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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랑_이야기(7)] 샌프란시스코: 말이 필요 없었던 금문교 여정

칼럼니스트 손양화, 임현석 승인 2020.07.29 19:14 | 최종 수정 2020.07.30 19:21 의견 0

20대 초반에는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일정을 짜며 여행을 다녔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계획을 세워두고 가보고 싶던 공간들을 찾아다닌 것도 물론 좋았지만 돌아보면 놓치는 것도 많았고, 정작 내(양화)가 더 머물고 싶은 자리가 어디였는지, 진짜 좋았던 것은 어떤 것이었는지 잊을 때가 많았다.

지금은 계획 없이 여행을 다니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일정 없는 신혼여행이 크게 불안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부적인 일정이 없긴 했지만 아주 대책 없이 가진 않았다. 그 대책이란 건 도시마다 ‘이것만은 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한 가지를 정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하는 1순위만 정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전기자전거를 이용해 금문교를 건너가기로 했다. 사진 속 인물은 임현석.  (양화랑 제공)

 

샌프란시스코의 여정이 남아있는 구글지도  (양화랑 제공)

◇‘금문교로 JUMP’

샌프란시스코에서의 1순위는 금문교를 건너는 일이었다. 다리를 건너 소살리토를 거니는 그것 하나면 된다고 현석님에게 말했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 우리는 일반 자전거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찾아낸 대안은 전기자전거였다. 공유 전기자전거 서비스인 <JUMP>를 이용했다. 앱을 다운받고 근처에 있는 자전거를 찾아서 타기만 하면 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접한 서비스였는데 설치부터 이용까지 무척 간단했다.

전기자전거라서 힘만 조금 들이면 쑥쑥 나가니 흥이 났다. 한국에서 자전거라곤 초등학교 때 이후로 길게 타본 일이 없는 나도 어려움 없이 탈 수 있었다. 전기자전거 만세! 구글맵에서 행선지 검색을 하면 자전거 전용도로로 안내를 해줘서 길 잃을 걱정도 없었다. 무엇보다 자전거 길이 매우 잘 정돈되어 있었고, 안내판도 당연히 늘 필요한 자리에 있었다. 생각보다 가는 길이 멀고 경사가 엄청났지만 힘들거나 무섭지 않았다.

이동수단을 전기자전거로 삼으면 생기는 장점은 시선이 여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없으니 지나치는 사람과 건물 그리고 공간의 쓰임새를 관찰할 여유가 생겼다. 금문교와 농장이 가까워지면서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마천루들은 어느새 저 멀리 우뚝하니 서 있었다. 그제야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벗어났다는 게 느껴졌다. 근처를 둘러보니 창고형 건물을 클라이밍 운동센터로 개조한 건물도 보였고 평일인데도 라이딩이나 조깅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운동하러 온 사람들도 꽤나 보였다.

저 멀리 금문교가 보인다.  (양화랑 제공)

드디어 금문교 앞까지 진입했다. 소살리토로 넘어가는 방향에서는 좌측이 자전거 도로였다. 자전거도로 왼쪽은 말 그대로 망망대해였다. 강한 맞바람이 머리카락을 연신 휘저어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라이딩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전기자전거 라이딩을 끝낸 후, 뿌듯한 감정이 밀려왔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내가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만 위의 빨간 다리를 자전거로 달려왔다니! 다리를 건너는 내내 무서워 벌벌대는 나 같은 초보도 안전 주행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배려가 있었다. 서로 말은 안 해도 통하는 자전거도로 안의 규칙이 인상 깊었다. 오가는 라이더들이 건네는 미소와 배려 덕에 그들과 함께 완주했다는 동질감마저 느껴졌다. 통행자와 자전거를 배려하는 운전자, 자전거도 사람도 차도 해피하게 건널 수 있는 다리, 그 모든 것들을 그대로 우리 동네로 옮겨오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다리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그 너머 녹아든 배려와 질서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전기자전거를 빌리고 구글맵을 보며 다리를 지나는 동안 길 위의 규칙 덕에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만 보면 금문교 여정이 행복한 순간들로 묘사가 되었지만 소살리토에 도착해서는 상황이 급변했다. 문제는 전기 자전거였는데, 소살리토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갈 페리를 타려는 순간 제지를 당했다. 오직 자전거만 동반 탑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전기 자전거의 전기가 소진돼 전기 자전거는 무거운 자전거가 되었다. 당황하는 우리를 보고 로컬 사람들이 전기 자전거를 여기 놔두면 <JUMP>에서 알아서 수거해가고 수거비를 청구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리고 아직 마지막 배가 남아있다는 것도! 로컬 사람의 조언 덕에 신혼여행의 위기를 하나 넘겼고 하나의 팁을 얻었다. 전기자전거를 이용하기 전에는 배터리를 꼭 확인하자!

벌써 금문교에 당도했다.  사진 속 인물은 손양화.  (양화랑 제공)

◇‘독보적인 희소성’

이틀이라는 짧은 샌프란시스코 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PIER39>다. ‘워런 엘 시몬스(Warren L. Simmons)’라는 사업가가 부둣가였던 <PIER39>를 개발해 1978년 처음 문을 열었는데, 당시 관할기관의 허가를 얻고 지역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5년 동안 설득했다고 한다.

<PIER39>가 단순히 부둣가를 레스토랑과 쇼핑샵 등의 콘텐츠만으로 채웠다면 사실 지금까지 인기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곳이 오래도록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바다사자(Sea Lion)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야생 바다사자를 볼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바다사자들이 <PIER39>에 터를 잡은 계기 또한 흥미롭다. 1989년 로마프리타 지진(Loma Prieta earthquake)으로 샌프란시스코도 지진 피해를 입었는데 1990년 1월 바다사자들이 <PIER39> 정박지로 몰려들었다. 정박지에 머물도록 하고 바다사자에게 먹이를 주는 동안 내부에서는 많은 토론과 논의가 이어졌다.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바다사자들이 놀 수 있도록 거처를 주기로 하고 <PIER39>에서는 바다사자들이 잘 머물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었다.

바다사자들의 놀이터 <PIER39>  (양화랑 제공)

▶Good Morning America에서 다룬 당시 PIER39와 바다사자
 
https://www.youtube.com/watch?v=YKKLEomOpmY&feature=emb_title

▶실시간으로 바다사자를 볼 수 있는 PIER39
 
https://www.pier39.com/sealions/

<PIER39> 홈페이지에서는 바다사자들이 온지 30주년이 된 것을 기념하고 라이브영상으로 데크에서 놀거나 자고 있는 바다사자의 모습을 공개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그들의 비전 또한 남다르다.

‘샌프란시스코와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되자.
Be the reason to fall in love with San Francisco.‘

사실 <PIER39> 공간 자체는 개발이 진작에 된 곳이기에 건물도 노후화되었고 내부 콘텐츠도 샌프란시스코 메인 스트리트에 즐비한 힙한 F&B공간에 비하면 경쟁력이 떨어져 보인다. 이런 모습은 산타모니카같은 부두[PIER]를 둔 인근 도시에서도 비슷한 모습이다. 마치 우리나라 동해나 서해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관광지 같달까. 우리에겐 처음 보는 풍경이니 정겹고 이색적으로 느껴지긴 했으나 소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다사자라는 의외성은 샌프란시스코를 왔으면 무조건 봐야한다는 명분을 주었고, 현장에서 보는 바다사자의 매력은 기대를 충족시켜줬다. <PIER39>를 채운 대부분 사람들도 다른 도시에서 온 로컬 사람이거나 우리 같은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로 야생 바다사자가 도시 인근으로 온 것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일이 최근 뉴스거리다. <PIER39>의 바다사자처럼 뜻하지 않게 새로운 관광자원이 생기는 곳도 있지 않을까.  (계속)

(양화랑 제공)

 

(양화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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