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스틸컷
우선 제목만 보고 영국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필자의 무지함을 반성부터 하고 시작한다. 맨유의 팬인지라 불현듯 떠오르는 이미지가 오직 그것이었는데 놀랍게도 미국 보스턴에서 멀지 않은 지역의 이름이라고 한다.
입소문을 타고 좋은 영화라고 알려지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영화가 주목받게 된 것은 역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케이시 에플렉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일 것이다. 워낙 유명한 형을 두고 있다 보면 자신의 이력보다는 누구의 동생이라는 타이틀로 더 알려지곤 한다. 어찌 보면 능력의 고하와 무관하게 묵시적인 평가절하를 당하는 것인데 케이시 에플렉이 딱 거기에 속하는 것 같다. 형은 인증된 감독이자 흥행배우인데 반해 동생인 케이시는 연기로 승부하는 타입이다 보니 대중들에게는 형의 파워가 훨씬 더 크게 느껴짐이 당연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는 이유는 영화 속의 케이시 에플렉의 연기가 그만큼 대단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인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영화를 보기 전에 포스터 속의 등장인물을 살펴보는 분들이라면 라인업에 등장하는 미셸 윌리엄스의 이름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베놈의 여친이기도 하고, 역시 다수의 트로피를 수집하는 연기자로 연기하면 빠지지 않으니, 일단 출연진에 대한 의구심은 상당히 사그라들 것이다. 허나 기대와는 달리 미셸 윌리엄스의 분량은 극히 아주 극히 적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행여 그녀 때문에 영화를 보려 하는 이들에게는 실망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한 노출된 정보를 전혀 접하지 않고 봤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정보를 알고 봤다고 해도, 모르고 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 확실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용보다는 엄청난 연기와 공감으로 구성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스틸컷
◇죄책감이라는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살아야 하는 남자. 상처는 흉터가 되고, 낙인이 된다.
영화의 메인 스토리는 간단하다. 갑자기 들려온 형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고향으로 가서 설상가상으로 형의 아들을 맡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조카와 함께 고향을 떠나고자 하지만 조카는 완강하게 반발한다. 자실의 실수로 기인한 끔찍한 기억과 조우한 주인공은 고향을 떠나야만 하지만, 아니 살 수 없지만, 조카인 패트릭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떠나야만 하는 주인공과 남아 야만 하는 조카의 극단적인 상황에서 오는 갈등을 내세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딜레마적인 주인공의 상황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죄책감의 근원과 깊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그가 책임져야 하는 조카의 상처와 두려움을 보여줌으로 주인공의 상황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절대로 털어낼 수 없는 죄책감을 등에 지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영화는 그의 입장을 변호하거나 미화 또는 비난거리를 만들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에 의지해서 덤덤하게 끌고 간다. 이런 덤덤한 연출은 극적인 구성을 좋아하는 요즘 관객들에게는 비록 흥미를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깊은 생각과 공감이 필요한 이런 류의 영화라면 꼭 필요한 구성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파오는 영화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스틸컷
◇억지로 덮고 치료하려 하지 마라. 인생에는 안 되는 것도 있으니까.
마음속에 들어앉은 상처와 두려움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대부분 비슷하다. 특히 남자의 경우라면 비록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놓여보지 않았더라도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대처하는 모습과 거의 흡사할 것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책감의 끝에 사람이 반성의 의미 또는 자가 처벌의 의미에서 행하는 것이 철저한 고립이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원천 차단하고 인생 자체를 형벌로 만들어 버리는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의 위안을 찾는 것이다. 더군다나 누구인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실수를 했다고 하면, 그 정도는 당연히 더 심해질 것이고 죄책감은 흉터가 되고 낙인이 되어서 자발적 그리고 완전한 고립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질문한다. 이런 주인공을 어찌해야 하겠냐고.... 용서? 치료? 화해?
꼭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수도 있다. 낙인과 흉터는 숨길 수는 있어도 지워지지는 않는 것이다. 해결을 목적에 두고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까지는 아니지만 다시금 상처가 벌어지지 않는 정도로만 놔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영화는 설득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그 방법이 옳다는 것을 조카인 패트릭의 성장된 모습으로 증명한다. 삶이란 털어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간직하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죄책감일지라도.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스틸컷
◇내면의 어둠을 이야기한다는 것의 어려움...그 어려운 것을 해낸 영화
뭐니 뭐니 해도 영화의 하드캐리는 역시 케이시 에플렉이다.
그의 눈빛에 국적을 떠나서 공감이 되지 않는다면 영화를 잘못 본 것이라 말하고 싶다. 과거의 장면이 현재와 크로스 오버되는 영화의 구성은 엄청난 연기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의외로 공감을 얻기 힘들다. 때문에 이런 영화는 연기력으로 이름값이 높은 배우들에게 어쩔 수 없이 맡겨야만 하는 것이다. 그 어려운 것을 해낸 것이 케이시 에플렉이고, 근래 들어 논란이 많긴 하지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괜히 주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연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영화들 중에 잘 나가다가 무리수를 두는 경우를 가끔 보는데, 그런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극적인 효과로 인한 관객의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서이다. 헌데 이 영화는 그런 무리수가 없이도 마치 진국이 우러나듯이 천천히 차오르는 공감을 이끌어내니 연출을 잘했다는 말 밖에는 답이 없다.
끝으로 음악 이야기를 하자면, 좋은 영화인데 음악이 나쁜 경우는 단언컨대 전혀 없고 있을 수도 없다. 만약 어떤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면 그 역할의 최소 절반은 음악이 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 영화 역시도 그렇다. 그중에 특히 인상 깊은 음악이 "아다지오"를 바이올린으로 편곡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음악들을 사용했는데 시기적절이라는 말을 사용함에 아쉬움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는데 슬럼프가 오긴 했지만, 그런 이유보다 이렇게 리뷰를 쓰기가 어려운 영화를 만나는 것도 참 드문 일이다. 내가 주인공의 죄책감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주인공의 입장에 동화되어 영화를 보고 나니 영화는 머릿속에서 다시금 재생이 되고 있는데 막상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 역시도 주인공만큼은 아니지만 죄책감이라는 그늘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눈물을 흘리며 본 영화였다. 아마 이 영화를 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 생각하며 이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추천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2016)
감독 : 케네스 로너건
출연 : 케이시 에플렉, 루카스 헤지스, 미쉘 윌리엄스, 카일 챈들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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