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작가의 3.1혁명(10)] 3.1운동, 임시정부를 만드는 주춧돌이 되다

이동진 작가 승인 2019.05.28 10:11 의견 0

¶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수립되다

3.1운동이라는 거사를 마친 후 이 여세를 몰아 임시정부가 수립됩니다.

신한청년단은 독립된 정부체계를 만들고, 이후 독립전쟁을 추진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더해 3.1운동을 진행했습니다. 3.1운동을 시작으로 항일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된 정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1945년 12월 3일에 촬영한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 ⓒ 위키백과


3.1운동은 1919년 3월과 4월에 격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명동, 미국에서는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활발히 전개됩니다. 이에 부응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민족적 열망이 만나 만들어진 것이 상해 임시정부입니다. 상해임시정부를 통해 주권회복 운동, 일제투쟁의 역사가 이어져 오는 것이죠.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헌법, 정책, 제도 속에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3.1운동 이후 연해주와 서울, 상해까지 3개의 임시정부가 꾸려졌지만, 하나의 임시정부를 통해서 일본에 투쟁을 해야 더 빠른 독립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스위스 국회를 본 따 임시정부를 출범시켰습니다. 13개도 대표를 뽑았으며 각 출신지의 대표들이 모여 보직을 맡아 임시정부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임시정부의 첫 헌법인 ‘임시헌장’도 제정했습니다. 임시정부의 수반을 대통령으로 했으나 처음에는 임시의장이 실권을 지닌 형태로 운영되었습니다.

임시정부가 구성되었을 당시, 주요 보직자 중에는 아직 국내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인사가 완전하게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우선 차관급의 인물들을 먼저 뽑아 임시로 운영하다가 9월 6일부터 7일 새로운 정부에 걸맞게 헌법을 개정합니다. 이때 여러 인사들이 정부에 참여하며 통합상해임시정부로 출발하게 됩니다.

¶ 임시정부의 임시헌장, 오늘날 헌법에도 영향을 미치다

여기서 3.1운동이 갖는 가장 큰 역사적 의미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한반도의 권력이 황제의 손을 떠났으며 백성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정부가 구성되었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헌법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갔다고 되어있는 부분도 중요합니다. 임시정부부터 반영되었던 민주공화제가 지금 우리나라 헌법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대한민국 임시 헌장 ⓒ 위키백과


연재 첫 회 <왜 3.1혁명인가-“일반백성이 권력의 주체가 된 만세혁명” http://www.sisa-n.com/26745>에서도 신민회가 민주공화제를 주창했다는 설명을 드렸던 점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올해 임시정부 100주년을 크게 기렸던 이유도 현재 우리나라 정부의 명맥은 임시정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1919년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이것은 지금의 헌법에도 명시가 되어있습니다. 민주공화제는 현재까지도 헌법에 반영되어있고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 방식입니다.

임시정부 때 만들어진 임시헌장에 명시된 법 조항 중에는 오늘날에도 사용하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오히려 임시헌장의 내용은 오늘날의 대한민국 헌법보다 훨씬 진보적입니다. 나중에 임시정부는 1919년 9월, 임시 의장제에서 대통령제로 변화를 겪지만 법안의 내용은 국가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띱니다.

임시헌장의 내용들은 매우 이상적으로 쓰였기 때문에 실제 집행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아 후일 많이 수정 보완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법보다 경제적, 사회적, 법적 평등을 정확하게 명시했던 점은 앞으로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글쓴이: 이동진 / 시민들과 함께하는 역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