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의 안전의무 위반으로 발생하는 산업안전사고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살인법'을 제정한 국가들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 영화 <나쁜 나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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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안전의무 위반으로 인해 발생하는 산업안전사고에 대한 고민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호주, 영국, 캐나다는 ‘기업살인법’이라는 법을 제정했는데요. 지금까지 소개한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역시 호주, 영국, 캐나다의 법안들을 검토해 발의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 나라의 법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을까요
◆ 호주의 ‘산업살인법’
‘Crimes(Industrial Manslaughter) Amendment Act 2003’
호주는 개인 행위자의 범죄행위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기업의 형사책임을 묻습니다. 기업에 형사책임을 묻는 내용이 담긴 법으로는 1995년에 제정된 형법전(刑法典; Criminal Code Act 1995)이 있는데, 이 법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문화’에 관한 규정이 있다는 점입니다.
기업 내에 존재하는 태도, 정책, 규칙, 행동방침이나 관행을 총칭하는 것이 기업문화인데요. 안전을 무시하거나 안전관리를 등한시하도록 조장·묵인하는 기업 내부문화가 있다면 이것이 경영책임자의 방침이든 아니든 그 자체를 근거로 기업의 형사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눈여겨볼만한 점입니다.
이 법에 기초해서 호주의 수도 및 준주는 ‘Crimes(Industrial Manslaughter) Amendment Act 2003’를 제정했습니다. 이 법은 종사자, 하청 노동자, 재택근무자, 견습생, 수습생, 자원봉사자를 피해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고, 처벌대상으로는 기업(원청, 하청), 정부 상급관리자(장관, 최고경영자 등), 기업을 두고 있습니다. 양형시 벌금은 개인에게는 25만 달러(약 2억 8000만 원), 기업에는 125만 달러(약 14억 원)를 부과할 수 있고, 징역은 25년 형까지 가능하며 두 가지 처벌을 동시에 선고할 수 있습니다. 또 처벌 기업의 비용 최고한도도 500만 달러로 약 60억 원에 이릅니다.
(*준주(territory, 準州); 지방분권 및 연방제 전통이 강한 국가는 원칙적으로 연방마다 법률을 제정하고 있다. 준주는 분권을 가지지 않은 자치구로 중앙(수도)의 권력이 미치는 곳이다. 중앙집권이 강한 우리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 1987년 영국의‘Herald of Free Enterprise호’라는 여객선이 전복되며 192명의 승객과 선원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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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기업살인법’
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
영국의 기업살인법 제정은 1987년 ‘Herald of Free Enterprise호’라는 여객선이 전복되며 192명의 승객과 선원이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영국에는 당시 ‘동일성이론’을 근거로 한 기업처벌법이 있었습니다. 동일성이론은 기업 구성원을 ‘두뇌’와 ‘수족’으로 구분해서 ‘두뇌’에 해당하는 기업경영진의 행위를 기업의 행위로 간주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요.
‘Herald of Free Enterprise호 사건’에서 이 법은 적용의 한계를 보였습니다. 이 이론에서는 기업 경영진이 재해사망사고의 위험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를 문제 삼기 때문이었는데요. 이 기준이 충족되려면 고위경영진의 어떤 행위로 인해 타인의 생명·신체·재산에 대한 명백하고 심각한 위험이 발생했거나,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지하고도 에방조치를 취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경솔함’이 요구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하기란 역시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기업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10년 뒤에 1997년에는 스완지에서 런던으로 향하던 고속열차가 화물열차와 충돌해 7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기관사가 신호를 보지 못하고 지나칠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자동경보장치와 자동열차보호장치가 있어야 했으나 작동이 되지 않아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기업 처벌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이에 영국에서는 2007년 기업살인법을 제정하게 됩니다. 이 법에서는 기업이 ‘운영되고 조직되는 방식’의 실패로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그 운영 방식의 실패가 고위 경영진에 의한 것이라면 해당 기업을 기업살인죄로 처벌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기업 경영진의 조직 관리 책임 및 운영 실패를 근거로 기업을 처벌하는 것입니다.
◆ 캐나다 ‘단체의 형사책임법’
An Act to amend the criminal code(Criminal liability of organizations)
캐나다의 형사 책임법은 1992년 웨스트레이(Westray) 광산에서 발생한 가스폭발사고가 계기가 돼 제정됐습니다. 기업에 대한 형사책임을 인정할 수 있도록 제정한 법률입니다. 피해대상이 종사자와 일반시민으로 처벌대상은 공공단체, 법인, 협회, 회사, 동업, 노동조합, 지방자치단체, 사단을 광범위하게 포함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처벌대상에 대해서는 결과가 부상일 경우 개인에게 최대 10년의 징역을, 사망의 경우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고 무한벌금과 최대 15할의 피해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기업에 대해서는 전과기록을 남기고 보호관찰이 이뤄지며 무한벌금과 최대 15할의 피해자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세월호 5주기를 맞아 어떤 정치인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징하다’”고 말했고 시민들 중에도 “이젠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5년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아직도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고, 재발 방지 대책이라고 제대로 세워진 것도 없으며, 세월호 사고 원인조차 여전히 논란 속에 있습니다. 기업들의 안전 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발의한 기업처벌법이 갈 길도 멉니다.
우리나라 사망만인율(전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중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할 때 사용하는 지표)은 선진국 대비 2~3배 높은 수준으로 OECD 회원국 중에서는 독보적으로 높습니다. 호주·영국·캐나다는 기업살인법 제정 후 사망만인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졌습니다. 기업처벌법의 제정은 단순히 기업의 처벌을 강화한다는 의미 외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기업이 안전의무를 위반했을 때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건지에 대한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부 대응 능력에 따라 기업들이 안전 사고 방지를 위해 기울일 노력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국내에도 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세월호’라는 이름이 매년 4월이면 이슈가 되고 많은 정치인들이 이를 이용하기도 하면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추모일은 매년 돌아올 겁니다. “잊지않겠습니다”라는 문구처럼 세월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에 따라오는 대책들이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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