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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업상권(3)] 태백 니노나 - “니, 노나?” 놀이 메이커스페이스가 만들어낸 재미있는 로컬

(인터뷰) 강원도 태백시 <안사람랩> 장호동 대표

취재: 윤준식 / 정리: 이혜신 승인 2021.09.16 19:49 | 최종 수정 2021.09.17 11:39 의견 0
놀이 메이커스페이스 <니노나> (사진: 윤준식 기자)

지난 1월 말, 필자는 강원 내륙지방의 창업사례를 찾아 정선 고한읍을 방문해 마을호텔 <고한마을 18번가>를 체험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취재에 소명중고등학교 박광제 선생님이 동행하셨는데, 이분은 교사가 되기 전에도 다양한 지역콘텐츠와 여행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했던 분이라 길동무도 하고 강원 지역에 대한 자문도 받고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박광제 선생님은 교육현장에서 보드게임 활용방법을 알리는 일도 하시면서 교보재로 활용 가능한 기능성 보드게임 개발 전문가로도 알음알음 알려진 분이기도 합니다.

“정선까지 왔는데 조금 더 가면 있는 태백에 보드게임을 테마로 한 재미있는 공간이 있다.”면서 <니노나>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여기에 태백에서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물닭갈비까지 안내하겠다고 하여 흔쾌히 태백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태백 장성시장 끄트머리에 있는 놀이 메이커스페이스 <니노나>는 바깥에서 보아도 전형적인 시골 읍내의 ‘점빵’의 모습을 띄면서도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대감이 넘쳐났습니다.

처음에는 이곳이 보드게임 카페인줄로만 알았으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느 보드게임 카페와는 다른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공간 중앙에는 한약방에서나 볼 수 있는 약장이 있었고, 구석에는 3D프린터가, 입구의 데스크에는 어떤 분이 심각한 표정으로 디자인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니노나>에 머무르며 박광제 선생님으로부터 장호동 대표를 소개받았고, 이곳은 보드게임 개발에 특화된 ‘놀이 메이커스페이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니노나>를 찾는 분들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장 대표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컴퓨터를 쓰기 위해 오는 사람, 간단히 디자인한 명함을 출력하거나 3D프린터로 도장을 만들러 왔거나, 장 대표와 만나 커피 한 잔하거나 보드게임 한 판하기 위해 온 사람... 무어라 규정되지 않은 이 공간은 태백 장성의 청년과 청소년들의 문화 밀도를 높이고, 여가를 위한 공간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순간 즉석에서 인터뷰를 요청했고, 갑작스런 인터뷰에 응할 것을 망설이는 장호동 대표에게 “그럼 저희끼리 보드게임 한 판 하는 동안 고민해 보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저도 같이 보드게임을 하면서 고민해 볼게요.”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때마침 장 대표는 로컬을 스토리텔링한 보드게임 <차이나타운>을 플레이해보자며 가져왔는데요... <차이나타운>은 미국 차이나타운 상인으로 자리를 잡으며 부를 움켜쥐는 것을 목표로 한, 턴 방식 협상게임입니다. 약 한 시간 가량 셋이서 즐겁게 보드게임을 하고 난 후, 장호동 대표는 “그럼, 인터뷰 하시죠!”라는 대답을 줬고, 30분간 귀촌창업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1~2회 <널티> 김신애 대표와 공간 <무브노드>와도 조금은 관련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함께 읽어보시면 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안사람랩> 장호동 공동대표 (사진: 윤준식 기자)

◆시사N라이프 윤준식 편집장(이하 ‘윤’): 어떤 동기와 계기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안사람랩 장호동 공동대표(이하 ‘장’): 저는 사회복지사로서 서울 신림동에 위치한 <서울시립신림중장기청소년쉼터>에서 일했습니다. 위기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했었죠. 그런데 당직 근무가 필수적인 일이다보니, 결혼 후 가족이 생기며 지속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1년간 휴직하며 고민하다가 우연히 아내의 지인인 김신애 대표를 소개받아 태백 <무브노드>에 방문했어요. 당시 그곳에 보드게임이 200개 정도 있었는데, 보드게임을 경험해보고 “보드게임을 만들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개의 프로토타입 게임을 만들었죠.

이후 제가 제작한 보드게임을 부산 <우보펀앤런> 정희권 대표가 운영하는 보드게임 인디 개발자들의 라운드 테이블에서 선보였고, 그걸 계기로 보드게임을 만드는 일을 정식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안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태백으로 내려오는 것을 결정하게 됐고, 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태백 사람들과 연결됐던 지점들이 증폭되며 지금까지 지속하게된 것 같아요.

◆윤: 현재 운영하고 계시는 공간이 카페나 빵집처럼 회전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공간 자체에서의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지 않나요?

◎장: 현재는 제가 제작한 빅게임 및 게임 콘텐츠 판매 수익금, 아내인 송아영 공동대표가 진행하는 강의와 멘토링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메이커스페이스가 함께 결합된 형태인 저희 공간에 방문하셔서 보드게임을 제작하거나 다양한 형태의 수작업을 경험하고자 오시는 분들께 서비스를 제공해드림으로써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놀이 메이커스페이스 <니노나> 내부. 테이블 위의 보드게임이 <차이나타운> (사진: 윤준식 기자)

◆윤: 빅게임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장: 흔히 ‘방탈출 게임’ 같은 걸 연상하면 되는데, 빅게임이란 축제 등 이벤트에서 활용될 수 있는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개발해 판매하는 것을 말씀드린 겁니다. 재작년에는 정선읍으로부터 고한마을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하는 콘텐츠를 의뢰받아 퀘스트 형식의 ‘테이블탑 게임’을 만들어 읍에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윤: <니노나> 공간에 한참 머무르다보니 매우 복합적인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 같습니다.

◎장: 태백에는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많지가 않아요. 저희가 사는 동네는 3천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데, 노인정은 굉장히 많은 반면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장성(*편집자 주: 下장성. 장성 아랫 동네를 말함.)의 <무브노드>로 가는 친구들도 있는데, 저희는 놀이를 통해 타 지역 사람들도 이곳에 방문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쇼룸 형태의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태백에서 시내라고 부르는 황지에서도 이곳은 오질 않아요. 저희 공간에 방문하기 위해 이 동네에 처음 오신 분들도 계실 정도예요. 태백 시민도 경찰서, 소방서, 교육청 등에 업무차 방문할 일 말고는 이 동네에 올 일이 없기 때문에 저희 공간이 궁금하다고 찾아오신 분들을 대하면 매우 보람있죠.

◆윤: 태백에 내려올 결심은 언제 하신 건가요?

◎장: 2018년부터 태백에 지속적으로 왕래하며 주변 사람들을 알게 됐고 강원도가 주관하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면서 먹고 살 기반 문제를 해결했죠.

가장 어려웠던 일은 집 구하는 것이었어요. 괜찮은 원룸이 서울의 연남동 월세와 비슷한 70~80만 원까지 하더라고요. 이 때문에 굳이 태백에 내려올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어서 사업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었어요.

그런 와중에 지금 거주 중인 동네에 사시는 도서관 관장님을 만나며 임대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임대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게 된 2019년 6월부터 현재까지 1년 반 동안 살고 있습니다.

도시재생이 한창 진행중인 장성시장 옆에 <니노나>가 자리 잡고 있다. (사진: 윤준식 기자)

◆윤: 강원도의 어떤 기관을 통해 창업 지원을 받게 되신 건가요?

◎장: 저는 <강원도 경제진흥원>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강원도 내 유휴공간을 활용한 창업 팀을 지원하는 사업에 놀이와 메이커스페이스를 접목한 아이디어로 선정되어 2년 차까지 지원 받은 상태입니다.

◆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지원 받으셨나요?

◎장: 1년 차 때는 1억 5천만 원 정도를 지원 받을 수 있고, 2년 차와 3년 차 때는 각 5천만 원 씩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운영비와 인건비는 지원 가능 내역에 포함되지 않고, 인테리어비나 창업 아이템 개발비 등의 비목으로 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저희는 인테리어와 기계 구입비 위주로 지원금을 사용했습니다.

한글을 파자해 재조립한 <니노나> BI와 간판 (사진: 윤준식 기자)

◆윤: 공간의 이름을 <니노나>라고 지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장: 이 공간을 만들 때부터 많은 분들로부터 ‘어떤 공간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어요. 그럴 때마다 설명 드리기가 어려워서 “저희가 노는 공간이에요”라고 말씀드렸거든요. 그렇게 소개한 내용을 강원도와 경북 사투리가 섞인 형태로 변형하면 “니, 노나?”가 되는데, 저희가 노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이 말이 마음에 들어서 <니노나>로 짓게 되었죠.

사실 메이커스페이스를 직접 체험해보신 분들이 아니면, 이 공간을 어렵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리고 메이커스페이스에서 작업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관련 소프트웨어도 다룰 줄 알아야하고, 디자인이나 도면도 직접 그려야하니까...

대중들이 메이커스페이스를 접근하기에는 아직 높은 벽이 존재한다고 느꼈죠. 놀이와 메이커스페이스를 결합한 형태를 민간에서 운영하는 것 자체가 위험부담이 높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보드게임을 통해서 “아이디어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는 거구나” 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대중들이 메이커스페이스를 접근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더불어 한국의 보드게임 작가들이 프로토타입 개발할 때 겪는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놀이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죠.

3D프린터 등 보드게임 제작이 가능한 다양한 메이킹 장비들을 보유하고 있다. (사진: 윤준식 기자)

◆윤: 일종의 해커톤 방식으로 보드게임 개발이 가능할 것 같아요. 주말이라는 한정된 기간을 활용해 창작자들끼리 모여 게임 구상부터 디자인, 컴포넌트 생산까지 진행하는 방식으로요... 그렇게 보면 태백이라는 공간이 가진 고립성이 보드게임 R&D를 발전시키기에 매우 적합한 것 같은데요.

마치 독일의 도시인 에센과 비슷한 느낌이 드네요. 독일 에센도 예전에는 석탄과 무기제조업의 도시였는데 지금은 마이스(MICE) 도시로 탈바꿈했잖아요? 전세계 보드게이머들에게 1년에 한 번씩 진행되는 에센의 보드게임 전시장이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처럼 한국의 보드게이머들에게는 이곳 <니노나>가 에센과 비슷한 의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장: 사실 코로나가 없었으면 태백으로 오는 기차를 타고 오며 게임 구상부터 진행까지 하고, 태백역에 도착해 서로의 게임을 공유하는 미션을 부여한 이벤트를 진행해보려고 했었어요. 구상까지 완료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시도도 못해보게 되었죠.

태백도 독일의 에센과 비슷하게 탄광이 있던 곳으로서 광산이나 광부 등 지역적 특색이 많은 곳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백시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관광 상품들이 엄청 흥행하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에 “태백도 독일의 에센처럼 보드게임으로 성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이미 서울과 부산이 보드게임 관련 도시로 유명하기 때문에 태백에서 가능하게 만들 방법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니노나> 입구에는 보드게임 관련 서적이 비치되어 있다. (사진: 윤준식 기자)

◆윤: 여기 머무르는 동안 박광제 선생님과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까 지역에서 보드게임 수업도 하시는 것 같던데요?

◎장: 저희가 처음 태백에 내려올 때부터 놀거리가 없는 이곳에 놀이를 만드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니노나>를 만든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미 가정마다 보드게임을 많이 구매하신 상태였더라고요.

지역에서 소비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없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다보니, 부모님들이 먼저 보드게임을 시작하시게 됐고 학부모 보드게임 모임도 운영되고 있더라고요. 이분들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좋은 계기로 어떤 분과 연결됐어요. 그분도 현재 굉장히 열심히 보드게임을 만들고 계세요.

학생들이 장호동 대표에게 남긴 질문들 (사진: 윤준식 기자)

◆윤: 앞서 말씀하신 빅게임처럼 로컬을 테마로 한 보드게임들도 계속 개발하고 계신 건가요?

◎장: 특별하게 로컬을 테마로 한 보드게임을 제작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태백에 내려온 이후부터는 지역과 관련된 이야기를 게임에 녹이는 작업을 조금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보드게임은 결국 출판업에 속하는 영역이어요.

이 때문에 보드게임 작가는 어떤 이야기들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지를 중요하게 고민해야 하죠. 그래서 저도 게임을 제작할 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게 되더라고요.

[인터뷰 정리: 이혜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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