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지방분권_이야기(09)] 더 이상 “국가 〉개인” 시대가 아닙니다

1부: 21세기 지방분권 #06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2.08.22 00:04 의견 0


사실, ‘지방분권’은 꽤 오래된 개념입니다. 이미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지방분권을 시작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나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얼마 후(1952년)부터 지방자치제도를 실시했으나, 군부 독재로 중단됐습니다. 중앙집권화가 심화되면서 애국심이 그 어떤 가치보다 강조 혹은 강요 됐습니다. 국가·사회의 발전이 개인의 발전보다 앞서야 한다는 공식이 만들어진 것이죠.

최근에도 한 대선 후보는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는 것이다!”(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다른 정당 후보는 “국가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한다!”라고 또 다른 선언을 했고요. 두 후보 선언을 두고 시비를 따질 수는 없으나, 분명 과거와 비교할 때 ‘국민’의 위상이 부상한 건 사실인 듯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가 〉국민”이라는 공식이 존재합니다. 여전히 ‘국위선양’이라는 말이 큰 위력을 떨치고 있을 정도니까요. 올림픽 등과 같은 국제 스포츠 경기를 볼 때면, 항상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선수보다 위에 있습니다. 선수들도 국가와 국민을 먼저 앞세우고요. 애국주의를 강조한 다양한 형태의 국가 우선주의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정도는 점차 옅어지고 있습니다.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여전히 좋지 않습니다), 일본의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서 괜찮은 신상품이 등장하자 언제 불매를 했냐는 듯이 다시 줄을 서서 구매하고 있습니다. 과거라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입니다. 반대로 혐한을 선포한 일본 국민들도 우리나라의 좋은 제품 앞에서는 혐한이 ‘협한’으로 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이제 국가를 앞세웠던 시대는 과거 유물의 틈 사이에 낀 이끼처럼 느껴집니다. ‘코스모폴리탄’, ‘지구촌’, ‘세계화’라는 언어가 등장한 지도 한 세대가 지나고 있고요. 단, 사람에 따라서 변화의 체감은 다를 것입니다. 현재 60대 이상 세대가 20대를 바라본다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의 심정을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국가를 우선한 애국주의가 옅어지니, 국가 성장이 곧 개인의 발전이라는 공식도 깨졌습니다. 예를 들어 ‘빈부의 격차’를 들 수 있습니다. 과거 20:80 ‘파레토 공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1:99가 등장했고, 최근에는 0.1:99.9가 등장했습니다.

GDP가 올라가면, 개인의 삶의 질도 보장을 받아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한 것이죠. 물론, 절대적 빈곤은 많이 해소됐습니다. 그러나 상대적 박탈감은 어떤 시대보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최근에 2030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니,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0%를 넘었습니다. 40대 이상과 비교할 때 꽤 높은 비율이었습니다. 국가는 성장해도, 개인의 성장과 발전은 별개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국가가 성장한다고 해서 개인의 성장과 발전이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고 해서,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일부는 그 혜택을 입어 경제적으로 나아졌지만, 대다수는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주머니 속에 좀 더 좋은 스마트폰을 넣고 다닐 수 있겠지만요.

반면에 개인의 성장과 발전이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쉬운 예로 ‘강남 스타일’의 ‘싸이’나,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BTS(방탄소년단)는 한류 폭풍을 전 세계적으로 일으켰습니다.

아울러 현재 세계적인 플랫폼 기업의 대표들은 국가 최고 통수권자와 비교했을 때, 절대로 그 위상이 낮지 않습니다. 아마도 새로운 세대는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가 되기보다 트렌드를 이끄는 기업의 대표가 되는 게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최근에는 유명 유튜버나 메타버서(메타버스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인, 기업 총수 등에 대한 막연함이 아니라 당장 우러러 볼 수 있는 유명 인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미 유명 유튜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유명인 순위에서 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동체’를 지양하고, ‘개인주의’를 지향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변화하고 발전한 개인을 담을 수 있는 그릇, 즉 진화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어떤 경우든 개인의 발전이 반드시 집단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며, 그 반대도 아닌 세상이 됐습니다. 그래서 개인과 공동체가 상생하고 서로 견인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제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는 집단 논리는 새로운 세대에게는 어색한 외래어처럼 낯설게 느껴질 뿐입니다. 결국, 새로운 공동체는 국가 공동체가 조금 더 나눠진, 지역 공동체(좀 더 작은 단위)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정치 제도가 지방분권이고요. 이미, 많은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제도지만 우리나라는 이제야 서서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발전하게 될 지방분권 시대의 주역은 당연히 현재 청소년들이고요.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