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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독일 통일(50)] 브란트와 에곤 바르, 동독과 협상하는 정책을 찾다

칼럼니스트 취송 승인 2019.07.28 09:10 의견 0

1961년 8월 13일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설치하여 서베를린을 고립시키면서 베를린 위기가 고조되던 때에 빌리 브란트는 서베를린 시장이었다. 그는 동독 정권의 행위를 베를린에서 4강국의 지위와 1949년의 4강국 협정에 대한 위반으로 규정하였다. 그런 한편으로 2년 뒤에 동독과 베를린통행협정(Passierscheinabkommen)을 체결하여 1963년 크리스마스 때 서베를린 주민이 동베를린의 친지를 방문할 수 있게 하였다. 이 18일 동안 120만 명이 동독을 방문하였다.

당시 브란트와 그의 참모 에곤 바르는 동독 당국을 무시하기보다는 이들과 협상하는 정책을 개발하였다. 장벽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장벽에 구멍을 내는 전략이었다. 그 결과 이 협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1963년 12월 17일 동독과 서베를린 당국이 서명한 이 협정은 분단국가 시대 처음으로 공식문서에 의한 협정으로 독일민주공화국(Deutschen Demokratschen Republik)이란 정식 국명을 사용하고 베를린을 독일민주공화국의 수도(Berlin/Hauptstadt der DDR)로 표기하였다. 물론 이 협정은 1963년 12월 18일부터 1964년 1월 5일까지의 한시적인 것이었지만 1966년까지 3차례 협정 체결이 더 있었으며 1972년 4강국에 의한 통행협정 체결로 상호방문이 일반화될 때까지 합법적인 통행을 보장하던 문서였다.

베를린 장벽이라는 현실에 대한 브란트의 이런 태도는 아직은 수면 하에 있던 그의 신동방정책의 표현이었다. 통행협정 체결 전 바이에른 주 슈타른베르크 호수 가의 투칭(Tutzing)의 개신교 아카데미(Evangelische Akademie Tutzing)에서 그의 참모 에곤 바르는 ‘접촉을 통한 변화’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신동방정책의 신호탄을 올렸다. 바르는 그의 발제 전에 있었던 브란트의 연설 중 좀 막연하게 말한 부분에 대하여 보충하는 형식으로 강연을 하였다. 이 강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통일정책을 가능한 한 선입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새롭게 두루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새로운 통일정책은 베를린 문제가 따로 해결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독일문제가 동서 대립의 일부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소련이 잘 무장된 20 내지 22개 사단으로 보호하고 있는 한 동독 정권은 무너지지 않는다. 따라서 통일의 조건은 소련과 함께 할 때만 창출될 수 있다. 이의 인식이 “분노할 정도로 불편하고 우리의 정서에 반하지만”, 이것이 논리적이다. 동시에 이는 소련의 동의 하에 ‘지구(Zone. 소련 점령지구 즉 동독)’를 변형시켜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은 외교 정책 문제로 내독부(Bundesminister für innerdeutsche Beziehungen)가 아닌 외무부가 통일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는 건 현실적인 상황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동독 인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평화전략은 공산주의 지배 제거가 아니라 변화다. 즉, 현상을 유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현상 극복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우리 세계가 더 좋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에서 지금까지의 동독 해방 관념으로의 복귀를 생각할 수 있게 하였다.

평화전략을 독일에 적용할 때 첫째 결론은 모두 아니면 무(無)라는 정치를 버리는 것이다. ‘자유선거 아니면 무’, ‘전체 독일의 자결권 아니면 아니요’, ‘선거 아니면 거부’ 이런 모든 것은 비현실적이고 평화전략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

오늘날에 분명한 것은 “통일이란 어느 역사적인 회담에서 역사적인 어느 날 어느 한 역사적인 결의로 한꺼번에 완성되는 한 번의 행위가 아니라 수많은 발걸음과 수많은 단계를 수반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다른 쪽의 이익도 역시 인정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케네디의 말이 옳다면 소련은 분명 동독이 서구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사용될 수 있도록 빼앗기는 걸 가만두고 볼 수 없다. 동독은 소련의 동의 아래 형상을 바꿔가야 한다. 소련의 동의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통일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베를린 장벽이 약함의 표시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는 공산정권의 두려움과 자기 보전의 표시라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정권에 대한 이런 정당한 배려를 통하여 경계선과 장벽이 느슨해질 가능성이 있느냐 여부다. 이는 ‘접촉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äherung)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정책이다.

독일 문제 즉 독일 통일 문제는 동서진영 대립의 일부로 이 대립에서 떼어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체로서 독일과 베를린에 대한 최종결정권을 보유하고 있는 4강국의 하나인 소련이 동독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현실에서 소련이 승인하지 않는 한 독일 통일은 불가능하다. 현상 인정의 바탕 위에서 상대의 변화도 유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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