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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_이야기(12)] 새로운 시대는 ‘분권’과 ‘포용’

1부: 21세기 지방분권 #09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2.08.29 00:12 의견 0


◆ 권력을 나눠야 할 때

제19대 대통령(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된 직후 지방선거에 앞서서 지방분권과 관련한 토론이 한 창이었습니다. 대체로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국민들의 이해도 부족해서 지방분권과 관련한 논의는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자취를 감췄습니다. 여전히 많은 국민은 지방분권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시기상조로 생각합니다. 지방의 재정자립이 어렵다는 이유로 말이죠.

그러나 지방분권을 시행하면서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반에 걸쳐서 준비하면서 중앙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는 없을까요? 사실, 경제 자립이 문제가 아니라 지방분권에 대한 무지, 그리고 정치적 무관심 등이 더 큰 장애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 살던 아파트 게시판에는 지방분권과 관련한 헌법 수정에 대한 동의 서명 게시물이 있었는데, 공란으로 가득한 채 소리도 없이 정리됐습니다. 물론, 지역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로 계속 논의도 하고, 준비도 하고 있긴 합니다.

앞서서 지적했듯이 현대는 중앙정부의 거대한 권력만으로 국가를 통치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미, 1990년대부터 ‘거버먼트(Government)’를 대체하기 위한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덕분에 시민사회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시민사회가 성장했다고 해서 시민사회가 발전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거버먼트’와 협력할 수 있는 민간 수준의 권력이 등장하고 형성된 것만으로도 권력의 다원화가 시작됐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거버넌스라는 말이 등장한 지도 30년이 넘으니 거버먼트와 함께 또 다른 고인물이 된 듯합니다. 하지만 거버넌스의 등장만으로도 거버먼트 시대가 종료되어야 한다는 의미만큼은 충분히 전달했습니다.

권력의 다원화가 더 이뤄질 것인지, 아니면 다시 중앙권력에 힘이 실릴지는 알 수 없으나 시민사회의 성장은 ‘거버먼트’ 중심의 통치 한계를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혼자 다 할 수 있다면, 굳이 권력을 나눠 줄 이유가 있을까요? 좀 더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각반과 학교는 학생 임원을 선출합니다. 회장, 부회장 등을 선출하죠. 학교 차원에서 임원들이 있는데, 각반에서도 임원을 선출합니다. 모두 알다시피, 일반 학생들은 학교 임원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학교 생활하는 데 도움을 주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각반 임원들이 학생들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 선생님께 의견도 전달하고, 공지 사항도 중간에서 잘 전달하니까요. 혹, 전교 체육대회라도 개최한다면? 학교 임원들만의 힘으로 치러낼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각반 임원의 역할이 있어야 성공적으로 체육대회를 치러낼 수 있습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앙정부의 힘만으로 국가를 잘 이끌 수 없으니, 지역을 나누고 ‘장’을 선출했습니다. 과거에는 임명직이었지만, 이제는 선출직입니다. 그리고 지방자치제도가 정착하니 지방자치단체장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권한도 커졌습니다. 이제 지방자치제도가 더 발전해서 지방 정부(지방자치단체와 지방정부는 다릅니다. 많은 사람이 이 둘을 혼용해서 사용하는 무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수준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위에서 예시로 설명했듯이 학교 단위만 생각해봐도 ‘지방분권’이 얼마나 필요한 제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지역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스스로 만드는 것,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일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에서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지역 단위–광역시도 수준에서 자치구, 시, 군 수준으로-는 더 작아져야 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시민들의 의식수준도 향상돼야 하고요.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어도 운용하는 사람에게 능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 위해서 시민들이 지방분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우선돼야 할 게,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해서부터 관심을 갖는 일입니다.

현재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와 비교할 때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높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도가 높은 대통령의 업무–좋은 정책을 마련해서 실행한다고 해도-는 우리의 일상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 지역(군, 구 단위)에서의 발생하는 일들이나 작은 변화는 일상에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국가차원의 스포츠 행사를 한다고 해서 당장 나한테 영향을 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거리 응원문화가 생겨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 외에 특별히 영향을 주는 게 없습니다.

물론, 기분에 영향을 주긴 합니다. 이것도 월드컵이나 올림픽 수준에 국한된 것으로 세계선수권 대회를 한다고 해도 당장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마을 축제가 열린다면 어떨까요? 일상 동선이 달라집니다. 차를 타고 다니는 길이 달라질 수 있고,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지났던 거리를 우회해서 지나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권력은 우리 피부에 더 민감하게 닿을 수 있도록 작아지고, 시민은 그런 작은 권력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당한 규모의 자치 공동체가 조성되고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SNS가 위세를 떨치는 현재도 ‘던바의 수(Dunbar’s number)가 있어서 150명을 넘어서는 인간관계는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대 국가와 도시 인구는 아무리 적어도 150명을 훌쩍 뛰어 넘습니다. 그러니, 지방분권 규모도 마을공동체권 단위로 나눠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런 정치권력은 경제와 함께 상호작용해야 실효성이 발휘됩니다. 정치권력의 분산은 세계적인 경제 트렌드 ‘포용(Inclusive) 경제’와 같이할 때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가 오른쪽 다리라면 다른 하나는 왼쪽 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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