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독일 통일(56)] "브란트 총리, 바르샤바에서 무릎을 꿇다" - 바르샤바 조약, 프라하 조약 체결
칼럼니스트 취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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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6 07:53 | 최종 수정 2019.08.1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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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서독과 소련 간의 조약 체결에 관한 서독정부의 서신에 대한 1970년 8월 7일자 각서를 통하여 이 조약이 전체로서 독일과 베를린에 관한 4강국의 권리와 책임이 이 조약을 포함하여 양국간의 어떤 쌍무조약에 의해서도 영향 받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서독과 소련 간의 조약의 내용을 전폭적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소련과 무력포기와 동유럽의 현행 국경선 인정에 합의함으로써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와 독일연방공화국 간의 협상은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폴란드와의 조약은 전문에서 ‘2차대전 전쟁의 첫 희생자는 폴란드이며 전쟁은 유럽인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주었다’고 명시한 뒤 독일과 폴란드의 초미의 관심사인 국경 문제에 관해서 ‘현재의 경계선 내에서 유럽의 모든 국가의 국경의 불가침성, 영토의 완전성 및 주권 존중을 인식하고서’라고 선언했다.
제1조 1항에서 1945년 8월 2일 포츠담 의정서 부록 4장에 따른 현행 경계선이 폴란드인민공화국의 서쪽 국경선임을 확인하고, 2항에서 현 국경선에 대한 현재 및 장래의 불가침성을 확인하고 3항에서 영토권을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언명하였다. 소련과의 조약과 마찬가지로 5개 조항의 짧은 조약에서 폴란드와 관계에서 핵심인 독일 동부 즉 폴란드의 서부 국경선 즉 오데르-나이쎄 선 인정을 전문과 본문에서 거듭 확인하였던 것이다.
조약의 상대는 과거의 폴란드가 아닌 현재의 폴란드인민공화국이다. 현 국경선이란 과거 폴란드의 국경선이 아닌 현 폴란드인민공화국의 국경선이란 의미다. 협상 당시에 또 하나의 문제는 과거 독일제국의 동부 영토에 거주하는 독일인 내지는 독일계 주민의 재정착에 관한 것이었다. 1975년에 비로소 만족스런 타결을 보았다. 서독이 폴란드에 10억 마르크의 차관을 제공한 후 이들 약 12만5천 명이 떠날 수 있었다.
폴란드와 조약 서명은 1970년 12월 7일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있었다. 이 때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다. 브란트의 새로운 동방정책의 원래 예정에 없던 또 다른 이벤트였다. 바로 바르샤바의 1943년 4월 19일 바르샤바의 유태인 강제거주지에서 유대인이 봉기하여 5만6천 명의 유대인이 체포되고 약 7천 명이 트레블린카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죽음을 당한 것을 기리는 봉기기념탑 앞에서 브란트 총리가 무릎을 꿇은 사건(Kniefall in Warschau)이었다.
이를 독일 사민당은 이렇게 적고 있다.
“흐린 날씨였다.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 봉기 희생자 기념 제단에 도착하였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모든 걸음을 따라갔다. 브란트 총리가 꽃다발을 올렸다. 그리고는 총리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런 행동으로 바로 옆의 수행자들도 예상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나중에 브란트 총리는 측근인 에곤 바르에게 꽃다발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브란트 총리가 우중충한 날씨 속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 흑백 사진은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체코슬로바키아와 협상은 1970년 10월에 협상이 시작되었지만 브란트 총리 불신임 문제 등 다른 급박한 사안에 밀려서 1973년 2월에 들어서서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서 1973년 12월 11일에 정식으로 조인되었다. 서독과 체코 간의 관계 정상화의 핵심 역시 영토와 국경에 관한 것이었다. 1938년 9월 28일 히틀러의 무력시위 하에 주데텐 할양을 내용으로 한 1938년의 뮌헨협정(Münchener Abkommen) 무효화와 영토 보전 및 국경선에 대한 확약이었다.
프라하조약 역시 6개조의 짧은 조약이었지만 그 동안 체코슬로바키아가 요구해온 내용을 서독이 모두 수용하고 이를 명문화한 것이다. 먼저 전문에서 ‘뮌헨협정은 1938년 9월 29일 나치 정권의 협박 하에 강요된 것으로 인식’한다고 선언하고 1조에서 뮌헨조약을 무효라고 간주한다고 규정하였다.
3조에서 모스크바조약, 바르샤바조약과 마찬가지로 무력 사용 위협이나 무력 사용 포기를 규정하고, 4조에서 국경의 불가침성, 무조건적인 영토적 완전성 존중과 현재 및 장래에 영토권 주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명백히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서독 국내에서 논란이 되었던 뮌헨협정 무효에 따라 점령 기간 중의 독일인들의 법률행위 무효를 주장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요구에 대한 타협을 보아 프라하 조약 2조에서는 독일 점령 기간인 1938년 9월 30일~1945년 5월 9일 기간 중의 주데텐 지역에서의 독일 국적의 자연인과 법인의 법률 행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규정하여 이 기간 중 독일 법률에 의한 행위가 유효하다는 것을 규정하여 각종 혼란을 막았다.
새로운 동방정책의 기본이 되는 모스크바 조약을 비롯하여 바르샤바 조약, 프라하 조약이 마무리되면서 이제 동서독 관계에 관한 협상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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