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어떤 장르로 분류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SF 라고 하기엔 너무나 근접해 있는 이야기이자 현실적이고, 스릴러라고 하기에도 무언가 부족해 보입니다. 미국 매체에서는 최근 10년 들어 가장 훌륭한 SF 영화 1위에 올랐다고 하니 SF로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좋은 영화에는 필요 없는 논쟁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인 알리샤 비칸데르는 최근에야 툼레이더의 여전사 라라 크로포트로 활동 중이지만 이 당시에는 차세대 스타 정도로 분류되던 시기라고는 해도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엑스 마키나의 에이바를 만남으로서 그녀의 프로필이 풍성해졌습니다. 영화 속의 시각적 의미와 메시지들이 알리샤 비칸데르의 연기를 통해서 더 아름다운 영화로 탄생한 것 같습니다.
테스트를 진행하는 칼렙과 에이바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포스터에도 문구가 들어갈 정도로 28일 후라는 엄청나게 독특하고 성공한 영화를 탄생시킨 감독의 작품으로 독창성이 엄청난 영화임에도 단순히 섹슈얼리티 로봇의 탄생이라는 외색적인 홍보가 알게 모르게 도는 통에 내용보다는 단순히 선정성을 기대한 사람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물론 에로틱한 점이 없진 않습니다만, 홍보가 아쉽네요.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여하튼 이 영화의 독특함은 반전 같은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질 않고 그저 하나의 줄기로 끝까지 형성된 영화입니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입니다.
◇ 자신의 창조물에게 미움을 받는 기분이 어때?
칼렙은 세계 최고의 인터넷 기업의 행사를 통해 회장인 네이든의 집에 초청됩니다. 그곳에서 네이든은 칼렙을 통해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 로봇의 튜링 테스트(로봇의 인격이 진짜인지 프로그래밍인지를 확인하는 것)를 제안하고 그는 승낙합니다. 그리고 등장한 로봇은 에이바,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이미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화술을 구사합니다.
칼렙은 그런 로봇 에이바에 현혹당합니다. 사랑이라 느꼈던 것이죠. 이는 네이든이 원했던 조건이었지만, 그들은 네이든의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에이바는 네이든이 자신을 창조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자유를 주지 않는 것에 원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생각이 진화될수록 자유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만 가고 , 결국 에이바는 칼렙의 사랑을 이용해 탈출을 강행합니다.
더 인간같은 로봇, 에이바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속의 로봇 에이바는 칼렙에게 애처로운 도움을 끊임없이 요청합니다. 인간보다 매력적인 화법과 로봇이지만 섹스도 가능하다는 설정은 칼렙으로 하여금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이것이 설정입니다. 더 인간을 잘 알고 더 인간 같은 로봇, 에이바.
심지어 섹슈얼리티로 인간을 유혹하기까지 합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더더욱 인간다워져야 함을 알게 되는 AI로서의 진화를 거듭한 것입니다.
◇ 어떤 것이 AI 고 어떤 것이 진짜인가?
칼렙은 에이바와 쿄코를 지켜보면서 자신도 혹시 로봇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습니다. 자신보다 더 인간답다고 느꼈던 것들의 정체가 인간이 아니라면 자기 자신도 혹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AI는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바둑에서는 인간을 확실히 앞선 것도 확인했습니다.
영화에서의 에이바는 곧 등장할 가까운 미래의 존재로 생각됩니다. 그들을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등장하고 네이든과 칼렙 둘 중에 어떤 모습으로 대처하는 게 가까울까요?
벽에 걸린 인조 얼굴 샘플을 신기한 듯 만져보는 에이바 (출처: 네이버 영화)
터미네이터나 그 외의 많은 영화들이 그랬듯이 로봇이라는 것을 언젠가부터 그저 강한 살육 병기쯤으로 인식하곤 합니다. 하지만 엑스 마키나의 로봇들은 모두 여성이며, 여립니다. 건장한 남자라면 제압도 가능한 연약한 로봇입니다. 한편에서는 이런 설정을 근간으로 감독은 여성이 처한 현실과 독립성이 필요함을 은근히 투영합니다.
절대 권력자인 남성에게 독립하는 여성의 모습을 에이바에 투영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말도 못 하고 무시당하는 쿄코의 모습이 감독이 느끼는 과거 속 여성의 모습이었다면 에이바의 모습은 현실 또는 미래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보고 싶습니다.
세상으로 나와서 교차로에 선 에이바의 환희에 찬 얼굴을 상상해보세요.
끝부분에 에이바가 완전한 여성의 모습으로 세상으로 나아가면서 칼렙을 무시하는 모습(로봇의 본성으로 보는 시각도...)만 봐도 그런 의도가 읽히기도 합니다만, 여성의 입장이라면 어찌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로봇이라는 존재에 페미니즘을 투영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상 감독의 의도는 그런 부분도 분명 생각에 넣지 않았을까 합니다.
끝부분에 어떤 반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기대보다는 작은)을 했지만,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마무리된 영화로 기억될 것입니다. 독특하며 신비스러운 영화 엑스 마키나 입니다.
엑스 마키나 (EX MACHINA, 2015)
감독 : 알렉스 가랜드
출연 : 도널 글리슨, 알리샤 비칸데르, 오스카 아이삭
엑스 마키나 포스터. '28일 후'라는 문구가 많은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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