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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일기(18)] 3월 21일(월) 사랑이야기는 잠시나마 통증을 잊게 해줍니다

조연호 작가 승인 2022.05.27 16:21 의견 0


아이들은 일상에 잘 적응해서 어린이집과 학교에 잘 오고갔습니다. 다녀와서도 한동안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격리 후 한 주 이상은 집에서도 최대한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집에 들어와 생활했기에 더 조심한 것도 있고, 할머니께서 후유증으로 기침을 계속하고 계서서 부모 입장에서는 불안한 마음에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씌운 것이죠.

게다가 스텔스 오미크론이라는 신종 코로나가 조용히 우세 종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하니, 방심은 금물이었습니다. 격리 해제됐다고 해서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십 년 전 과거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일제 치하의 고통을 당하다가 해방을 맞이했다고 해서 바로 모든 사람에게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일본인에 의한 통치가 다른 외국 군인 그러다가 한국 군인으로 바뀐 수준이었습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일본인들은 일본을 위한 수탈을 했는데, 군부는 국가를 위한 명분을 내세웠다는 정도….

코로나 격리 해제도 말로는 1주일이었지만, 실제 회복까지는 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확진되고 나니, 심리적으로 평안 했습니다. 아무리 신종 스텔스 오미크론이 조용히 우세종이 됐다고 해도 강한 항체가 형성된 우리 아이들은 쉽게 걸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제보다는 조금 차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목이 아팠습니다. 가글을 오전과 오후 두 차례하고, 계속 꿀물과 생강차를 마셨습니다. 따뜻한 음료가 들어가니, 목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다가 인후통이 심해지면 다시 체온도 올랐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소변 색이 투명하지 않아도 인후통이 심해진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물을 많이 마셔야했습니다. 평소보다 많이 열심히 물을 마셨고, 그만큼 화장실에 들락날락했습니다. 최소한으로 움직이고 싶었는데, 평소보다 더 자주 화장실 이용을 해야만 했네요. 그래도 다행히 시간이 지나니 허리 통증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평소 체온보다 높긴 했지만, 체온도 37.5도를 넘지는 않았습니다.

확진 날로부터 4일 째였는데,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준의 컨디션은 아니었습니다. 독서하기도 힘들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기도 힘들었으니, 할 수 있는 건 영상을 보는 것뿐이었습니다. 원래 영화를 좋아했기에 갑질 중인 넷플릭스를 통신사 무료 부가서비스로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영화를 훑어봤습니다. 과거에 보고 싶었던 영화도 보고 봄에 어울리는 말랑말랑한 영화도 봤습니다. 아플 때 솜사탕 같은 사랑 이야기에 심취하면 잠시나마, 통증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오전에 한 편, 오후에 한 편 씩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면 저녁이 됐습니다. 오전, 오후 할 일로 제격이었습니다. 시간이 정말 게 눈 감추듯이 지나갔습니다.

기분이 조금 좋아져서 그런 것인지 오후까지는 인후통이 조금 나아져서 살만했습니다. 하지만, 저녁을 먹고 난 이후 하늘의 색이 바뀌는 시점부터 다시 인후통이 심해졌습니다. 물을 계속 먹고, 진통 소염제를 먹어도 저녁 시간 때부터 몰려오는 목의 통증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잠자기도 어려웠고요. 하지만 처음보다는 덜 해서 자다가 일어나서 가글까지 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깊은 잠에 빠질 수 없었는데, 침을 삼키면 목에 심한 통증이 생기니 자연스레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죠. 이런 통증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침을 흘려버리는 것인데, 마스크를 착용하고 잤으니,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입 안에 침을 모아뒀다가 가끔 삼켰습니다. 그러면 다시 감겼던 눈이 떠졌고요. 이런 인후통은 언제쯤 사라지는 걸까요? 어쨌든 인후통과 한참 전투를 벌이다 보면, 어느 순간 자고 있었고 다시 침을 삼킬 때까지 깨지 않았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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