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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알자] 20여 년 만의 신권발행

정회주 전문위원 승인 2024.07.11 11:43 | 최종 수정 2024.07.12 12:09 의견 0

일본은 지난 7월 3일, 20년 만에 10,000엔, 5,000엔, 1,000엔 등 3 권종의 신권을 발행하고 유통하기 시작했다. 신권 발행을 두고 일본 국립인쇄국은 “150년 이상 길러 온 위조방지 기술의 결정(150年以上にわたり培った偽造防止技術の結晶)”이라고 자랑하는 가운데, 우에다 카즈오(植田和男) 일본은행 총재도 “새로운 일본은행권이 우리(일본)경제를 지탱하는 윤활유가 되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7월 3일부로 유통개시 된 1만, 5천, 1천엔 신권 (출처: 일본 국립 인쇄국)


◆발행 목적

일본정부가 신권을 발행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첫째, 위조방지 등 최신기술을 도입 및 디자인을 새로이 하기 위함이다. 최첨단 홀로그램 기술을 도입하여 지폐를 비스듬히 기울이면 초상화가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초상화 배경에 워터마크가 고화질 패턴으로 표현되어 있다. 외국인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숫자 표시를 확대했다.

둘째, 위와 같은 표면적 이유뿐 아니라 개인이 보유한 현금을 세상 밖으로 꺼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도록 함과 동시에 탈세를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일본에서는 개인이 은행에 저축하지 않고 현금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을 장롱예금(タンス預金)이라고 한다. 개인이 장롱예금을 보관하는 이유는 ①은행에 보관해도 이자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②일본의 노년층은 지난 90년대 후반 버블 붕괴 때 대형은행이 파산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어 은행에 대한 불신감이 기저에 있다. ③또한 대지진과 같은 혼란 때 은행 입출금이 어려울 뿐 아니라, ④자신의 치매 혹은 중병 또는 사망으로 인한 상속시에 구좌가 동결될 문제에 대한 대비책 일환이기도 하다. ⑤특히, 개인 자산 규모를 국가가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도도 있다. ⑥장롱예금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약 50조 엔 규모라고 한다. ⑦이런 오랜 관습을 깨기 위해 일본 정부는 2024년 1월부터 ‘新NISA(Nippon Individual Saving Account)’라는 한측 강화된 소액투자 비과세 제도를 시행했는데 개인별 연간 360만 엔(총납입액 1800만 엔)까지 비과세 및 기간도 무기한으로 늘렸다. 또한 탈세 방지책으로 2023년 10월부터 연간 매출액이 1000만엔 이하 면세사업자에 대한 인보이스 제도를 시작하였다.

셋째, 캐시리스(현금 없는)사회를 추진하고자 하는 목적도 크다.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듯이 아직 일본 사회는 아날로그 사회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0년의 현금 비사용 비율은 13.2%에 불과했는데, 이는 약 87%는 현금을 사용했다는 말이 된다. 당시에는 백화점, 호텔, 대형 할인매장 등을 제외하고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2021년 기준으로도 32.5%에 불과하니 아직도 우리 기준(93.6%)으로 볼 때 상당히 뒤쳐졌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2025년 6월까지 캐시리스 결제 비율을 4할까지로 목표를 삼고 있다.(2019.6.21. 각의결정, 재무성)

(출처: 일본 경제산업성)
(출처: 일본 경제산업성)


◆사용 여부

일본 사회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카드뿐 아니라 라인페이, 페이페이 사용이 증가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금을 사용하는 나라다. 음료수 자판기는 지폐와 동전을 사용하며, 기차역 등 거의 모든 일상생활에서 지폐를 이용한 발권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지난 5월 일본 재무성이 업계 단체를 통해 설문 조사한 결과, 신권 발행개시까지 금융기관의 ATM은 9할 이상, 철도 발권기 및 대형 편의점, 슈퍼 등은 80~90%가 개선된 것으로 보지만, 음식점의 식권기는 50%, 자동 판매기는 20~30% 개선에 그친 것으로 보았다.(2024.6.3. NHK)

대기업과 금융기관은 새 지폐 발행에 앞서 대응하고 있지만 중소사업자에게는 현실적으로 큰 부담이다. 새 지폐를 사용가능한 발권기는 대당 약 100만 엔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또한 지자체에 따라 발권기 개선 시 보조금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일부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음료수 자판기와 JR 역사 내의 발권기 (정회주 촬영, 제공)


◆일본 여행시 유의점

일본 국내에서는 아직 신권과 구권을 혼용하고 있으며 오히려 일본을 여행하는 여행객 입장에선 신권만 가지고 일본에 갔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작은 라멘 가게를 간다면 구권만 사용할 수 있는 발권기를 사용하고 있을 거라서다. 물론 가게 점주가 직접 신권을 구권으로 교환해 줄 수도 있겠지만, 무인 자판기의 경우에는 구권만 통용되는 자판기가 많을 것이다. 변화에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본 사회의 특성상 적어도 연말까지는 신권과 구권을 혼용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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