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전 총리의 집권 이후 정치와 돈(政治とカネ)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했는데, 최근 일본에서는 심상치 않은 사건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전초전이 된 것은 이시카와현 하세 히로시 지사가 올림픽 유치를 위해 관방기밀비로 IOC 위원들에게 20만 엔짜리 앨범을 만들어 전달했다는 녹음파일이 공개된 사건이다. 파일 내용에는 당시 아베 총리가 “관방기밀비로 얼마든 돈을 댈 테니 올림픽 유치를 성사토록 하라”는 지시가 포함되었으며, 기자들에게 적지 말라는 요청까지도 포함된 하세 지사의 자랑하듯 말하는 말투도 녹음되어 있었다. 녹음파일이 공개되고 후폭풍이 커지자 하세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말을 철회한다는 발언을 수십 회에 걸쳐 반복했다.
관방기밀비가 “국가가 사업을 원활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임무와 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경비”라고 하지만, 문제는 영수증 없이도 무제한으로 사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과거부터 선거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회계검사원에서 용도 및 지출에 대한 감사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발생한 것이 자민당 파티권(초대권) 사건이다. 일본 자민당 파벌과 같은 정치단체 혹은 정치인은 ‘정치자금 모금파티’를 개최하는데, 이때 지지자와 지지단체는 1장에 대개 2만 엔을 하는 파티권을 수 매 혹은 수십 매 구매하여 참석한다. 개인 혹은 단체를 불문하고 수십 매를 구매할 수 있지만, 20만 엔 이상 구매할 때는 정치자금수지보고서에 기재해야 한다. 규모가 클 때는 한 번의 파티로도 수억 엔을 모을 수 있으며, 모금 행사는 파티장 대여비 등을 제외한 70~90% 정도가 순수 모금액이 된다.
파티권 사건은 지난 1988년 리쿠르트 사건(미공개주식을 공개 직전 정·관계 유력인사들에게 뇌물로 주면서 총리와 각료들이 사임한 사건)과 견줄만한 대형사건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민당 5대 파벌이 최근 파티권 판매 수입의 일부를 기재하지 않았다는 실수 정도로 보도되었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되면서 아베파의 경우에는 소속 의원들에게 파티권 판매량의 할당량을 정했고, 초과 판매분에 대해서는 소위 ‘Kick Back(환류)’했다는 것이 밝혀지자, 정치자금규정법 위반 뿐 아니라 탈세 문제로 확대되었다. 즉, 금액에 따라서는 형사처벌 혹은 벌금형도 예상된다는 것이다. 금액도 지난 5년간 1억 엔이며 십여 명이 넘는 의원들이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아베파 뿐 아니라 다른 파벌에서도 ‘Kick Back 문제’가 있음이 일부 의원의 인터뷰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여기서 일본 정치의 파티권 문제를 살펴보면, 첫째, 정당조성법에 따라 국민 1인당 250엔에 해당하는 국민 세금(약 310억 엔)을 의석수에 따라 배분하여 국회의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당조성법이 만들어진 계기도 1988년 리쿠르트사건에 있다는 배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국회의원 스스로가 개혁에 눈감아 왔다. 즉, 정당조성법의 취지와는 달리, 정당조성법에 의한 지원금은 지원금대로 받고 기업과 개인으로부터 사실상의 후원금도 받고 있다.
둘째, 자민당 파벌과 관련되어 있다. 2020년 2월 12일 입헌민주당 국회의원은 아베 총리의 비리를 빗대어 “도미는 머리부터 썩는다”고 발언했다. 그녀는 현직 총리를 지적한 대가로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후 참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그녀의 발언은 역사에 남을 지적이었다.
그런데 아베파 등은 거물 국회의원과 일반의원들을 구분해서 개인별 모금액 목표에 차이를 둔다. 모금 목표액과 기여도에 따라 파벌에서 국회 예산 위원회 등의 질문 시간을 배정하거나 각료 등으로 추천하기 때문이다.
셋째, 아베 정권과 검찰의 미묘한 줄다리기 관계다. 아베 정권 당시 구로카와 히로무(黒川 弘務) 검사장의 정년을 연장한 뒤 차기 검찰총장으로 삼아 정권의 파수꾼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당사자인 구로카와가 기자들과 내기 마작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아베 정권의 의도는 불발에 그쳤다. 결국 정년연장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도쿄지검 특수부 소환으로 이어져 아베 총리도 스스로 사임하게 되었다.(아오야마 시게하루, ぼくらの国会・第601回, 2023.10.5.) 그랬던 검찰이 이제 정계에서는 자민당의 요술방망이라고 하는 정치자금 문제에 칼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임시국회가 종료(12월 13일)되면 도쿄지검은 자민당의 해당 의원도 소환하기 시작할 것이다. 만일 그들 가운데 정치자금 관리법 위반(누락 혹은 허위진술)이 발견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만 엔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것이 예상되며, 일본 검찰의 기소 후 유죄율은 99.9%라고 하니 향후 기소 여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자민당의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최근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거의 바닥 수준의 위험단계에 있지만, 그나마 자민당 지지율은 건재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자민당 지지율이 떨어질 경우, 자민당이 어떤 자구책을 마련할지 궁금하다. 왜냐면 자민당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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