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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독일 통일(73)] 각자의 민주주의가 주장하는 체제 가치의 인정

칼럼니스트 취송 승인 2019.09.16 11:01 의견 0

1925년 사민당의 유럽합중국(Die Vereinigten Staaten von Europa) 제안은 지금도 실현될 수 있다. 현 단계에서 유효한 것은 기본조약의 기초에서 개별적 합의, 조약공동체, 국가연합, 궁극적으로는 연방국가적 통일로 나가는 것이다. 국가연합은 유럽 평화질서의 성취와 유럽합중국의 출범에 기초한 조약체계와 경제공동체 내의 두 개의 주권국가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체로서 유럽평화질서 속에서 민족주의를 극복하며, 동서독 국민들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의해 통일된다고 해서 이것이 1937년의 독일 회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폴란드의 서부 국경을 무조건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1989년 단계에서 통일방안은 유럽평화질서를 전제로 개별조약-조약공동체-국가연합-연방제 통일국가로 크게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사민당은 냉전 해체와 소련의 동의에 의한 통일의 실현이 단기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이는 에곤 바르의 “접근을 통한 변화” 논의의 기본적인 배경이기도 하였다.

이런 판단은 동유럽의 민주화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 말 무렵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사민당은 폴란드공산당(폴란드통일노동당: PVAP)과 ‘유럽의 평화와 군축’(Frieden und Abrüstung in Europa) 공동작업팀(gemeinsame Arbeitsgruppe SPD?PVAP)을 구성하여 폴란드 공사정권이 무너지던 1989년 6월 27일 본에서 작업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는 동서독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동서관계, 유럽, 그리고 독일 통일은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입장에서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과의 교류를 강화하였다. 이는 당내 젊은 세대의 동서독 관계 인식과도 관련이 있었다. 즉, 1980년대 말에 사민당 내에서는 독일통일 문제를 둘러싼 세대간 논쟁이 일어났다. 이는 ‘강령의 타협’에 의해서만 덮을 수 있었다.

1989년 12월 20일 베를린 당대회에서 채택된 사민당 강령은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에서 폐기된 마르크스주의를 사회민주주의의 여러 뿌리 중 하나로 부활시키고 좌파 국민정당(linke Volkspartei)의 길로 가겠다고 선언하면서 사회민주주의와 함께 민주사회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동방정책에서는 폴란드 서부 국경선의 무조건 승인, 유럽 평화질서 내에서 민족 국가의 극복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젊은 세대는 독일통일에 대하여 상당히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통일에 대한 상당한 무관심에서부터 거의 통일 부정까지 전개되었다. 1989년 이전 이미 오스카 라퐁텐이 그 ‘중심인물’인 쿠르트 슈마허 세대 – 빌리 브란트 세대에 이은 이 ‘손자 세대(Enkelgeneration)’가 여론에서 사민당의 이미지를 결정했다.

이런 당내 분위기 속에서 사민당은 사회주의통일당 창당 40주년에 축하 대표도 파견하는 등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과 교류를 강화하였다. 이런 흐름의 일환으로 1986년 3월 사민당의 기본가치위원회(Grundwertekommission)와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 중앙위원회 산하의 사회과학연구소(Akademie für Gesellschaftwissenschaften)가 사민당 측에서 에플러, 뢰벤탈 등이 참여한 공동실무팀을 구성하였다.

이들은 4차례 회담을 가진 후에 1987년 8월 “이념 투쟁과 공동 안보”(Der Streit der Ideologien und die Gemeinsame Sicherheit)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는 평화유지가 모든 정책의 기본요건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위하여 대화, 군축, 타협, 이익의 조정, 데탕트 과정의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화, 군비경쟁 종식, 긴장완화는 양 체제, 모든 국가, 인류에 이익이 된다는 전제 하에 유럽안보협력회의 틀 안에서 핵무기 폐기와 군축에 의한 유럽평화질서 구축을 위하여 동독과 서독 양 체제가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공존 속에서 체제경쟁을 하자는 것이다.

상대 인정은 서구의 민주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바탕을 둔 동독의 민주주의가 서로 주장하는 각 체제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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