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필자는 균형발전 사례집을 만들기 위해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취재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후 얻은 결론이 바로 세 겹줄이었습니다. 이 표현을 요리로 바꾸면 ‘삼합’이라는 요리가 됩니다. 삼합은 홍어, 묵은지, 돼지고기 세 가지 요리가 어우러져 완성되는 요리입니다. 각 요리만의 특징이 있겠지만, 삼합은 나름대로의 특징 있는 요리입니다. 세 가지 요리가 결합돼 새로운 요리가 탄생한 것이죠.
이 요리를 생각하다 보니, 지방 발전과 관련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방의 발전도 세 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첫째, ‘좋은 리더’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좋은 공무원’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좋은 시민’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사람이었습니다. 환경, 자원, 인구(수), 규모 등은 부수적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이 갖춰졌어도 ‘좋은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우수사례로 선정된 지역은 대체로 위 세 가지 요소가 잘 어우러졌기에 지역에서 계획하고 추진한 사업을 우수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좋은 리더’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좋은 리더
좋은 리더와 관련한 책은 한 트럭을 가득 채우고도 남습니다(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가서 리더십을 검색하니 십 만 권이 넘는 책이 등록돼 있었습니다). 그만큼 리더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좋은 리더의 조건에는 카리스마, 통솔력, 배려, 소통, 비전 등 다양한 요소가 제시되고 있고요. 대체로 좋은 의미를 지닌 추상적인 언어들입니다. 워낙 의미가 좋은 단어들이어서 별로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추상적인 언어만으로는 지방을 운영할 수 없습니다.
물론, 위의 좋은 언어들을 체득화한 리더가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인간이 이성과 감성을 지니고 편견에 휘둘리는 존재라고 할 때, 좋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리더는 현실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들도 항상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세계 4대 성인(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예수)이라 불리는 성인들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면, 충분히 단점을 찾을 수 있으니 완벽한 리더는 경전에서도 찾기 힘듭니다. 그러니 이상적인 조건을 지닌 리더를 막연하게 그리지 말고, 현실적인 리더십–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리더들-을 생각한다면 지방정치를 이해할 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정치현상을 보면, 작은 실수도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상대를 비난하고, 역으로 자신의 오점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해서 방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힐난과 변명으로 얼룩진 정치는 생산적일 수 없고 낭비입니다. 정치 리더라면 다른 사람의 비판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며, 반대로 리더의 실수를 무조건 비난할 게 아니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리더가 지방분권 시대에 좋은 리더일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역에 오래 거주해야 하고요. 현재 광역시·도 단체장들은 중앙정치에 관여하다가 개인의 정치적 영역을 확장, 혹은 정치적 생명을 연기하기 위해서 본향으로 돌아온 경우가 있습니다.
제8회 지방선거를 준비하면서 각 정당은 연고지도 없는 후보끼리 경선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대선에서 낙선한 후보 역시 그동안 정치적으로 전혀 관련성 없는 지역의 보궐 선거에 출마를 결심했고요. 이런 모습을 보면, 결국 지방정치는 중앙정치를 위한 디딤돌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를 국민들도 동조해 주는 분위기고요. 물론, 지역을 발전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정치를 한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중앙정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 지방정치를 활용한다면 부정적인 요소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지역감정이 남아 있어서 일부 지역(대구광역시)에서는 하나의 정당 후보만을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정당 후보는 출마해도 당선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한 후보가 어렵게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광역시장 낙선, 국회의원 낙선 끝에 당선됐으니, 당선자에게는 새로운 정치적 교두보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지역을 위해 헌신할 기회를 정말 어렵게 얻었습니다.
하지만, 지역구 당선자였음에도 당선자는 중앙정치에 흡수됐습니다. 장관직을 고사하지 않고, 수용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역구는 중앙정치를 위한 하나의 발판으로 사용했을 뿐이죠. 그러다 보니, 이후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연히 낙선했습니다. 이후 그 정치인은 국무총리 직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지역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중앙정치를 목적으로 직을 수행하다 보면 중앙과 지방의 이해가 상충할 때 중앙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역으로 중앙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한 사항을 포퓰리즘을 이용해 지방자치단체가 애써 무시하기도 합니다.
지방분권 시대의 리더는 적어도 임기 기간에는 완전히 지역 일꾼이 돼야 합니다. 혹, 중앙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더 열정적으로 지방정치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에서 밀어주는 인물이 아니라, 지역에서 필요로 하고 원하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제8회 지방선거시 대구광역시에 ‘국민의 힘’ 후보 경선이 있었습니다. 3명의 후보가 있었는데, 한 명은 20대 대통령과 당내 경선을 펼쳐 낙선한 후보, 다른 한 명은 20대 대통령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후보, 마지막으로 18대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후보. 3명 중 2명은 그나마 대구와 연고가 있는 후보였지만, 다른 한 명은 대구의 행정구역도 잘 모르는 후보였습니다.
도대체 연고지도 아니고, 출마 지역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이 왜 지방단체장이 되겠다고 출마했을까요? 여전히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지역을 위한 온전한 단체장이 등장할 수 있을까요?
다음으로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중앙과 협상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 구도는 양당제도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와 동등하게 인식되지 못하고 하위 정치 수준으로 인식돼 있습니다. 대통령이 시장보다 높은 지위인 것은 맞지만, 지방정치를 담당하는 단체장은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대통령과 쟁론할 수 있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서울특별시의 강남은 강남특별시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하나의 정당을 지지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구청장이 시장의 권위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지역주민이 밀어주는 단체장이다 보니, 보다 높은 단체장의 권위 앞에서도 밀리지 않는 것이죠. 정당이 달라서 무조건 반대만 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라면 중앙정부와 같은 정당 소속이라고 하더라도 지역 발전을 위해서라면 당당히 협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단, 주의할 점은 지역 이기주의(nimby phenomenon)는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 인재를 잘 선발해야 합니다. 공무원 시험으로 지역 일꾼을 선발하기도 하지만, 단체장의 권한으로 인재를 선발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논공행상(論功行賞) 방식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이런 구태의연(舊態依然)한 방법은 결국, 지방정치의 발전을 막고 ‘토호 세력’ 중심의 정치를 고착화해 지방정치를 정체 혹은 낙후시킬 뿐입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여전히 학연, 지연, 논공행상 등으로 점철된 상황입니다. 20대 대통령조차도 인재 중심의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인선으로 곤욕을 치렀습니다(현재 진행 중입니다).
“1기 내각을 두고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 ‘경육남’(경상도·60대·남성) 인사라는 지적도 불거졌다. 실제 국무위원 후보자 19명 중 여성은 세 명에 불과했다. 윤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약속한 30대 장관이 없고 전남, 강원, 충남 출신이 포함되지 않았다.”
보수 언론(동아일보)에서 조차도 동의하기 힘든 인선인 셈이죠. 결국, 인재 중심보다는 자신의 측근 중심으로 공직자를 선정한 것이죠.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면, 이권 세력도 함께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공과 사를 분별해서 지역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인재, 업체를 선정해야만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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