sony)의 모리타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워크맨을 예로 들 수 있다. 워크맨의 상상력을 현실화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두 팔 한아름 안아야 하는 거대한 기계를 들고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근래로 들어와서 생각해보자. 스티브 잡스와 같은 ‘크리에이터’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2G폰을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답답하지 않은가?
인터넷 따로, 통화 따로, 영상 따로 모든 게 구분돼 있었던 시절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2000년 초만 해도 휴대용 기기로 정보 검색을 위해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와이파이 단말기와 노트북을 이용해야 했고, 전화통화는 핸드폰으로 했고, 영화를 보고 싶으면 DVD 플레이어, 음악은 MP3 플레이어를 각각 필요로 했다. 이 모든 것이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된 시점은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을 필두로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2010년대가 되어서다.
소니 <워크맨> (출처: 픽사베이)
◆ 블록체인 상상력과 현실화 조건
‘블록체인’ 역시 사토시 나카모토의 상상력이 없었다면, 아직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상의 현실화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현실 속에서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이러한 기술로 등장한 기기들을 생활 속에서 만끽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가 존재해야 한다.
우선, 기술적인 요소를 살펴보자. 최초로 비행기를 설계한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였지만, 그의 날고자 했던 꿈은 에디슨을 거쳐 라이트 형제에 이르러서야 이뤄진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전기자동차도 휘발유 자동차보다 앞선 1873년에 개발됐다. 당시엔 배터리의 중량이 무겁고 충전 시간이 너무 길어서 상용화할 수 없었다. 즉, 상상력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은 새로운 세대, 바로 사용자 문제다. 상상해보자. 조선 시대에 핸드폰이 나왔다 한들 얼마나 사용했을까?
실제로 구한말 테니스 치는 서양인 선교사들을 보면서 조선의 양반들은 “(테니스는) 하인들이나 시키지, 왜 힘들게 직접 하시오?”라고 질문했다고 하니, 아무리 좋은 기술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사용자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기술상품은 인간의 사용 욕구를 충족시켜 줄 때 혁신적인 제품이 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스마트시티’ 열풍이 불고 있는데, 2015년 부산과 대구에 스마트 실증단지를 선정하고 실행했으나 실패했다. 사용자가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고 잘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017년에 전세계 스마트시티 순위를 매겼는데 1위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이었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휘게(Hygge; 편안함, 따뜻함, 아늑함, 안락함.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뜻함)’의 정신을 자랑하는 국가가 최첨단인 스마트시티 1위를 했다는 게 언뜻 보면 이해되지 않는다. (참고로 아시아에서 가장 순위가 높았던 국가는 싱가포르로 2위이며, 서울이 21위다.)
대체로 유럽 선진국이 최상단의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순위는 크게 변동되지 않는 듯하다. 종종 혜성처럼 등장하는 국가나 도시가 있지만, 전체적인 상위권은 그들만의 리그다.
왜 그럴까? 기술개발은 기업이 선도할 수 있지만 사용자의 인식과 사용 수준은 현재 시민 수준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에서도 개발할 수 있지만, 보편적 사용자 수준은 하루아침에 향상될 수 없다는 의미다.
타일러 코웬 <거대한 침체> (예스24 제공)
◆ 거대한 침체: 시대의 총아 인터넷의 실패
블록체인의 연원도 이제 10년 정도이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름을 아는 시민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블록체인이라고 하면, ‘비트코인’ 이상 알지 못하는 시민이 대다수다.
인터넷이 현시대 최고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인터넷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터넷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인터넷”이 뭔지는 알기 때문이다. 현재 대통령 이름을 모르는 어린 아이도 인터넷은 안다.
물론, 블록체인 기술 수준이 나아가야 할 길은 멀고 여러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
먼저, 잠재적 사용자들의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비트코인 투자(기)로 크게 손해를 보고 땅을 치고 후회한 사람들은 쉽게 긍정적인 시각으로 전환하기 힘들 것이다.
심한 규제가 있어서 개발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사N라이프>에서 수개월 전에 연재한 <블록체인 국가론>에서 블록체인 강소국가 6개국(스위스,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싱가포르, 홍콩)의 특징을 살핀 후, 블록체인을 규제하는 국가들은 대체로 국가 규모가 크고, 중앙집권 국가라는 특징이 있음을 설명했다.
과거 인터넷이 발달할 때도 국가의 통제가 작지 않았다. 또한 인터넷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한 기술이다. 중국처럼 특정 국가의 웹사이트에 대한 접근이나 서비스를 차단하면 된다. 구글이 아무리 중국에 들어가고 싶어도 중국 정부가 막아서면 방법이 없다.
더욱이 공룡 포털은 이윤이 목적이어서 추상적인 가치를 위한 일에 위험을 무릎 쓰면서까지 모험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넷은 꽤 민주적인 기능을 발전시킬 거라 기대받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빙자한 포퓰리즘을 확산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고, 새로운 소수의 엘리트를 양산하는 데 도움을 줬을 뿐이다.
이에 따라 공격적으로 인터넷 기술을 비판한 작가도 있었다. 타일러 코웬은 <거대한 침체>라는 책에서 과거 세계 경제를 성장시켰던 파괴적인 기술은 새롭게 등장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혁명이라는 말에 찬물을 끼얹는 주장이다. 게다가 인터넷은 소비를 부추겼을 뿐이라고 냉소하고 있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었다고 주장하는 건 낭설이라는 말이다.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풍성하게 해준 건 맞지만 포르노의 양산을 초래했다. 세상이 바뀐 건 더더욱 아니다. 혁명이라는 말이 계속 언급돼 왔지만, 누구를 위한 혁명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어떨까? 이 질문이 핵심이 될 것이다. (계속)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