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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읽기(7)] 도대체 누가 공작하고 있는 건가?

노벨문학상 그대로 읽기 <눈뜬 자들의 도시> (하편)- 주제 사라마구(1999년 수상자) ③편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0.04.13 09:42 | 최종 수정 2020.04.13 13:35 의견 0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람은 실수, 약점, 오점 등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혹시 먼지가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먼지를 덮어 씌우면 된다.

◇4년 전 백색 실명과 현재의 백지투표

둘 다 보기 드문 사건이다. (소설이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국가의 모든 국민이 실명해서 몇 주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수도에서 백지투표 행위가 이뤄졌다. ‘백색’과 ‘백지’만 놓고 보면, 유사성이 있을 거 같다. 그러나 ‘실명(失明)’과 ‘투표’는 실제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더욱이 4년 전 사건과 연관 지으려는 시도는 정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조작 가능하다.

“사 년 전 그 눈먼 상태의 텅 빈 시야와 지금 텅 빈 투표용지를 맹목적으로 던지는 사태 사이의 유사성을 보게 하는 겁니다.”  <눈뜬 자들의 도시> 중

실제로는 아무런 ‘유사성’이 없는데, 그 유사성을 찾는다. “유사성을 보게 하는 겁니다”라는 말에서 모든 게 드러난다. 소설에서는 억지로 유사성을 만들어서 4년 전 눈멀지 않았던 여자를 백지투표 배후로 엮으려 한다. 이 임무의 책임자였던 – 정부에서 파견한 – 경정조차 임무를 포기하고, 그 위선과 위험을 여자에게 알린다. 그리고 그의 상관 내무부 장관에게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음을 선포한다.

“분석하고 생각하는 거야 당신 자유지만 그런다고 현실이 일밀리미터도 바뀌지 않아.” <눈뜬 자들의 도시> 중

그의 절규에 가까운 포기에도 정부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이미 여인은 백지투표의 주모자로 선정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배후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어쨌든 그 목표는 이 여자, 우리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눈이 멀어 비틀거리는 동안 눈이 보였다고 하는 이 여자와 백지투표라는 이 새로운 전염병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든 없든 그 연관을 확립하는 것이다.” <눈뜬 자들의 도시> 중

민주주의를 이행하고 있는 국가 수도의 백지투표에 대한 정부의 반응이다. 전체주의나 공산주의에서 자행하는 사건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서 진행하는 음모다.

◇소설 속 주인공은 누구지?

소설은 주인공이 명확하지 않다. 전편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눈멀지 않은 여자가 주인공이었다면, ‘눈뜬’에서는 주인공이 없다. 우리의 상식선에서는 여자 혹은 경정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제 사라마구 저 <눈뜬 자들의 도시> (출처: 예스24)

그러나 전체적인 분량으로 봤을 때, 이들은 후반부에서나 등장한다. 대통령, 총리, 내무부장관 등이 사건을 이끌어 가는 핵심 인물이다. 즉, 할리우드식으로 따지면, 악당이 승리하는 영화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짜 악당일까? 여자에게 얼토당토않은 죄목으로 해를 당할 거라고 위기를 알렸던 경정은 살해되고, 전편의 주인공 여인도 피격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소설은 끝이 난다. 이후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눈뜬’은 주인공이 중요한 소설이 아니다. 인물이 등장하지만, 체제가 중요하다. 정부에 백지투표를 던진 수도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정부의 대결이다. 작가는 결말을 쓰지 않았다. 누가 이길지 그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단지, 문제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지적했다.

주인공.. 즉 국가의 주인은 누구? 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현 체제를 다시 보자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누가 여기에 나 대신 서명을 했는가

“왜 나를 도와주냐?”라는 여인의 말에 경정은 과거에 읽었던 책을 떠올린다.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 평생 지킬 협정에 서명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자문할 날이 온다, 누가 여기에 나 대신 서명을 했는가.’ <눈뜬 자들의 도시> 중

이 문장을 처음 대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자, 문장이 눈과 머리, 가슴에 들어왔다. 물론, 이런 느낌은 독자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소설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누가 내 대신 서명을 했지?”라는 문장만큼 강렬하고 절박하게 다가오는 문장은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도 없고,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도 없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진실에 가까운 말에 물음표를 던진다. 내가 현재를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 실재가 아니라는 의미다.

난 백지투표를 했지만, 정부는 ‘도덕적 오염’이라고 매도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민 83%의 권리와 의견은 소수의 특권층에게 무시당한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아우성쳐도 정부와 국회 등이 손쓰지 않으면 바뀌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게 국민의 뜻이라고 거짓말한다.

나의 과거가 현재를 대신해서 ‘서명’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 자신의 삶을 위해서 서명한 계약서가 나한테도 적용된 것이다. 이처럼 불합리한 일이 어디 있는가? 나는 서명을 위한 어떤 계약서도 보지 못했다.

소설 속에서는 이런 과거를 현재로 바꾸려 하자 돌아오는 결과는 봉쇄와 계엄령, 테러, 살인 등이었다. 이런 걸 ‘조직의 쓴맛’이라고 하던가?

◇총선이다

백지투표를 보니, 어쩔 수 없이 현실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수십 년 전에 출간된 소설이 우리 현실에 구구절절 잘 맞아떨어진다. ‘마술적 사실주의’가 새로운 방식으로 적용되는 듯하다.

대한민국 총선이 21번째를 맞이하고 있다. 부정선거도 있었으나, 어느 시점부터는 합법적으로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투표율은 무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투표율이 6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투표율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만약, 투표율이 50%보다 낮다면(실제로 50% 되지 않았던 총선도 있었다) 국회의원 선출을 취소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런 경우 많은 보도 등에서 다양한 원인을 제시할 것이다. 소설에서 나온 것처럼 ‘좋지 않은 날씨’ 대신 ‘코로나 19’를, 복잡한 선거제도(준연동형비례대표제), 정치 무관심 등. 그러나 누구도 국회 해체를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국회는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늘 주의를 많이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눈뜬 자들의 도시> 중

누가 우리를 대표해서 국회의원 노릇 하라고 했는가? 나는 아니다. 우리 아버지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할아버지? 아무튼,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대신 서명했다. 그리고 이제 이런 서명을 내가 다시 하려 하자, 기득권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혹은 말 할 것이다.

“그들은 민주체제의 안정성과 그 올바른 기능을 계속 훼손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통일성을 무너뜨리려고 잔혹하게 공작을 하고 있습니다.” <눈뜬 자들의 도시> 중

도대체 누가 공작하고 있는가? 지금 체제의 변화를 앙망하는 다수 국민의 한숨이 공작인가? 아니면,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소수 기득권층의 억지스러운 노력이 공작인가? 다시 한번 물어보자.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묻게 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누가 대 내신 여기 서명을 했지.” <눈뜬 자들의 도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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