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대가 페르소나를 요구한다”-대진대 이경원 교수

[무의식과 트렌드] 페르소나가 상품이 되는 시대②

김혜령 기자 승인 2019.06.07 18:57 의견 0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페르소나(persona)’는 라틴어로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가 쓰던 ‘탈(가면)’을 뜻하는 말이 어원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에는 ‘가면을 쓴 인격’이라는 의미로 ‘페르소나’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페르소나’라는 말이 정착된 것은 칼 융의 저작을 통해서입니다. 융이 의식과 무의식을 연구하며 ‘페르소나’를 용어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시대에 ‘페르소나’라는 말이 오게 된 것일까요 이는 이미 기원전 6세기 경 고대 그리스 시대에 연극이 발달했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제사의 일환으로 연극이 공연되었고, 아크로폴리스 신전의 극장에 1만 7천명의 관중이 들어설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활약했던 3대 비극작가, 4대 희극작가의 작품이 지금도 공연되고 있고, 당대의 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을 통해 연극을 이론화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를 미루어 짐작해 본다면, ‘페르소나’라는 개념은 적어도 2,600년에 걸쳐 인류의 정서와 문화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문화와 철학, 종교와 심리에 대한 복합적인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는 분으로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 이경원 교수를 인터뷰했습니다.

▶요즘 자주 언급되고 있는 ‘페르소나’란 무엇일까요

☞이경원 교수:페르소나는 원래 가면을 의미합니다. 가면이라고 하니 얼핏 나쁜 의미로 여겨질 수 있는데, 마침 요즘 영화 <기생충>이 큰 화제가 되면서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인 배우 송강호’라는 말이 나온 것을 예로 들면 쉽게 이해할 듯합니다.

흔히 ‘배우는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하는데, 배우들은 배역이라는 페르소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들이죠. 배역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무당’인데요. 무당은 억울한 혼을 받아들여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하지만 인격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점에서는 배우와 무당의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기 위해서 무당과 배우를 언급하셨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둘 다 특수한 사례에 불과한데요... 일반인들에게서는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요

☞이경원 교수:일반인들도 자신이 처해있는 자리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집에서는 가장이지만, 회사에서는 만년과장, 낳아주신 부모님께는 여전히 보살핌을 받는 자식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이미 이렇게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사회를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페르소나가 많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있고, 어렵지 않게 사회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꿔 말해 자신이 얼마나 다양한 페르소나를 지녔는지에 따라 삶을 유연하게 살 수 있는지 없는지가 나옵니다.

▶최근 ‘페르소나’가 상품의 형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페르소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경원 교수:결론부터 간단히 말하면 지금 이 사회가 ‘페르소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성의 시대에서 감성의 시대로 옮겨오고 있기 때문인데, 다니엘 핑크의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다니엘 핑크는 저서를 통해 정보화 사회에서 컨셉과 감성의 사회로 변화하고 있음을 설명하며 ‘하이컨셉·하이터치 시대’라 표현했다.)

이성에서 감성이 중요한 시대로 변화하는 것은 철학의 변천과도 궤를 같이 합니다. 근대철학이 형성되기 시작하던 중세 유럽은 신학이 중요시 되던 시대였습니다. 신학은 ‘신(神)’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죠. 그러나 데카르트에 이르러 이성을 중시 여기는 계기가 마련되고 현대까지 지속됩니다.

기존의 종교관의 반발이 이성을 추앙하게 만든 이유였지만, 전체주의가 등장하는 등 이성 중심의 세계관이 또 다른 폐단을 낳았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이성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여기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감성입니다.

기존에는 과학적이고 분석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감성을 등한히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되며 감성으로 판단하고, 감성을 중요시 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방금 이성의 시대에서 감성의 시대로 변화된 게 ‘페르소나’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셨는데 너무 거시적이라 감이 잡히지 않는데요... 생활 속에서 감성이 두드러지고 있는 구체적인 근거는 어떤 것일까요

☞이경원 교수:살다보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부대끼게 되지요 그런데 서로 만나면 이성적이고 고상한 대화를 나누던가요 보통은 당장 느끼는 감각이나 감정에 따른 행동을 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더 많은 설득력을 지니기 때문이죠.

이성의 교류에서 감각의 교류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외모지상주의’입니다. 한 동안 “예쁘면 다 용서되지”라는 말이 사회에서 통용되었습니다. 웃지 못 할 현상이지만 우리 사회가 감각의 시대로 넘어오는 과도기 현상에서 보여준 일례입니다. 그만큼 내 외모나 내 겉모습은 상대에게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킵니다. 인간이 느끼는 감각 중 80%가 시각에서 온다는 통계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페르소나’ 현상은 ‘외모지상주의’가 좀 더 고상한 형태로 발전된 현상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런 현상이 단순히 외모, 외형에만 국한되지 않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한 반응이나 대응 역시 즉각적이면서 사회적으로 드러내야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평판을 얻습니다.(*편집자 주: 현 시대의 ICT 기술을 통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소셜미디어, SNS 서비스다.)

이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타인과 교류를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죠. 사람들은 남과 어울릴 줄 모르는 자기 폐쇄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만나서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반응들을 보이기 위해서는 나와는 또 다른 ‘페르소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언제든지 자신을 여러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좋은 사람, 사회생활을 잘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상황마다 맞는 ‘페르소나’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가 상황에 맞춰 보여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죠.

▶환언하면 ‘페르소나’가 상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사회가 그런 인간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군요

☞이경원 교수:그렇습니다. ‘페르소나’를 원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연예인’은 각광받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특히 아이돌 팬덤 현상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대중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청소년들이 장래희망으로 ‘연예인’, ‘아이돌’을 선호하는 것을 단순하게 보아서는 안 될 일인거죠.

그런데 ‘아이돌(idol)’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우상(偶像)’이라고 나옵니다. ‘아이돌 현상’은 일반인인 자신이 쓰고 싶은 가면인 ‘페르소나’를 ‘아이돌’에게 투영시키는 것인데, 이는 고대에 우상을 숭배하는 형식이 현대적으로 변모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를 탈종교시대라고 이야기 합니다. 기존의 종교가 힘과 권위를 잃는 대신 종교를 대신할만한 것들이 등장합니다. 훌리건을 보십시오. 이들에게 축구는 종교입니다. 축구에 목숨을 걸고 열광합니다. 탈종교시대의 세속화된 종교현상은 이렇게 나타납니다. 아이돌 팬덤 현상도 이런 현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찾고 있던 무언가를 내가 해소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그에 갈증을 느낍니다. 우상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자신을 찾지 못하고 헤메던 것을 찾았다고 인식합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신(神)’이나 ‘원리(이성)’과는 달리 ‘눈에 보이는 것(감각-감성)’이죠. 그로 인해 충분히 자기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페르소나’ 현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찾고 싶은 모습을 가면을 통해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타인과 교류하고 싶어하는 본인의 욕구를 충족합니다. 가면이라는 거짓된 자아를 썼지만, 이를 거짓이라고 볼 수는 없죠.

▲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BTS. '아미'라 불리는 이들의 팬덤 현상에서 탈종교시대의 종교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 BTS 페이스북

▶그렇게 되면 남에게 보여지는 ‘페르소나’에만 집착하게 되고 자신의 모습은 점점 잃어버리지 않을까요

☞이경원 교수:아닙니다. ‘페르소나’ 현상의 의미 속에는 변하지 않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녀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변하는 가치 속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으며 변하는 원동력은 변화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죠. 본질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가치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다양하게 변모해야 합니다.

이는 유교의 3경 중 하나인 주역(周易)이 설명해줍니다. 주역에는 변역(變易)·불역(不易)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 점이 ‘페르소나’와 ‘본질’의 관계를 투영해 줍니다. ‘변역(變易)’은 “천지만물은 양(陽)과 음(陰)의 기운이 변화하며 끊임없이 바뀐다”는 원리를 말합니다. 한편 ‘불역(不易)’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원리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인간의 내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변역(變易)’과 ‘불역(不易)’이라는 상반된 원리가 근본원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쓰면서도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기본은 변화하지 않아야 합니다.

▲ 대진대학교 이경원 교수 ⓒ이경원 교수


*이경원 교수

성균관대학교에서 유교철학과 한국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 석사, 서강대학교에서 가톨릭 석사학위를 했다. 철학과 종교의 넓은 지평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로한국종교학회, 한국신종교학회, 한국철학회, 한국동양철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대진대학교에서는 한국철학, 한국종교, 한국신종교를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