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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읽기(6)] ‘도덕적 전염병’과 ‘백지투표’가 보여주는 위선

노벨문학상 그대로 읽기 <눈뜬 자들의 도시> (상편)- 주제 사라마구(1999년 수상자) ②편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0.04.03 22:35 | 최종 수정 2020.04.04 13:49 의견 0

지난 회에서 소개한 <눈먼 자들의 도시>(이하 ‘눈먼’)는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제작돼 일반인들도 많이 접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눈뜬 자들의 도시>(이하 ‘눈뜬’)는 생소할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 저 <눈뜬 자들의 도시>

‘눈먼’이 인간의 욕망, 죄(Sin) 성, 본능, 잔혹함 등을 다뤘다면, ‘눈뜬’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해 우리가 머물러 있는 체제의 위선까지 담고 있다.

◇백지투표

“유효표 숫자는 이십오 퍼센트에 미치지 못했다. 우익정당이 십삼 퍼센트로 일위를 했으며, 중도정당이 구 퍼센트, 좌익정당이 이점오 퍼센트였다.” <눈뜬 자들의 도시> 중

놀라운 현상이다. 선거 개표 결과다. 소설에서는 날씨 탓으로 돌린다. 비가 와서 유권자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높은 상관관계가 없다. 어쨌든 유권자들이 나와서 투표해서 나온 결과이니 말이다. 그러나 체제는 이와 같은 현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투표한다.

“우익정당 팔 퍼센트, 중도정당 팔 퍼센트, 좌익정당 일 퍼센트, 기권 없음, 무효표 없음, 백지투표 팔십 삼 퍼센트.” <눈뜬 자들의 도시> 중

백지투표가 오히려 늘었고, 정당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 민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치권에 대해 괘씸죄가 적용된 것이리라.

◇‘도덕적 전염병’

정치인들에게 무서운 일이 발생했다. 투표자 중 17%를 제외하고는 의도적으로 백지투표를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17% 이외의 시민들은 현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혹은 현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소극적인 의견을 표출한 것인지도 모른다.

집권 계층은 위기임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그들의 권력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기에 액면 그대로 투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주민 다수를 감염시킨 도덕적 전염병에 대한 적극적인 거부감을 표현하는 문서에 서명을 했다.” <눈뜬 자들의 도시> 중

‘도덕적 전염병’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는가? ‘대중선동’, ‘포퓰리즘’ 등 다양한 정치적 용어가 있지만, ‘전염병’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수가 의도적으로 틀린 생각에 동의할 경우 소수가 어쩔 수 없이 심리적으로 틀린 생각에 동의한다는 실험 결과는 있지만, ‘도덕적 전염병’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도덕적 전염병’을 뜯어보자. 도덕과 윤리는 개념이 다르다. 도덕은 일관된 가치에 대한 것이라면, 윤리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 행위로 구분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투표행위는 행위에 관련한 것이지 가치로 해석하는 것은 그 범위를 너무 확장한 것이다.

역사적 전통성으로 확대해석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그들의 낭패를 역사적 가치의 오염으로 돌리고 있다. 83%라는 믿기지 않는 수치를 부도덕으로 매도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기에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전염’이라고 치부한다. 즉, 전염 요인만 알면 치료 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 정부는 달아난다

‘코로나 19시대’ 정부는 최선을 다해서 확진자를 치료하고, 전염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게 정부의 역할이다. 그러나 ‘눈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정부는 수도를 포기하고 탈출을 계획한다.

“세 시 정각, 계획된 대로, 퇴각이 시작되었다.” <눈뜬 자들의 도시> 중

인적이 드문 새벽 세 시에 정부는 수도 탈출을 계획한다. 이후 수도는 계엄령이 선포된다. 이유는 정부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그들은 83%의 시민들을 환자로 취급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그들이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83%가 백지투표를 던졌다. 이 행위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무정부주의, 정부에 대한 불만, 체제변화에 대한 바람 등 어쨌든 현 체제가 부적절하다는 무언의 행위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유권자의 반응 – 시민들의 백지 투표행위 - 을 해석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달아날 개구멍을 만드는 데 더 심혈을 기울였다.

◇투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유권자의 권리일까?

쉽게 생각하자.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에게 투표한다. 기본적인 투표행위이다. 그러나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전혀 없다. 그래서 투표하지 않는다. 역시 기본적인 투표행위이다. 혹은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어서 백지투표를 했다. 비판받을 이유가 있을까?

선거 기간만 되면, 수많은 연예인과 유명인이 등장해서 투표를 독려한다. 마치 안 하면 좋은 국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런 선동에 투표율이 낮지 않게 나온다. 물론, 아직은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에 기대를 거는 유권자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정치체제를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간접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크게 관심 없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투표자들이 마법에 걸린 것처럼 백지투표를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있는 듯이 투표한다. 하나의 관성적 행태일까? 그대로 내버려 두면 계속되는. 4년이나 5년에 한 번씩 치르다 보니, 그냥 아무렇지 않게 투표하는.

백지투표가 ‘도덕적 전염병’일까? 아니면 관성적인 우리의 투표행위가 ‘도덕적 전염병’일까?

‘눈뜬’의 정부는 탈출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시민을 대상으로 폭탄 테러를 자행한다. 30여 명이 사망한다.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은 조직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한다.

“만일 우리가 폭탄을 설치하라고 명령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백지투표를 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마지막 이유를 주는 꼴이 될 거요.” <눈뜬 자들의 도시> 중

불법을 저질렀고, 그들은 저지른 행위가 발각될까 봐 두려워한다. 83%의 시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을 두려워한다. 기본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코앞의 위협이 될 때까지 복지부동한 게 정부다.

정부가 사라지면, 무질서해질 거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오히려 시민들이 스스로 질서를 구축해 간다. 사실, 83%가 적극적으로 백지투표를 던진 수준의 시민들이라면 기존 정부 없이도 도시는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은 말없이 삼십 분 동안 눈앞의 대통령궁을 바라보며 서 있더니, 이윽고 해산했다. 어떤 사람들은 걸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갔다. 중략 그렇게 다들 집에 갔다.” <눈뜬 자들의 도시> 중

떠난 정치적 지도자, 그리고 그 빈 궁을 쳐다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시민들. 대통령궁의 주인이 있든 없든, 시민들은 그들의 자리를 찾아 돌아 간 것이다.

 

(하(下)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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