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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전(7)] 서방의 허점을 파고드는 하이브리드 공격

새로운 전장-당신의 머릿속, 그리고 민주주의
제1부: 새로운 전쟁의 양상_07편

김형중 기자 승인 2023.08.04 11:53 | 최종 수정 2023.08.15 19:10 의견 0

하이브리드전의 장점 중 하나는 대상국가의 허점을 역이용하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적 능력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는 강력하고 집중적이고 잘 조율된 다양한 하이브리드전 수법들을 시차적·동시적으로 구사하여 크림반도를 무혈 점령했다.

역설적으로 하이브리드전의 대전제는 러시아가 전장에서 군사적으로 NATO를 비롯한 서방세계를 패배시킬 수 없다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게라시모프가 구상하는 하이브리드전은 ‘게릴라 지정학(guerilla geopolitics)’의 유용한 도구로서, 직접적인 갈등·충돌을 회피하면서 미국과 서방세계의 인지된 취약점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핵심으로 평가된다.

◆전쟁에는 이르지 않는 뜨거운 평화

이는 상대방의 약화, 분열, 무력화를 노리는 노골적 또는 은밀한 노력으로 상징되는 “뜨거운 평화(hot peace)”와 유사하며, 당혹스런 정보의 전략적 유출, 개전사유(casus belli)에는 이르지 않는 군사도발, 사이버 공격, 경제적 압력, 정치적 극단주의 운동에 대한 자금 지원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하되 ‘전쟁에는 이르지 않는(short of war)’ 한도에 그침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이브리드전은 군대의 과제가 아니라 오로지 사회 전체만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이브리드전은 그 자체로 새로운 위협이 아니지만 이처럼 새로운 다중적(multi-modal) 위협에 대해서는 범정부, 범국가적 차원에서의 ‘총체적(holistic)’ 접근방법이 요구된다.

하이브리드 위협과 그 대응은 다양한 강도로 지속되는 ‘항구적 전쟁상태(a permanent state of war)’로 변질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즉 하이브리드전 개념의 부상은 전쟁과 평화의 구분이 흐릿해지고, 정전 상태가 단기속결전만으로 쉽사리 끝나지 않을 항구전과 무제한전의 상태로 전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을 비롯해 하이브리드전 전술을 활용하고 있는 국가들에 대해 다양한 하이브리드 전술을 공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국가적 능력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전쟁에는 이르지 않는 수단에 대해서는 전쟁에 이르지 않는 수단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손자병법: 싸우지 않고 적을 제압하라

2021년 NATO는 하이브리드 전쟁을 “재래식 및 비재래식 권력 도구와 전복 도구의 상호 작용 또는 융합을 수반하며 이러한 도구를 활용해 취약성을 활용하고 시너지 효과를 얻는 행위”로 정의했다. 이처럼 동적인(kinetic) 수단과 비동적인(non-kinetic) 전술을 결합하는 목적은 교전 상태에 최적의 방식으로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또한 NATO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특징으로 두 가지를 꼽고 있다. 하나는 전쟁과 평시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전쟁의 문턱을 식별하기 어렵고 전쟁 상태를 인식하고 대응책을 운영하기가 어려워진다.

전쟁으로 볼 수 있는 임계점 이하의 기싸움이나 직접적으로 명백한 폭력활동은 전통적인 군사 작전보다 쉽고 저렴하며, 덜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의도를 관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 영토로 탱크를 몰아넣거나 전투기를 출격시켜 영공으로 진입시키는 것보다 비국가 행위자들과 협력하여 허위 정보를 후원하고 부채질하는 것은 훨씬 더 실현가능성이 높다.

비용과 위험은 현저히 적지만 상대방이 입는 피해는 현실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직접적인 전투나 물리적 대결 없이 전쟁이 있을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국가 간 갈등을 틈타는 하이브리드 전쟁을 통해 직접적인 전투와 물리적 대결 없는 전쟁이 가능함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전쟁 철학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최고의 전쟁 기술은 고대 군사 전략가인 손자가 제안한 것처럼 ‘싸우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것’(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이기 때문이다.

◆공격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생산되는 모호성

하이브리드 전쟁의 두 번째 정의 특성은 모호성인 속성과 관련이 있다. 하이브리드 공격은 일반적으로 주체와 피해 측면에서 모호성이 크다. 이러한 모호성은 적의 대응 뿐 아니라 하이브리드 공격의 속성을 복잡하게 만들기 위해 하이브리드 공격의 행위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생성되고 확대된다.

즉, 하이브리드 공격을 받는 대상 국가는 하이브리드 공격을 탐지할 수 없거나 하이브리드 공격을 감행하거나 후원하는 국가의 소행으로 간주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하이브리드 행위자는 탐지 및 속성의 임계값을 활용하여 대상 국가가 대처 방법과 전략적 대응을 개발하기 어렵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하이브리드 전쟁의 복잡한 특성과 역학을 고려하여 대처 방법과 전략적 대응을 제안해 왔다. 대처 방법과 전략적 대응의 일부는 세심한 방식으로 하이브리드 위협을 감지, 억제, 대응 및 대응하기 위한 조치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 인지 및 사회적 영역이 대상이 되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속성상 사회적 신뢰와 사회적 신뢰의 구축이 없는 대응은 효과적인 대처 방안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하이브리드 전쟁은 대체로 전통적인 전쟁의 임계점 아래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전쟁의 임계점 아래에서 중심 무대를 차지하는 것은 민간인의 역할, 즉 그들이 국가와 관련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민주적 정치체제의 취약성: 국민의 지지를 흔들어라

현대의 디지털 및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하이브리드 행위자는 상당히 쉽게 적국에 해를 끼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러시아가 사이버 공간을 이용해 수행했던 조지아, 밸로루스 등 일부 국가에 대한 허위 정보 유포작전은 매우 미묘하지만 중대한 것이었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국가, 정부는 존재할 수 없다. 특히 민주적으로 구성된 정치체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국가와 정부는 합법성을 통해 국민들의 지지와 존재 이유를 확보하게 된다. 하이브리드전을 통해 상대국의 국가와 국민 사이에 균열을 형성함으로써 국가가 붕괴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상대국의 붕괴는 하이브리드 행위자가 전쟁 문턱 아래에서 하이브리드 공격을 수행하는 궁극적이고 명확한 목표이다.

하이브리드 위협은 종종 대상 국가 또는 국가 간 정치 커뮤니티의 취약성에 맞게 조정된다. 그 목적은 국내적, 국제적 차원에서 양극화를 만들고 악화시키며 이러한 국내적, 국제적 차원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되는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브리드 위협은 민주사회의 공존, 화합, 다원주의의 핵심가치와 정치지도자의 의사결정능력을 위태롭게 잠식시키는 결과를 야기한다.

◆하이브리드 공격으로 약화시키는 사회적 신뢰

궁극적으로 하이브리드 위협이 약화시키는 것은 신뢰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뢰 구축은 하이브리드 위협, 특히 민주주의 국가와 정치를 약화시키는 데 맞춰진 위협에 대한 핵심 보루로 간주되어야 한다. 또한 신뢰는 하이브리드 위협에 대한 정책 또는 전략적 대응이 결실을 맺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즉, 민주국가에서 국가와 국민 사이의 신뢰가 사라지면 국가와 국민 사이에서는 아무 것도 작동하지 않거나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없다.

이러한 신뢰는 단층적이거나 일차원적인 현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여러 수준과 여러 영역에 걸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정부가 자신의 결정을 준수하도록 보장하는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증거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많은 서구 국가에서 국가 기관이 대중의 신뢰 감소로 인해 신뢰를 잃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미국에서 대중의 신뢰는 1950년대 73%에서 2021년 24%로 감소했다.

마찬가지로 서유럽에서는 1970년대 이후로 신뢰 수준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에 대한 대중의 신뢰만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국민 상호간의 신뢰는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서구 국가를 포함하여 세계 여러 지역에서 포퓰리즘이 부상하는 것은 정치 공동체 내에서 더 큰 사회 정치적 양극화의 징후이다. 그 결과 사회적 차원의 조화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사회적, 정치적 조직도 위태로워져 모든 차원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게 된다.

신뢰를 구축, 재구축 및 강화하는 것은 국가 및 사회 수준의 안전보장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하이브리드 위협에 직면하여 내구성 있는 복원력을 만드는 데 여전히 중요하다. 공동체 내외의 신뢰 구축은 하이브리드 전쟁과 위협을 무력화하기 위한 노력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미 있는 투명성, 주인의식, 포괄성에 의해 뒷받침되는 국가와 국민 사이의 강력한 연결 고리를 개발하기 위해 구조적 및 정책적 수준에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적 정치과정을 악용해 상시적으로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행태와의 상시적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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