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최근에는 평등보다는 ‘공평(fair)’이 더 중요한 개념으로 부상했습니다. 20대 대통령 당선인도 가장 앞에 건 단어가 바로 ‘공평’이고요. 같이 등장한 단어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를 지닌 ‘내로남불’이라는 말입니다. 공평은 결과로서 평등이 불가능하다면, 기회라도 똑같이 주자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공평’도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편한대로 해석한다면, 결국 ‘내로남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평등도 공평도 어렵다면, 포용은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결국, 국민이 기본적인 행복추구권과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주는 게 아닐까요? 그러나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북부 유럽(덴마크 등)의 몇 국가는 ‘주거 복지’, ‘의료 복지’, ‘교육 복지’를 실현했습니다. 적어도 의식주 문제와 교육 문제에 대한 고민을 삶 속에서 지울 수 있도록 한 것이죠.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력 수준에서 완전한 복지국가의 실현은 어렵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늘어나는 사교육비만 봐도 주거 복지와 교육 복지는 물 건너갔습니다.
그나마 의료 복지 시스템은 좋아서 OECD국가 내에서도 의료비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의료 분야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판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보면 복지 국가로 나가는 길도 꽤 멀어 보이는 데, 여전히 보편적 복지 주장과 선택적 복지 주장이 대치해서 맹렬히 토론 중입니다.
지금까지 포용, 평등, 공정 등에서 살펴봤는데, 결론적으로 모두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추상적인 개념은 중앙에서 논의하는 것이고요. 즉, 이런 추상적인 언어가 구체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그 시공간이 작아야 합니다.
서울 강남의 부자와 농촌 어르신을 평등하고 공평하게 대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지방분권은 거의 유사한 시공간을 공유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포용과 공평 정책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단, 지역 간 격차가 문제로 지적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은 중앙정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중앙정부가 할 일이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할 일이 다른 것이죠.
지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가 챙길 수 없는 주민의 삶을 살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국가 단위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로 이뤄져 있으니, 주민의 삶에 밀접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중앙정부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부 지방단체(경기도 등)는 이런 부분을 보완해서 전 주민을 대상으로 지원했고, 추가로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의 제한된 지원을 지역 상황을 고려해서 보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과거 학교 급식과 관련해서 중앙에서 치열한 논쟁이 있을 때도 무상급식을 빨리 실시한 지방도 있었지만, 그 시기를 늦춘 지방도 있었습니다. 중앙에서 토론이 끝나지 않았지만, 지방은 자치단체의 여건을 고려해서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죠.
과거 나폴레옹 전쟁 처리를 위해서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의가 열렸는데, 워낙 회의 내용이 진전이 되지 않자, 당시 인기 귀족 샤를 조제프 라모랄 리뉴는 “회의는 춤춘다. 그러나 진전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중앙에서 진행하는 토론과 논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포용이나 공정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중앙정부에서의 결단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 특성을 파악하고 실질적인 정책을 실행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1부 마침)
함께 생각해봅시다
최저 임금, 최고 임금, 자본세 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 봅시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 근거를 제시해 봅시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생각해 보고,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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