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를 통틀어서라도 최고의 악당을 뽑으라면 무조건 들어가는 악역'안톤 쉬거'가 등장하는 영화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다. 코엔 형제가 많은 작품을 했음에도 그중에 하나를 꼭 뽑으라고 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영화일 것이다.
코엔 형제 감독의 장점이라고 하면, 캐릭터에 부합하는 치밀하게 의도된 대사 전달일 것이다.
코엔 형제들 특유의 냉소와 치밀함이 등장인물들의 엄청난 열연과 버무려지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늘 선택을 강요받고, 선택해야만 한다.
안톤 쉬거는 엄청난 살인마다. 죄의식도 없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는 진정한 프로이자 사이코 패스이기도 하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진정한 살인마의 자세라는 것을 영화 내내 몸소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인물은 피갑칠로 도배되는 수많은 공포 영화 속의 살인마들을 제치고 가볍게 최고의 악역에 오를 수 있었다.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그의 표정과 외모, 음성에서도 두려움을 느낄 수 있지만, 진정 두려운 것은 언제나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 것이다. 언제든지 올 수 있지만, 그 언제든지라는 것은 다시 말해 지금이 아닌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아무도 늙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늙어가고...
그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제목은 정말 기가 막히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주인공에게는 분명 선택지가 있었지만, 암울한 그가 선택한 것은 죽음의 유혹이었다.
살육의 현장에서 돈다발을 쥐었으나, 물을 달라는 마지막 생존자의 말이 귓전에 걸려 물을 들고 다시금 현장을 찾아가서 쫓기는 신세가 되듯이 일반적인 우리의 인생 속에서 선택에 따른 유불리란 원래부터 없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누가 우리를 위해서 존재할 수 있겠는가. 선택의 옳고 그름은 그저 신만이 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안톤 쉬거가 동전을 던져서 살인을 결정하듯이 말이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스틸컷
◇스릴러가 아닌 허무함을 이야기하는 영화
한 치 앞을 모르는 주인공들의 상황을 보면 스릴이 있어야 정상이지만 이 영화는 스릴보다는 허무함이 들끓는다. 보안관의 말처럼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 시기에 너무 강한 놈을 만났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각박함을 향한 조롱이 아니었을까 한다.
출연진의 대사 중에 "암에 걸린 데다가 집도 없다"는 말은 보안관의 이야기들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대사를 중시하는 감독인 만큼 대사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시대를 바라보는 그들의 묘한 시선이 감지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조쉬 브롤린도 아니고, 안톤쉬거역의 하비에르 바르뎀도 아니다.
바로 이 보안관이다. 선택지들을 조합해주는 역할을 하는 보안관이야말로 바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세계관을 투영하고 있다. 변해버린 세상에 자신을 대입해서 자신의 선택은 포기였음을 말해주는 이 역할이야말로 감독이 진정 세상에 말하고자 했던 현실이다.
맞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제 죽일 필요는 없지 않냐는 물음에 안톤쉬거는 예정되어 어쩔 수 없다고 답을 한다.
척박하기만 한 이 세상에서 잊혀져 가는 존재들에게 신경을 써주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예정된 척박함을 향해서 전진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노인이 된다.
그냥 잊혀질 권리라도 가질 수 있다면 행운일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2007)
감독 :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출연 : 하비에르 바르뎀, 조쉬 브롤린, 타미 리 존스, 우디 헤럴슨, 켈리 맥도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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