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프랑스와 스웨덴을 사례로 들면서 감세와 복지축소가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듯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두 나라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국민부담률과 공공사회복지지출을 자랑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두 나라는 지나치게 큰 정부를 적당히 큰 정부로 만든 적은 있어도, 우리나라처럼 작은 정부로 만든 적은 없습니다. 따라서 프랑스와 스웨덴은 우리가 뒤따를 선례가 아닙니다. 40kg으로 저체중이었다가 겨우 5kg 찐 사람이, 100kg이 넘는 과체중이었다가 80kg으로 체중을 낮추고 건강해진 사람을 보고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셈입니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르츠 개혁은 세금과 복지 규모를 줄였다기 보다는, 세금을 걷고 복지를 보장하는 방식을 효율적으로 개선한 것에 가깝습니다. 하르츠 개혁의 핵심은 감세와 복지 축소가 아니라, 경쟁 활성화와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르츠 개혁은 충분한 사회 안전망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 개혁입니다. 실제로, 하르츠 개혁 이후에도 독일은 높은 국민부담률과 공공 사회복지지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역시 감세와 복지 축소를 지지해 주는 사례가 아닙니다. 분명, 아일랜드는 프랑스, 스웨덴, 독일과 다르게 국민부담률을 확실히 낮추고 높은 경제 성장률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아일랜드는 동질한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원만하게 타협하며 공존을 약속한 나라입니다.
아일랜드 정부는 세금을 낮추고 경제를 개방해서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대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재분배 장치를 마련해서 경제 성장의 성과를 넓게 퍼뜨리려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아일랜드의 상대적 빈곤율은 우리의 3분의 1 수준이고, 상대빈곤 개선율은 우리의 3배가 넘습니다. 아일랜드는 사회적 타협의 모범 사례이지, 감세와 복지 축소의 모범 사례가 아닙니다.
애초에, 아일랜드는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지리적 이점을 누리는 나라입니다. 아일랜드는 미국, 영국, 유럽 연합 등 서로 갈등이 적은 경제 대국 사이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투자하고 무역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극동의 화약고 속에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에 언제 등이 터질지 모르는 우리나라와는 사는 세계가 다릅니다.
모든 과학 이론은 '특정 조건'에서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려 줄 뿐, '다른 조건'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을 지지해 주지는 않습니다. 조건이 다르다면 그 조건에 맞춰서 다른 가설을 세우고 다른 실험을 계획해야 합니다.
경제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경제학은 물리학처럼 통제된 실험으로 이론을 증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 그리고 금속처럼 일정하게 반응하지 않는 인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더 많은 주의를 요구합니다.
프랑스, 스웨덴, 독일, 아일랜드는 우리와 너무 조건이 다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따를 만한 모범 사례가 될 수 없습니다. 저 나라들을 사례로 들면서 감세와 복지 축소를 주장하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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