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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사람과 사연을 연결하는 음식이야기 – 연극 <궁극의 맛>

김혜령 기자 승인 2020.06.06 00:43 | 최종 수정 2020.06.06 00:46 의견 0
감옥 안에서 파스타를 먹고싶어하는 재소자들의 퍼포먼스가 탁월한 <파스타파리안>의 한 장면 (사진: 김혜령 기자)

음식은 혀를 강렬하게 사로잡아 맛을 통한 기억을 남기기도 하지만, 같이 먹었던 사람과 식사 분위기로 사람의 뇌리에 평생 추억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화려한 레스토랑 음식이 아니어도 상관 없다. 어머니가 해준 된장국, 연인과 끓여먹던 라면 등 생각보다 소박한 추억과 기억 저 편에 함게 남기 때문이다.

연극 <궁극의 맛>이 6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이번 공연은 8편의 강연과 3편의 연극으로 구성된 <두산인문극장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두산아트센터는 2013년부터 매년 한 가지 주제로 강연과 공연을 구성해 관객들과 소통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는데, 2020년의 테마는 ‘푸드’로 설정했다. 

앞선 연극 <1인용 식탁>에 이어 두 번째로 공연된 연극은 <궁극의 맛>이다. 연극 <궁극의 맛>은 츠지야마 시게루의 원작 <고쿠도메시>를 재구성했다. 일본의 음식 드라마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심야식당>처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음식과 그 음식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해준다. 

감옥을 주 공간으로 재소자들이 자신의 사연과 연관된 음식을 소개되며, 10분 내외의 이야기 7편, 총 110분의 시간 동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감옥 안에서 펑펑이 떡을 몰래 만들어먹으며 자신이 옥살이를 하게 된 사연을 설명하는 탈북민의 이야기 <펑펑이 떡이 펑펑>  (사진: 김혜령 기자)

재소자들은 도박, 폭행, 살인 등 저마다 다른 이유로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들이 죄를 짓게된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자신들이 기억하는 가장 강렬한 음식들을 하나씩 이야기해준다. 방화를 저지른 어머니 때문에 온몸에 화상을 입었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끓여준 소고기 무국이 떠오른다는 소년범, 몰래 퐁퐁이 떡을 만들어먹으며 자신이 감옥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탈북자 출신의 수감자.

극 안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만나볼 수 있는 음식이다. 또 각각의 음식에 얽힌 이야기는 우리가 뉴스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 번쯤 대했을 듯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연극임에도 마음 한구석에 짐을 지닌 것처럼 느끼는 이유다.

무대구성 역시 독특하다. 삼각형으로 배치된 좌석 가운데에 작은 무대를 두어 이 한정된 공간만이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의 전부라고 느끼게 하지만, 배우들이 서있는 공간 모두가 공연무대로 돌변한다. 내 옆 자리가 배우가 연기하는 공간이 될 수 있어, 관객들은 극 밖에서 연극을 관람하는 관람자가 되기도 하고 공연을 함께 구성하는 무대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배우들의 숨결을 옆에서 느끼게 하기 때문에 극의 몰입도는 최고조를 이룬다.

독특한 무대구성에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해지며 공연은 더욱 탄탄하게 거듭난다. 7명의 배우들이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기 때문에 극에 다소 몰입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 배우들은 마치 패션쇼에 선 모델들이 순식간에 새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것처럼 극이 전환 될 때 마다 극 중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무거운 분위기부터 밝고 유쾌한 분위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배역을 소화해낸 배우들은 서로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110분을 이끌어나간다.

아이를 성폭행한 범인을 죽인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자정의 요리>  (사진: 김혜령기자)

또한 극은 연극을 보는 관객들을 자신의 아득한 기억속으로 안내한다. "그때 먹었던 그 음식, 참 맛있었는데..." 혹은 "가족과 함께 자주 가던 그 삼겹살집 또 가고 싶네" 등 특별한 추억이 있는 가게, 특별한 추억의 음식을 회상하게 한다.

음식은 늘 겪었던 그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이자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다. 아련한 기억은 우리 일상을 다시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어떤 자극도 특별하지 않아져 무심해졌다면, 이 모든 일상이 무료해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면 두산아트센터에 수감된 재소자들을 만나보기를 추천한다. 그들은 내가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어떤 것, 특별하지 않아 흘려보냈던 일상을 새롭게 만들어주며 우리에게 또다른 삶의 에너지를 전달한다. 일상의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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