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로컬 리제너레이션(5)] 64년을 이어온 대학로 학림다방

문화적 도시재생 1번지-대학로 ⑤편

김동복 기자 승인 2020.03.21 23:29 의견 0

카페는 학문과 지식을 교류하는 아지트이자 역사를 품은 장소로 평가받는 가치를 지닌 공간이다. 세계를 돌아보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들이 존재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는 무려 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카페 <플로리안>이 있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1894년 오픈한 <뉴욕카페>도 현재까지 운영하며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오래된 카페는 역사 속 위인들의 흔적을 느끼며 커피와 식사를 즐기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유산이 되고 있다.

대학로에도 이런 공간이 있다. 1956년부터 64년을 이어온 <학림다방>이다. 4호선 지하철 공사로 인해 건물을 새로 짓기도 했고, ‘다방커피’의 맛이 바뀌기도 했지만 반세기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대학로의 터줏대감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응답하라 1988>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고풍적인 분위기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젊은 층들에게도 잘 알려졌다.

대학로에서 바라본 학림다방  (출처: 한국관광공사)

◇대학로 앵커스토어 <학림다방>

대학로를 그저 소극장과 술집이 많은 공간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회에서 <학림다방>을 특별히 언급하는 이유는 이곳이 대학로의 대표적인 앵커스토어이기 때문이다. 앵커스토어란 특정 상권을 대표하거나 대형 상가의 핵심이 되는 유명 점포를 뜻하는 말인데, <학림다방>은 대학로의 명소일 뿐 아니라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 예술가와 문인들의 사랑방으로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학림다방>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옛 서울대 문리대가 건너편에 있었다. ‘학림’(學林)은 “학문의 숲, 배움의 숲, 학생들의 숲”이란 뜻으로 서울대 앞이라는 입지와 대학로라는 거리명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이름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없던 당시, 학생들 서로가 약속이 없더라도 단골 다방에서 죽치고 앉아 있으면서 만남을 이루어 나갔다. 그 당시 대학생들의 문화 또한 독특해서 처음 보는 사이라 하더라도 학교 근처 다방에서 서로 대화가 통한다고 여기면 밤새 사회와 문화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

이런 식으로 나중에는 젊은 지식인, 문화 예술인들이 모여들었다. 전혜린, 천상병, 김승옥, 이청준, 김지하, 황석영, 홍세화, 김민기, 유홍준, 황지우 등 시대를 풍미한 유명 인사들이 <학림다방>의 단골들이었다.

학림다방 건너편 대학로 풍경  (사진: 윤준식 기자)

◇서울대학교 문리대와의 깊은 인연

<학림다방>의 시작은 한국전쟁 휴전 직후 서울대 의대 옆에 ‘별장’이라는 다방이 생기면서다. 이후 1956년부터 이곳을 운영하게 된 신선희 씨가 ‘학림’이라 이름을 붙이면서부터 문예 취향의 서울대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다. 당시 서울대 문리대에는 24개의 강의동이 있었는데, <학림다방>을 ‘제25강의실’이라 부를 정도였다.

서울대 문리대와의 인연은 다방 이름에도 영향을 주었다. 1956년 당시의 <학림다방>은 지금과 같은 ‘學林’과는 다른 ‘鶴林’이었다. 서울대 문리대는 1962년에 첫 축제를 개최하게 됐는데, 학생들은 단골 다방 이름에서 축제 이름의 아이디어를 얻어 ‘학림제(學林祭)’라 했다. 이를 계기로 다방의 명칭도 자연스럽게 ‘배울 학(學)’자로 바뀌게 <학림다방>은 덕분에 학생들의 숲, ‘學林’으로 굳게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했고, 20여년간 이곳을 운영했던 신선희 씨가 이민을 떠나면서부터다. 서울대가 떠나자 경영난에 시달리게 되었고, 지하철 공사로 인해 건물이 신축되자 <학림다방>은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된다. 그 후 10여 년에 걸쳐 경영자도 여러 차례 바뀌게 되자 오랜 단골들도 실망하며 떠나갔다.

학림다방은 1956년부터 64년을 이어온 대표적인 대학로 앵커스토어다.  (사진: 윤준식 기자)

◇시대의 변화가 가져온 <학림다방>의 전환기

<학림다방>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 건, 1987년 지금의 경영자인 이충렬 씨가 이곳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원래 이충렬 씨는 <학전>, <연우 무대> 등의 연극 포스터와 보도자료용 사진을 찍는 일을 하며 극단 관계자들과 <학림다방>을 자주 드나들던 손님이었다.

1980년대는 대학로가 서울을 대표하는 공연의 메카로 자리 잡기 시작한 때다. 당시 대학로에서는 주말마다 젊은 예술가와 대학생들이 어우러져 거리 공연 등을 펼쳤다. 이충렬 씨와 <학림다방>의 인연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도, <학림다방>이 전환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대학로가 대한민국 공연 1번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대학생들은 <학림다방>을 그들의 토론 장소로 활용했다. 급기야 <학림다방>은 1980년대 대표적인 공안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당시 ‘전국민주화학생연맹’이 신군부 세력에 의해 반국가단체 조직사범으로 체포했다. <학림다방>에서 첫 모임을 가졌던 이유로 이 사건을 일명 ‘학림사건’이라 부르기도 했다. 한편, 1987년부터는 <학림다방>이 군부 정권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민주항쟁 집결지가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학림다방>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대학로의 역사를 함께해 온 공간 중 하나다.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학림다방  (사진: 윤준식 기자)


◇<학림다방>의 현재

<학림다방>은 2층짜리 건물의 2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낮은 복층의 실내구조 속에 몇 십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겉칠이 벗겨진 낡은 나무 테이블과 짙은 회색의 오래된 소파가 있는 카페 공간에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너덜너덜해진 메뉴판,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피아노까지 요즘의 카페들과는 다르게 고풍적이고 빈티지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 때문에 옛 추억을 느끼려는 중년, 노년층과 레트로 감성을 즐기려는 젊은 층들이 계속해서 찾아오며 아직도 모든 세대에게서 사랑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2014년에는 서울특별시가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해 건물 전체가 영구 보존구역으로 지정되었다. 2017년에는 서울특별시가 발표한 ‘오래가게’에 선정되기도 했다.


○학림다방
소재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119
지하철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에서 10m 거리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