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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저널리스트 입장에서 중국 사회를 관찰하는 왕칭송의 실험 예술

사진작가 정영혁과 만나는 현대예술이야기(5)

사진작가 정영혁 승인 2019.06.26 12:31 의견 0

사진작가 이전 대학에서 페인팅을 전공한 왕칭송은 베이징을 기반으로 현재 중국에서뿐만이 아니라 서구에도 널리 알려진 사진작가이자 예술가이다. 중국 문화 혁명의 시작인 1966년 작은 지방-Hebei에서 출생한 왕칭송은 중국의 실험적인 예술, 즉 “아방가르드 예술avant-garde art” 과 “비공식적인 예술unofficial art”의 시기, 즉 제 3기라 구분이 되는 1990s 초반을 거쳐 후반부터 본격적인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시 말해 정치적인 문제점을 다루기보다는 사회의 구성원인 한 명으로 중국이 처한 당대의 소비문화 현상에 자신의 정신세계를 몰입하는 실험적인 사진 작업을 통해 중국 현대사진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이러한 중국 예술의 급진적인 변화는 1990s 초반, 홍콩의 Hanart T Z 갤러리에서 기획된 “China New Art, Post-1989” 전시가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소개되면서 중국의 실험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이 국제적인 관심을 이끌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

화가로써 출발한 왕칭송의 작업은 가우디 아트Gaudy Art,즉 중국식의 키치 예술(yansu)에 영향을 받았으나 1997년 셀프 포츄레이트를 시작으로 가우디 예술 운동의 페인팅을 포기하며, 독자적인 이념을 구축하며 서구의 자본주의와 중국의 사회주의, 중국의 전통과 오늘의 문화 상황이라는 이분법으로 객관적이지만 역설적으로 매우 독특한 지관을 드러내는 사진 작업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1998년에 제작된 셀프 포츄레이트-『Thinker』에서 서구의 자본주의 상징인 맥도날드의 패스트푸드가 중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몸을 이용해 재현하고 있었다. 1993년에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의 가장 번화가인 왕 푸징Wang Fujing에 문을 연 맥도날드 점에 만 명이라는 어마한 중국인이 햄버거, 프랜치 프라이 그리고 코카콜라를 맛보기 위해 방문했으며, 이 후로 평균 2-3일에 한번 꼴로 중국 전역에 맥도날드가 오픈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왕칭송은 패스트 음식 문화가 상업적으로 서구의 침입이며 동시에 이념적으로 모순을 초래한다는 개념으로 맥도날드 로고를 자신의 가슴에 새겨 서구 문화 침투에 대한 자신의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중국인에게 일종의 경각심을 상기시키게 되었다.

이 작업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1997년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하여 그곳의 맥도날드 점을 갔을 때 매우 조용하고 심지어 중국처럼 북적되는 사람도 없으며 청소하는 사람도 없는, 즉 너무나 중국과 대조되는 상황을 목격하고 여행을 마친 후 서구의 패스트 음식, 맥도날드가 가져온 중국의 새로운 문화 현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같은 브랜드인 맥도날드가 국가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를 생산하는 것에 대한 관찰의 결과물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여 1990년대 중국 시장의 변화, 개방정책에 따른 다국적 기업들의 유입에 따른 필수적인 사회 변화 현상에 발맞추어 변화되는 중국인들의 실질적인 삶에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그는 말한다. “나의 대부분의 작업은 내가 시각적으로 경험한 것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문화 혁명 이후 20년 동안 덩샤오핑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전략에 따른 경제 재건과 개방이라는 공산당 정책에 의해 급작스럽게 변하는 중국의 문화, 특히 서양의 것을 이해 혹은 받아들이기 위해 전통을 잃어가는 것 그리고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것에 대한 반영의 한 축을 가지고 있다.”

왕칭송의 사진이 지니고 있는 개념은 매우 실험적인 연출에 의해 재현된 이미지로써 매우 기록적인 사진임과 동시에 당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행위 예술가로서의 비평도 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그의 대형 칼라 사진 작업은 영화 감독처럼 거대한 무대를 채운 수많은 모델-협조자들에 의해 왕칭송의 카메라 화면이 채워지며, 그들을 통해 중국 전통의 예술이 지닌 유머와 현재 중국이 처한 물질만능주의에 따라 급속히 성장하는 소비문화를 융합하고 있는 것이다.

▲ Thinker, 180X90cm, 1998 ⓒ 왕칭송

2011년 왕칭송 사진전 [When Worlds Collide]를 기획한 국제사진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큐레이터 크리스토퍼 필립스Christopher Philips는 왕칭송의 작업을 현대 예술가, 미국의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 캐나다의 제프 월Jeff Wall 그리고 사회적인 관찰, 풍자, 과장적인 면에서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조지 그로츠George Grosz의 작업과 동일선상에 위치 시켰다.

크리스토 필립스의 비평을 예술의 형식 차원에서 왕칭송의 작업을 관찰하면 우리가 알고 있듯이 왕칭송의 거대한 칼라 사진들은 영화 세트장을 빌려 무대의 배경을 만들고 그리고 그 무대를 가득 채우는 수많은 모델들 때론 자신의 포함하여 모든 것을 조절한 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지적처럼 포스트 모더니즘 사진의 한 장르인 ‘무대화된 사진’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 형식에 수반되는 내용, 즉 중국이 지닌 전통을 기반으로 과거와 현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상업성에 따르는 물질만능주의로부터 인간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결국 왕칭송의 사진은 예술가의 직관을 통한 사회적인 관찰로부터 중국이 현재 처한 붐boom의 정도를 초과하는 것에 따르는 실망감의 결과물이다.

“나는 중국에서 최근에 발생되는 부에 대한 감각, 즉 깊이 없는 화려함이 못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중국 문명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상상을 위한 거대한 공간을 제공해주며, 오늘의 문화 양상을 통해서 내일을 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왕칭송은 말하고 있다.

▲ 2011년. 왕칭송의 작업실에서. ⓒ사진작가 정영혁

▶당신은 어린 시절(15세), 지방 소도시의 신문 사진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가

☞왕칭송: 모든 독자들은 신문의 사진을 접했을 때 그 사진의 보이지 않는 진실보다는 외형만을 보고 진실로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진의 조작을 통해 진실이 과장됨으로써 본래의 의미가 강조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사건의 전체적인 상황에서 사진가에 의해 한 부분만이 촬영되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한 나의 생각이 나의 사진에 반영되었다는 의미로써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일반적인 관점에서 비춰지는 ‘사실’에 대한 관찰을 통해 다양한 시각적인 문제점을 표출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의 조작과 과장의 측면에서 나의 사진 작업이 신문사진의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포토저널리즘 시각의 관점으로부터 사회적인 흥미를 기록한다는 입장에서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그럼 그 당시의 신문사진이 대중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었나

☞왕칭송: 내가 알기로는 1960년대에 중국의 정치적인 상황에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으나 사진으로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뉴스 사진이 등장했다. 그러니까 내가 15살 때다. 신문 사진은 주로 문화 혁명을 다루었으며, 공산당을 위한 선전으로 활용되었다. 신문 사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웅에 대해 사진을 찍었으며, 거짓을 통해서 그들의 업적에 대해 보도된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부터 사진가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페인팅을 포기하고 사진으로 전향한 이유가 무엇이며, 처음 사진을 접했을 때 어떤 작업을 했는가

☞왕칭송: 페인팅의 결과물, 즉 내 그림으로부터 나의 이야기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는 실망감이 나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사진에 흥미를 가지게 만들었다. 또한 나는 1997년 이후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며, 1996년 처음으로 사진을 접했는데 2000년 이전까지 포토 몽타쥬 작업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진이 예술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으며, 또한 내 자신이 사진가가 되길 원하지는 않았다. 2000년에 들어서야 나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필요함을 정확히 인식하게 됐다. 현대적인 것들의 표현을 위해 사진을 선택하게 됐다. 컴퓨터 조작에 흥미를 느꼈고 포토샵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예측하며 또한 손쉽게 수정을 할 수 있었다.

바로 이같은 장점에 매료되어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됨과 동시에 리얼리티를 재현할 때 사진이 가장 적합한 매체임을 깨달았다. 과거 독일의 포토 몽타쥬 작가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나 조지 글로츠George Grotz처럼 급변하는 중국의 경제·사회의 변화를 빨리 표현할 수 있는 매체도 사진이다.

▶초창기 시절 사진엔 작가 본인이 자주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왕칭송: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그 당시 나는 돈이 없어 모델을 구할 수 없었다. 스스로 여성으로 변신하기도 하는 등 내 몸을 이용하여 사진 작업을 하곤 했다. 결국 내 자신의 아이디어를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

개인적으로 결국 당신 자신의 몸을 이용한 것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하게 되었다. 만약 다른 사람의 신체를 이용했다면 아마도 당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반감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내 자신의 신체와 다른 사람의 신체를 이용한다는 것은 내 생각에 퍼포먼스라는 행위 예술의 한 단면으로 보면 될 것이다. 단순히 내가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 상황이 지닌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 혹은 새로운 사고를 통한 시각적 재현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이다. 급한 경우 내 와이프도 등장한다(하하).

▶최근의 작업에서도 당신 스스로가 모델이 되곤 했는데 과거와 달리 지금은 유명 예술인이 되었다. 내가 보기엔 당신 자체가 중국 현대사진의 선두주자로써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중국인의 목소리를 담고 싶은 것이 아닌가

☞왕칭송: 그렇다. 나는 항상 내가 경험한 시각적인 세계를 사진으로 재현하기 때문에 내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나를 통해서 중국인들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더 구체적으로 언급 하자면 나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내 신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가장 정확히 내 사고를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의 능력을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미세한 부분이지만 의상을 착용하고 순간적인 움직임 혹은 연출한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포즈를 다른 사람에게 지시하는 것으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다.

▶ 1998년부터 개념적인 사진 작업-Thinker(1998), Request Buddha(1999) 시리즈에서 셀프 포츄레이트를 제작했다. 이 작업에 대해 설명해달라

▲ Requesting Buddha Series No1, 180x110cm, 1999 ⓒ 왕칭송

☞왕칭송: 나는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다. 예를 들면, 중국에 유입된 서양의 것, 즉 서양 문화가 중국 사회에 파급된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서양의 맥도날드라는 패스트 푸드가 처음으로 중국에 도입된 것은 1993년이다. 이제 맥도날드는 중국 전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중국 음식 문화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게 됐다. 중국의 전통이 사라지는 대신 점점 서양의 것으로 대체되는 상황에 나는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것을 토대로 작업을 하게 됐다.

서양의 브랜드가 어떻게 다른 지역, 즉 중국에 정착한 것에 대한 사회적인 관점에서 중국 문화를 관찰한 기록의 작업이다. 나 자신의 몸을 이용한 것은 중국인들의 현재를 의미하는 것이며, 포토샵을 이용해 합성된 서양의 아이콘들은 중국 사회가 처한 소비문화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2003년에 제작된 <Follow Me,2003>는 보다 더 급진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문화의 충돌’로 느껴진다. 당대에 중국에 유입된 서양의 것과 중국의 것 그리고 세계화에 따르는 자연적인 문화 현상으로 비춰진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작업의 주된 관심 혹은 개념은 결국 당대에 처한 문화 대변자의 역할을 하는 것인가

☞왕칭송: 앞서 이야기 했듯이 나는 포토저널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과거 포토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사회와 문화의 기록을 통해 고발하는 것 이었다면 나는 그 사건의 중심에서 다시 재구성하는 방법론으로 중국을 관찰하는 것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중국은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특히 경제 성장률이 세계 최고이다. 그러나 그에 반해 중국의 전통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바로 이 문화 현상이 나를 사진작업으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화를 추구하고 있으나 전통과 고유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내 작업은 현대화에 따른 대중들의 삶에 대한 시각적 성찰을 담은 보고서이다.

이 사진은 1982년부터 CCTV의 영어 학습 프로그램으로부터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이다. 이는 모든 중국인들에게 국제적인 정세의 흐름에 맞춰 강요된 영어공부로 인한 사회적인 상황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거대한 칠판(4m x 8m)은 광고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단어, 영어와 한자의 불규칙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그러한 교육의 각본이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에 큰 쓸모가 없었지만 세계로 나아가는 중국 그리고 세계가 중국에 대해 배우는 멋진 징조인 것 같다. 사진에서 영어 단어와 한자와의 불규칙 조화, 비록 문법이나 철자가 틀렸지만 지금 중국이 처한 글로벌 시대, 서구 자본주의와의 문화 유입과 동시에 전통과의 충돌로부터 파생되는 리얼리티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 Follow me, 120x130cm, 2003 ⓒ 왕칭송

▲ Follow Him, 120X130cm, 2010 ⓒ 왕칭송

▶지난 1993년 당신이 베이징에 왔을 때 이스트 빌리지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당시 활동한 사진가로는 누가 있었나

☞왕칭송: 젊은 예술가들이 도시의 비싼 물가를 견디지 못하면서 외곽 지역에 모여 싼 임대료를 지불하며 작업을 할 수 있는 북경의 East Village로 모여 들었다. 나는 1993년에 베이징에 왔으나 이미 이곳에서 배고픈 예술가들이 집단을 이루며 다양하고 실험적인 예술 작업을 하고 있었다.

1992년부터 원명원의 화가촌-서촌西村과 달리 이스트 빌리지에 모이는 예술가들은 모두 외지인 이었고, 서촌의 상업적인 분위기와 차별화된 새로운 방식으로 예술 창작을 하였다. 그 주된 예술 작업들은 행위 예술이었고, 장후안Zahng Huan이 대표적인 동촌 예술가였다. 사진가로는 롱롱Rong Rong이 이스트 빌리지의 삶 그 자체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동촌은 장후안이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 소호 그리고 영국의 이스트 빌리지와 비교하며 이름을 지었다.

▲ Beijing East village, 2003 ⓒRong Rong

▶개인적으로 1990년대와 2000년 이후의 중국 현대예술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왕칭송: 중국 예술을 말할 때 나는 가우디 예술(Gaudy Art)에 대해 말하고 싶다. 중국 현대 예술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치적인 Pop과 냉소적인 사회주의라는 개념’ 아래 미국 예술가 제프 쿤즈Jeff Konns로부터 영향을 받아 실험적인 예술 운동의 전개가 중국 현대 예술의 시작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나 역시 가우디 예술의 일원으로 페인팅을 제작하였다. 그 당시 중국은 1992년 덩샤오핑Deng Xiaoping의 ‘사회 재건의 개혁과 경제 발전의 개방’이라는 국가 정책에 의해 서양의 상업주의와 소비문화가 급작스럽게 중국을 뒤덮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그 당시 예술은 서양의 문화 유입 그리고 중국 정치와의 결합을 통해서 예술 작업이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마오쩌둥 Mao Zedong 사후 새로운 리더인 덩샤오핑의 등장으로 중국의 재건이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된 개방 정책에 힘입어 대중문화의 확산과 개방이 이루어졌다. 더불어 예술의 자유 또한 개방되었다. 이 시기에 역사적·사회적인 구조에 대한 새로운 논쟁들이 발생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중국 전통 문화가 지닌 국제적인 위상을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개방에 따른 중국 전통의 문화와 서구 자본주의 문화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됨과 동시에 역으로 서구로부터 중국 현대 예술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도 맞이하게 됐다. 나는 작가로써 지금의 시대가 큰 행운이라고 본다. 그러나 초고속 성장에 따른 부작용, 특히 대중들에게 서구 자본 문화의 유입에 의해 전통 문화에 대한 무관심과 사라짐에 대한 안타까움은 정부뿐 아니라 예술가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 Moma studio, 170x300cm, 2005 ⓒ 왕칭송

▲ Temporary ward, 180X320, light box print, 2008 ⓒ 왕칭송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사진은 무엇이며 앞으로을 작업을 설명한다면

☞왕칭송: 사진은 나에게 나를 일깨워주는 미디어이다. 중국 사회가 지닌 모순을 예술적으로 지적하고 싶다. 예술이란 결국 개인의 경험적 사고 혹은 사회 현상을 미학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포토저널리스트 입장에서 오늘의 중국을 보고 있으며, 현재 중국이 지향하는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급변하는 중국을 말하고 싶다. 이것은 결국 사진을 통해 동·서양의 문화 충돌이 빚어내는 모순의 결과물이 될 것이다.

▲ Van Gogh family, 90x250cm, 2012 ⓒ 왕칭송

<사진작가 정영혁>

뉴욕시각예술대학교 사진미디어 대학원(School of Visual Arts, MFA)

동양인 최초 아론 시스킨드(Aaron Siskind) 예술 지원금 수상

강남피플(인터뷰 다큐멘터리 매거진) 발행인

한국콘텐츠생산연구소장(KCPL)

1인1미디어 시대 퍼스널 콘텐츠 브랜딩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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