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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이 말하는 페르소나와 그림자 (上)

[무의식과 트렌드] 페르소나가 상품이 되는 시대③

김혜령 기자 승인 2019.06.18 15:29 의견 0

지난 4월 12일 방탄소년단(BTS)의 앨범 <MAP OF THE SOUL : PERSONA>가 출시와 함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습니다. 바로 이번 앨범에 모티브를 주었으며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을 확장하는데 영감을 준 심리학자 머리 스타인의 책 <융의 영혼의 지도>입니다.

▲ 방탄소년단. 'MAP OF THE SOUL: PERSONA'로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고있다. ⓒ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더 넓어진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을 알기 위해 방탄소년단의 팬들은 앨범과 함께 이 책을 구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아미>가 전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다보니 이 책 <융의 영혼의 지도>는 순식간에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머리 스타인 박사는 칼 융의 심리학을 가장 쉽게 풀어낸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책 <융의 영혼의 지도> 국내 번역판은 문예출판사가 출간했는데요... 문예출판사는 앨범 출시 직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 머리 스타인 박사가 로라 런던의 팟캐스트 <융을 말하다>과 진행했던 인터뷰를 번역해 공개하기도 했습니다.(https://speakingofjung.com/blog/2019/4/9/korean-translation-of-ep-42)

▲ 머리 스타인의 저서 '융의 영혼의 지도'. 방탄소년단의 앨범에 영감을 준 책으로 순식간에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예스24

방탄소년단 효과로 융의 심리학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증가한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부분의 언급이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만 머무르고 있고, 융의 심리학을 이해하는 데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심지어 잘못된 내용을 전하는 것도 있습니다. 페르소나에 대한 이해가 더욱 중요해진 시대적 분위기를 볼 때 안타까운 점도 많습니다. 이에 저희 <시사N라이프>는 <융의 영혼의 지도>에서 말하고 있는 융의 심리학 개념 중 ‘페르소나’와 ‘그림자’에 포커스를 맞춰 정리해 보았습니다.


¶ 페르소나, 내가 보여지고 싶은대로 연기하는 인격

심리학자 칼 융은 인간의 페르소나를 설명하며 그 원천을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조건과 요구에 따라 사회적 성격은 ①한편으로 사회의 기대와 요구에 맞춰지고, ②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사회적 목적과 열망에 맞춰진다”고 말이죠.

페르소나는 ‘나와 관계를 맺는 타인이 나를 이렇게 봐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모습 또는 역할로, 마치 배우가 연기를 통해 만들어내는 극중 인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페르소나를 연기하는 인물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극 안에서 연기되어 드러난 인물일 뿐이죠.

페르소나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채택된 심리학적, 사회적 구성물입니다. 우리는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는 연인을, 직장에서는 상사 혹은 파트너를, 가정에서는 아내, 남편, 아버지, 어머니를 연기합니다. 이것은 정해진 사회적 역할이며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 역할을 배우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상황마다 역할에 맞게 쓰는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합니다. 일종의 옷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운동을 할 때 운동복을 입고, 직장에 출근할 땐 유니폼을 입는 것처럼 말이죠.

페르소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저 모습을 흉내 내고, 흉내 내기 위해 궁리하는 과정에서 습득할 수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보며 웃어주는 모습을 보며 ‘아, 엄마는 아기를 위해 웃어주는구나’를 습득하고 따라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죠. 생각하지 않고, 습자지에 물이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익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페르소나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 사람은 모두 여러 개의 가면을 가지고 살아간다

페르소나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세상에 사는 타인과의 접점을 페르소나가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타인과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서 페르소나를 사용합니다.

여러 사람을 따라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여러 페르소나를 지니게 되고, 서로 다른 페르소나들이 부딪치며 충돌을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공적인 일을 하는 과정에서는 꼼꼼하고 치밀하지만, 가정에서 덤벙대는 모습은 두 가지 페르소나를 취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가족과 있을 때는 다정한 모습을 보이지만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는 냉철한 모습을 보이는데, 목소리나 억양, 버릇까지 달라지는 것도 이와 같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죠.

한편 페르소나는 하나로 고정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변화하고, 다른 환경을 만나면서 또 변화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패션 감각이 변화한다거나 좋아하는 음식이 달라지는 것도 페르소나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나이를 먹고 새로운 환경과 마주하면서 또 다른 페르소나들이 등장하죠.

¶ 페르소나에 지나치게 몰입하다보면 자기 자신을 잃는다

그러나 페르소나에 너무 몰입하면 자신을 잃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간혹 TV에서 배우들이 “배역에 너무 몰입하다보니 그 때의 감정에서 빠져나오는데 힘들었다”고 인터뷰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연속극에서 연인으로 나왔던 배우들이 방송이 끝나고 나서 실제 연인이 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지게 되는 이면에도 페르소나 때문일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페르소나를 ‘나’라고 착각하면 그 역할에 갇혀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리죠.

칼 융은 원칙적으로는 자아와 페르소나는 분리되어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자아는 생활 속의 역할을 자신이라 착각하는 경향이 있기에 페르소나에 갇히기도 합니다.

‘착한아이 증후군’을 예로 들어볼까요

‘착한아이 증후군’이란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지나치게 억압하며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타인에게 ‘착하게 보여야한다’는 페르소나가 강하게 작용한 것이죠. 그 역할에서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잃어버리고 그저 착하게 보이고 싶은 페르소나만 남은 것입니다. 이를 ‘페르소나의 덫’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현상이 심각해지면 정신치료를 받는데 까지 발전합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페르소나는 개인의 의식적인 생각과 느낌을 타자에게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하는 기능적 콤플렉스 중 하나입니다. 콤플렉스는 평상시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연상되는 상황과 마주하는 외부의 자극으로 억압된 기억이나 환상, 이미지 등을 떠올리게 해 의식에 동요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인간의 감정표현은 콤플렉스 때문에 나타납니다. 어떤 상황과 마주했을 때 기쁘다, 슬프다, 웃기다 괴롭다 이런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죠. 페르소나는 높은 자율성을 지니며 자아의 완전한 통제 아래 있지 않습니다.

¶ 그림자, 페르소나의 뒤에 감춰진 또다른 인격

‘그림자’는 자아가 제어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정신 요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융은 ‘그림자’를 ‘페르소나로 인해 억압된 다른 자아’라고 설명했습니다. 보통은 사람이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지만, 간혹 자신이 억제할 수 없는 충동적인 요소들이 튀어나오곤 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어린 아이를 떠올려볼까요. 갑자기 친구가 다가와 재미있어 보인다고 장난감을 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는 이때 장난감을 주기 싫다는 마음을 억누르고, 친구에게 양보를 합니다. 이때 친구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페르소나라고 본다면 장난감을 주기 싫어하는 마음은 그림자로 볼 수 있습니다. 페르소나로 인해 억눌러진 또 다른 모습이죠.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어느 하나를 떼고 볼 수는 없죠. 그림자는 마치 국가의 비밀정보 조직처럼 활동합니다. 내가 머리로 인지하지 못해도 방어적이고 자신만을 위한 행동들을 은연중에 하게 되지요. 흔히 우리가 말하는 무의식적인 나르시시즘, 자기중심적 행동, 이기심, 시기심 등입니다. (기독교에선 이것을 ‘7가지 죄(칠죄종)’ 즉 교만, 인색, 시기, 분노, 음욕, 탐욕, 나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모두 그림자를 안고 살아간다

모든 자아는 그림자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피할 수도 없습니다. 그림자를 눈치 채는 방법은 자신의 성찰보다는 타인에게 보이는 내 모습을 물어보는 편이 더 빠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림자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타자에게 투사합니다. 투사는 자신의 무의식에 있는 부분을 타인에게 부여하고, 그 모습이 그의 실체인 양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회사에서 야유회를 갈 때의 몇몇 상황을 가정해 볼까요

집결장소를 결정하는데, 상사가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으로 지정하며 다른 사원들에게 그곳으로 모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모습에 우리는 화가 납니다. 이런 반응을 무의식적 그림자가 투사되었다고 합니다. 상대방은 그림자 투사를 위한 연결고리를 제시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감정적인 반응이 일어나면 투사를 부정하고 자신이 느낀 감정과 자각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림자와 페르소나는 어떻게 형성될까요 어떤 성격이 입력되었을 때, 그 성격을 자아가 받아들이면 자아와 페르소나의 일부가 되고, 거절하면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림자가 됩니다. 둘은 필연적으로 공존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한쪽을 보완하거나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죠. 자신감 넘치는 페르소나 뒤에 수줍어서 남 앞에 나서고 싶지 않아하는 그림자가 숨어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실 진짜 자아에게는 페르소나나 그림자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원래 ‘자신’에게는 낯설게 느껴지죠.

사회적 통념으로 허용되는 페르소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문화’로 여겨지는 현상 역시 이면에 그림자를 감추고 있죠. 반문화란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하위문화를 말합니다. 일종의 저항운동이라고 볼 수 있죠. 반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반문화 페르소나를 사용해 사회에 적응합니다. 이들은 어쩌면 모범생이나 고상한 사람들의 모습을 참을 수 없어할지 모릅니다. 착한아이의 모습을 그림자로 지녔다고 할 수 있죠.

(하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