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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귀’라는 그림자 - 전래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발견한 페르소나·그림자

[무의식과 트렌드] 페르소나가 상품이 되는 시대⑤ 이야기로 살펴보는 페르소나와 그림자(上)

김혜령 기자 승인 2019.07.09 01:43 | 최종 수정 2019.07.09 01:50 의견 0

연재 3회와 4회에서 만들어진 인격인 ‘페르소나’와 그 이면에 숨겨진 인격인 ‘그림자’, 그리고 이 둘의 화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지금부터 ‘화해’에 초점을 맞추고 3가지 예제를 3회에 걸쳐 다뤄보고자 합니다. 

우선 복습차원에서 ‘페르소나’, ‘그림자’, ‘화해’의 개념을 다시 간추려본 다음 연재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페르소나’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쓰는 가면입니다. 누구나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직장에서는 사원으로, 가정에서는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페르소나에게 억압된 다른 자아인 ‘그림자’의 존재를 잊어선 안 됩니다. 그림자와 페르소나는 뗄 수 없는 동면의 양면 같은 존재입니다.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있다가 불쑥 튀어나곤 하는데, 상황에 따라 타인과의 관계를 헝클어지게 만드는 위협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페르소나가 보여주려 하는 긍정적인 모습에만 기대할 게 아니라 내재된 그림자를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림자를 인정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림자와 페르소나를 넘어서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그림자와 페르소나의 ‘화해’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개념들은 너무 추상적입니다. 각각의 개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내재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 둘이 화해하는 과정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는 어린 시절 누구나 들었던 전래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를 통해 아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미애 저, 아이즐북스 간행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예스24 제공)

¶ 감추고 싶은 콤플렉스를 표현한 전래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어느 날 임금님이 자고 일어나 보니 자신의 귀가 길어져 있었습니다. 창피해진 임금님은 귀를 감추기 위해서 왕관을 만드는 기술자를 불러들입니다. 임금님은 기술자에게 자신의 귀를 가려줄 커다란 왕관을 만들도록 명을 내립니다.

임금님의 커다란 귀가 가려질 수 있는 왕관이 만들어지지만, 임금님은 기술자에게 임금님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도록 약속하게 합니다.

그러나 기술자는 비밀을 지키려고 하다 마음의 병이 생기고, 쇠약할 대로 쇠약해지자 죽기 전 한을 풀어야겠다며 멀리 있는 대나무 숲을 찾아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후 편안히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바람이 부는 날이면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메아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리를 막기 위해 대나무를 베어내도 나무가 다시 자라면 또 다시 메아리가 들리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뿐 아니라 왕관이 크다보니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왕관이 벗겨져 당나귀 귀가 드러날 뻔한 위기도 종종 등장합니다. 초조함에 빠져 하루하루를 지내던 임금님은 어느 날 꿈 속에서 하늘의 계시를 듣게 됩니다. 임금님의 귀가 커지게 된 이유는 백성의 목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꿈을 통해 크게 깨달은 임금님은 다음날 어전회의에서 문무백관과 백성들을 불러 자신의 귀를 드러냅니다. 

당나귀 귀를 본 신하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고, 임금님을 비롯해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유쾌하게 껄껄 웃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후 마음이 편해진 임금님은 하늘이 계시한 대로 백성의 세밀한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 어진 정치를 펼친 성군(聖君)이 되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납니다.

¶ 페르소나 vs 그림자 = 왕관 vs 당나귀 귀

여기서 임금님의 그림자는 자신의 커다란 귀입니다.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치부인 것이죠. 물론 이는 그림자보다는 콤플렉스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자신의 어두운 부분으로 상징화되는 큰 귀를 부끄러워하고 감추려고 한다는 데서 그림자로 해석할 여지는 충분합니다.

그럼 임금님의 페르소나는 이야기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임금님이 자신의 귀를 가리기 위해 쓰고 있는 커다란 왕관이 임금님의 페르소나입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감추기 위해 새로운 페르소나인 왕관을 만들어냈고, 사회생활에서 걸림돌이 될 것 같은 부끄러운 모습을 가리고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됩니다. 

임금님은 자신의 페르소나인 왕관으로 정치를 해나가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 왕관이 벗겨져 자신의 그림자인 커다란 귀가 불쑥 튀어나오는 위기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 꿈을 통해 경험한 화해의 과정

하지만 임금님은 자신의 귀의 모습을 인정하고 백성들에게 귀를 드러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임금님의 그림자와 페르소나의 화해를 도운 것은 대나무 숲에서 들려온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메아리입니다. 이 메아리 덕분에 자신의 그림자가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던 임금님이 꿈에서나마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화해하게 되는 계기를 맞이하죠. 꿈을 통해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융의 이론에서 보여주는 화해의 과정과 유사합니다. 융은 자신의 페르소나를 벗어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 꿈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해 꿈의 해석을 중요히 여겼습니다. 

꿈에서 우리는 자신이 가진 여러 가지 페르소나를 만나기도 하고, 자신의 그림자를 조우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자기자신이 성숙되면 헐벗은 자신과 두 가지 가면을 초월한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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