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시대가 정착할 때쯤 현재 청소년–대체로 2010년 이후 출생자-들은 성인이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쯤 정치는 중앙 정치에 관심두기 보다는 오히려 일상과 밀접한 곳,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더 관심 두고 정치 행동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현재는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사회 등에서 청소년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투표권이 없으니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죠. 게다가 부모들도 여전히 시대의 변화를 흘려버리고 학력 서열만을 중요시 하다 보니, 학업 성적과 무관한 분야에 대한 자녀의 관심을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더 나아가 부모가 자녀의 진학에 깊이 관여하기도 합니다. 우연히도 이런 현상은 제20대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요.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니었습니다. 검찰 총장을 역임하긴 했으나, 국회의원 등과 같은 선출직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까지의 당선과정을 훑어보면, 공정과 진보를 외치면서 전 정권에서 중용됐던 공직자 자녀의 부정한 입학과정을 수사했고 그 과정에서 급부상한 인물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진보적이었을망정 자녀 교육에서는 철저히 보수적이었던 정치인을 수사하면서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얻게 된 것이죠. 진보나 보수 모두 자녀 교육과 관련해서는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줬습니다.
태어 날 때부터 부모의 힘으로 대학까지 결정되는 상황인데, 청소년들의 진심을 어떤 성인이 들어 줄까요? 아무리 요구해도 결국, 투표권이 없으니 쉽게 무시할 수 있습니다. 마치 “너희들은 공부나 해! 그래서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면 모든 게 이루어질 거야!”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듯합니다.
20대 대선 기간 중, 각 정당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기초연금은 모두 올렸습니다. 그러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정책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주 교육 수요자인 청소년들을 위해서 각 지역마다 교육감은 별도로 선출되는 거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감을 선출하는 데 학생들은 투표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성인들이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실정을 고려하면, 일단 집 안에 십대가 없으면 교육 분야에 대한 관심이 떨어집니다. 특히, 60대 이상이 돼 모든 자녀들이 출가했을 경우 아예 무관심하게 되고요. 그런데,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은 이들에게만 있는 것이죠.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조금 양보해서 이야기한다면 대학생들도 투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학생은 자기 주소지와 재학 중인 학교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in 서울’을 선호하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서울 소재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중 서울 교육감 선거에 투표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그러다 보니, 교육감 선거도 정당의 색에 따라 결정되고 맙니다. 물론, 특정한 정당에 속하지 않은 후보들이 등장하지만, 가까운 정당이 있음을 모르는 유권자가 있을까요? ‘눈 가리고 아웅’할 뿐이죠. 그러다 보니 교육 전문가를 선출하는 게 아니라, 교육을 앞세운 정치인들의 자리싸움으로 전락하는 게 현실입니다.
조금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현재 대구광역시의 교육감은 현재 여당(국민의 힘)의 전신 ‘새누리당’ 시절 여성가족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선거 홍보 자료에도 정확하게 적혀있습니다. 과연 정치적 정파와 무관한 교육감 선출이 가능할까요?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교육은 양이 해야지, 늑대가 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교육감과 관련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각 지역 교육감은 별도로 선출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교육은 청소년들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기성세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시행됩니다. 교육의 주체는 청소년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수동적인 객체로 만들어 버립니다. 어디에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마음속에 가득했던 불만과 바람을 접고 기존 틀에 적응하거나 일탈해 버립니다.
그러니 “미래의 주역은 청소년”이라는 문구는 어느 시점에 붙었다 철거되는 거리의 현수막처럼 돼 버리고 대다수 청소년이 여전히 대학 입학에 목매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대학도 지역 대학이 아닌 서울 소재 대학에 연연하고요. 이런 상황에서 지역의 좋은 일꾼이 등장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필자가 취재했던 곳 중 광주광역시에 있는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이하, ‘삶디’)’라는 청소년 센터가 있습니다. 여기서 내세우는 청소년 교육은 ‘청소년 지도력’이 아닌 ‘청소년 주도력’이었습니다. 청소년을 가르친다는 의미가 아니라 청소년이 주도적으로 방향을 정하고 학습한다는 의미입니다.
스스로 방향을 설정해 보고, 목표를 정해서 나아가는 훈련은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치 참여는 적정 나이가 될 때까지 참여하기 힘들었습니다. 십대에게 투표권은 없었고, 25세가 되기 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의 후보로 등록할 수도 없었습니다(필자도 대학시절 지역구 구의원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나이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대통령 입후보를 위해서는 40세 이상이어야 했고요.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1977년~)은 2017년에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당시 나이가 만 39세였습니다. 우리나라라면 입후보조차 하기 힘든 나이였죠. 그렇다면 나이가 어렸으니 정치를 잘 못했을까요? 정치인은 잘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낙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이견이 있을 수는 있으나,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프랑스의 국민 평균연령이 어려서 젊은 대통령을 선출했을까요? 아닙니다. 나이는 어려도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지지한 것입니다. 참고로 핀란드의 여성 총리 산나 마린은 34세에 행정부 수반이 됐습니다. 세계적인 추세를 볼 때, 입후보자 연령을 제한하는 것은 퇴보적으로 보입니다. 나이가 깡패인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청소년들이 리더 혹은 정치 주역이 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간단히 살펴봤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좋은 리더’를 위한 조건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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