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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독일 통일(27)] 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칼럼니스트 취송 승인 2019.05.09 11:03 | 최종 수정 2019.11.20 14:01 의견 0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히틀러 치하의 독일군이 폴란드 서부 국경을 침공하고, 같은 해 12월 9일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전쟁이 개시되면서 막을 열었다. 이후 전세계가 휩쓸리게 된 2차 세계대전은 유럽에서는 1945년 5월 8일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전되었다.

태평양전쟁에서는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인류 최초의 원자탄이 투하된 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전되면서 최종적으로 끝났다. 전사자 2,500만 명 이상, 민간인 희생자 3,000만 명 이상이라는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나치에 의한 600만 명의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인 대량학살이 있었다.

미국은 1차대전 중에 이미 세계의 강자로 그리고 세계의 금고로 등장하였다. 2차대전 개전 2년간 미국은 중립을 지키면서 참전하지 않았지만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계기로 참전하였다. 이후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미국의 돈과 병력에 의한 전쟁으로, 종전 후 이 지역의 처리는 전적으로 미국에 의해 이루어졌다.

유럽의 경우 소련이 3천만 명 가까운 희생자를 내세우면서 전후 처리에 목소리를 냈지만, 여기서도 미국이 상황을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 전선 역시 미국의 물자에 의해 전쟁을 치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아직 중립을 취하던 1941년 3월에 발효하여 1945년 9월 2일에 끝난 ‘무기대여법(An Act to Promote the Defense of the United States. 일명 Lend-Lease)’에 의해 영국과 소련을 비롯한 연합국은 500억 달러의 군수품 지원을 받았다.

이 중 영국이 300억 달러 상당, 소련이 109억 달러 상당의 물품을 지원받았다. 당시 전비를 보면 미국이 3,600억 달러, 영국이 1,200억 달러, 소련이 930억 달러를 지출했다 이 수치에서 보면, 미국의 지원은 영국 전비의 4분의 1 상당, 소련 전비의 9분의 1 상당을 부담한 셈이다. 당시 소련 보유 항공기의 15%를 미국과 영국이 지원했고, 40만9526대의 트럭과 철로 그리고 1860량의 기관차, 1만1181량의 화차를 미국이 지원하였다. 미국은 트랙터와 콤바인 그리고 비료까지 지원하여 소련의 식량 생산에 이바지하였다.

종전 후 복구에 필요한 자금과 물자를 제공할 수 있는 국가도 미국 뿐이었다. 소련을 포함한 전 유럽의 산업시설은 재기 불능할 정도로 참혹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결국 전후 처리는 미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을 상대로 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전쟁은 전적으로 미국의 병력과 자금에 의하여 치러졌다. 전승국 대접을 받은 장개석의 중국은 일본군을 상대로 전쟁한다고 했지만 이미 대일 전쟁 중에 중국공산당과 내전을 벌이고 있었고, 전쟁이 끝날 무렵엔 공산당의 공세에 밀려서 미국의 지원 하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실정이었다.

전후 처리란 전쟁으로 변경된 영토 문제, 전쟁 배상 그리고 전범 처리 문제 등이다.

유럽의 전후 처리에서 소련이 3천만 명 가까운 희생자를 카드로 내세우고 나왔지만 이것만 가지고 미국과 대등하게 대접받을 수는 없었다. 스탈린의 소련은 전후 처리 과정에서 첫 번째 목표가 향후 소련의 안전 확보였다. 이는 예민한 영토 문제와 직결된다. 그래서 소련은 때로는 무리를 하면서도 자국 주변에 위성국 망 또는 고만고만 크기의 중립국이나 우호적인 국가 망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글쓴이: 취송(翠松) / 재야학자. 독일사회와 정치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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