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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의 무비파크]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2006)

다큐PD 김재훈 승인 2019.08.23 10:52 | 최종 수정 2019.08.23 11:22 의견 0
영화 <향수> 스틸컷  (네이버 영화)

이 영화는 대표적인 은둔형 작가로 평가받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의 인지도가 너무 높아서 영화의 평가를 상대적으로 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는 비운의 작품이기도 하다. 독일 작가의 작품으로 전 세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고 소개가 될 정도니, 내용이 궁금해서 영화를 보는 이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영화가 안게 되는 한계라는 것은 꽤나 분명하다. 관객들은 영화가 얼마나 원작을 훼손하고 있는지를 눈에 불을 켜고 찾을 것이고, 이내 통렬한 비판과 비난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정도로 많이 읽힌 원작이라면 그 정도가 걱정스러울 수준이라 예상하기 쉽다. 게다가 주인공을 원했던 레골라스 "올랜도 블룸"을 버리고 신인 "벤 위쇼"를 선택하는 모험까지 둔 영화. 하지만, 영화의 뚜껑을 열었을 때 그것이 기우였다는 것은 첫 장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벤 위쇼는 그루누이 자체였다.

영화 <향수> 스틸컷  (네이버 영화)

◇ 가장 냄새나는 곳에서 태어난 냄새가 없는 아이, 사람인가? 악마인가?

파리라는 곳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은 상당히 많다. 세계사를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이곳을 중심으로 벌어졌음을 학창시절을 제외하고 서라도 수많은 콘텐츠들을 통해서 알고 있다. 때문에 어떤 콘텐츠들은 또 우려먹는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곤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 향수는 전혀 새로운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역사를 차용한 것이라고는 오로지 파리가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냄새의 도시라는 정도일 것이다. 향수라는 것이 냄새를 가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고 파리가 향수의 중심지라는 것만으로 설정의 역할은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내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주인공 그루누이는 세상에서 가장 천박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 냄새가 없는 냄새에 집착하는 아이는 사람들에게 이유도 모른 채 그에게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다. 냄새라는 욕망 하나로 천상의 향수를 만들어낸 그가 선택한 마지막의 죽음은 여러모로 생각할 것이 많다.

영화 <향수> 스틸컷  (네이버 영화)

◇사람의 아름다움은 외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향기에서 나온다

아마 이 영화가 늦게 만들어졌다면 관객들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냄새라는 경계가 이 영화에도 반영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영화는 그 냄새를 향기라고 순화해서 아름다움의 근원이라는 공식을 대입하고 있다. 그리고 그 향기는 조작될 수 있다는 비판이 서려있음을 느끼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일지 모르겠으나, 영화는 대체적으로 원작의 무거운 비판의 구조를 따라가고자 무던히 애를 쓴 흔적들이 보인다.

욕망에 대한 집착, 가장 비천한 자가 엘리트들을 무릎 꿇게 만들 수 있다는 설정들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가지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엘리트주의의 반대)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욕망의 달성을 위해서 무조건적인 직진만을 강요하는 요즘 사회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시간이 꽤나 지난 영화지만 어색함이 없이 오히려 타당성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영화 <향수> 스틸컷  (네이버 영화)

◇ 갑과 을의 관계, 냄새의 관계로 만들어내다

몇 가지 장면에서도 등장하지만, 영화는 냄새로서 여러 가지 관계를 결정짓는다. 심지어 갑과 을의 관계까지도 말이다. 냄새만 맡고도 사람의 성향을 알아내는 그루누이를 통해서 상하관계의 부적절함을 느낀 것은 아마도 현대사회에서 점점 심화되고 있는 빈부에 따른 계급화를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의도나 연출의 의도보다는 현 사회가 그러하니 이런 느낌을 받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유명한 환락의 축제 엔딩에서 계급을 초월해서 주인공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만날 수 있다. 어떻게 이렇게 시각적으로 잘 표현한 것인지 박수가 나오지만 그 근원에 자리 잡고 있는 감정에 씁쓸함도 느껴진다.

벤 위쇼라는 당시에는 신인배우가 만들어내는 그루누이의 눈빛과 일상을 사는 지금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눈빛이 크게 다르지 않음은 착각이 아닌 것 같다. 

 

▶영화 <향수>와 원작과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팟캐스트 [책영만-책,영화를만나다]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향수 1부: http://www.podbbang.com/ch/13194?e=23152020
  -향수 2부: http://www.podbbang.com/ch/13194?e=23152025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2006)
감독: 톰 티어베그 / 출연: 벤 위쇼, 더스틴 호프만, 앨런 릭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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