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모노즈쿠리’(モノづくり) 국가다. ‘모노즈쿠리 기반기술 진흥기본법’에 의한 ‘모노즈쿠리 백서’(ものづくり白書)까지 존재할 정도로 기술력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도 강하다.
그런 일본에서 최근 자동차 형식지정을 둘러싸고 허위 데이터를 사용하는 등 품질 부정 관련 대형 스캔들이 발생했다. 여기서 문제가 된 형식지정이란 자동차 회사 측이 형식지정 획득을 위해 국가가 요구하는 조건에 대한 시험결과를 제출하고, 이것이 통과되면 생산되는 각각의 차량 1대씩 심사를 할 필요가 없는 제도를 말한다. 즉, 국가가 요구하는 안전기준 심사를 회사가 대신하는 것인데, 이런 제도는 국가가 자동차 생산회사을 신뢰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지만 이번 스캔들로 그 신뢰가 깨진 것이다.
스캔들에는 토요타 자동차, 혼다, 마츠다, 스즈키 등 일본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이 포함(국토교통성 발표, 6.3)되어 있고, 이 가운데 토요타 자동차는 2023 사업연도(2023.4 ~ 2024.3) 기준 영업이익이 5조 3천 5백억 엔(약 47조 원)에 달하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사건이 확대된 건 2022년부터 발생한 토요타 그룹 계열사인 히노모터스, 다이하츠공업, 토요타자동직기에서 형식지정을 둘러싼 품질 부정문제가 발각된데 기인한다.
결과로 일본정부(국토교통성)는 형식지정을 가지고 있는 23개 자동차 회사 및 62개 부품 제조사에 유사사례가 있는지 자체 조사 결과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 과정에서 지금의 스캔들이 발각된 것이다. 이같은 스캔들은 아직 조사중이므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제로 사안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스캔들을 두고 토요타의 토요타아키오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인증제도(형식지정)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으로 자동차를 생산하는 회사로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며 사과를 하는 한편, 자동차는 안전에 이상이 없음을 강조했다. 토요타 외에도 이번 스캔들에 포함된 다른 자동차 회사도 거의 같은 내용의 사과를 했는데, “국가가 정한 테스트를 허위로 했지만, 그래도 자동차는 안전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보도에 의하면 일부의 자동차 생산회사는 인증 테스트가 수출 및 내수용의 차이로 인해 국가가 정한 기준보다 엄한 기준으로 했지만, 이를 국가가 지적한 것이며 이같은 형식지정 제도가 수십 년 지난 오랜 관행이기 때문에 바뀔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도된 인증부정 사례 중에는 에어백에 타이머를 장착하거나 충돌 각도를 허위로 보고하는 등 안전과 관련된 허위 문제도 있었고, 수출 및 내수용 기준이 차이가 나는 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자동차 생산국도 마찬가지 상황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스캔들은 자동차 관련 단체가 정치적인 압력단체가 될 수 있다. 토요타만 하더라도 종업원 7만여 명과 6만 개의 부품회사 및 해외 26개 국가와 지역에 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자동차공업회의 TV광고에 의하면 일본에서 자동차 산업 관련 종사자수는 약 550만 명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550만 명에 달하는 인원 중 대부분이 유권자들이라는 의미가 방송을 통해 암묵적으로 국민과 정치 세력에게 전해졌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①토요타 아키오 회장은 기자회견(6.3)에서 “(형식지정상의) 부정 박멸은 무리다”는 발언을 했다. 이번 스캔들의 원인이 마치 휴먼에러에 의해 불량품이 발생한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듯한 발언이다. ②그리고 2022년부터 발생한 토요타 그룹 계열사인 히노모터스, 다이하츠공업, 토요타자동직기에서 엔진 또는 자동차 형식지정을 둘러싼 품질 부정 이후에도 자동차 업계는 큰 변화는 없었다. ③또한 국토교통성도 지난 4월 9일과 5월 27일에 외부인사를 포함해서 ‘자동차 형식지정에 관한 부정행위 방지를 위한 검토회’도 개최했지만 내용은 비공개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스캔들과 관련해 지금까지 총 68개 회사가 자체 조사를 끝냈지만, 아직 17개 회사는 조사가 진행 중이므로 어디까지 확산될 지 의문이다. 이번 스캔들 이후에 나올 내년도 ‘모노즈쿠리 백서’(ものづくり白書)는 어떤 내용이 포함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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