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통 연극 무대에는 검은색 옷과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조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쿠로고’(黒衣;くろご)라 부르는데, 관객들은 그들이 없는 것으로 전제하고 관람하며 이를 관객들의 매너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일본 사회에서 ‘보이지만, 보이지 않아야 하는 존재’로 취급받으면서 ‘쿠로고’와 같이 인식받는 존재가 있다. 주로 ‘야쿠자’라고 불리는 폭력단이다. 역사적으로 야쿠자는 도박장 운영 조직에서 출발한 ‘바쿠토(博徒)’와 과녁(的)이 있는 사행성 게임을 운영하는 점포조직인 ‘테키야(的屋)’, 번화가의 불량 청년 집단인 ‘구렌타이(愚連隊)’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동네의 자율 소방단, 혹은 자칭 자경단 역할을 하면서도 화투에서 합이 ‘망통’인 “8(や), 9(く), 3(ざ)”처럼 가장 안 좋은 존재, 쓸모없는 존재라는 의미로 인식되는 한편, 일본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내각부 여론조사(1993)에 의하면 폭력단원(야쿠자)으로부터 부당한 금품요구 혹은 민폐 행위 피해는 대부분이 없다(92%)면서, 만일 야쿠자로부터 요구당했을 때 절반은 거절(48.3%)하지만 절반은 응할 것(46.7%)이라고 했고, 그들의 요구에 응한 이유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46.4%)과 경찰의 해결 능력에 의문(21%)이 있다고 답변하였다.
그런데도 90년대 초반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주의해야 할 야쿠자 관련 사항이 있었다. 당시 ①“흰색 혹은 검은색 3천CC 벤츠, 그리고 시커먼 선팅을 한 차를 타고 다닌다” ②“야쿠자는 일반 시민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지만, ‘친피라’(잔챙이)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③“상가 점주가 주방 아주머니 등을 불법체류자로 고용하고 있는 경우, 고객과 문제가 발생해서 경찰에 신고하면 점주도 당할 수 있어서 문제없이 해결하는 야쿠자를 선호한다”라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 장르의 하나인 ‘형사 드라마’(刑事ドラマ)가 많이 유난히 많이 제작 및 방영된다. 2020년 초 시청자 많은 주요 시간대(19:00~23:00시)를 살펴보면 16개 방송 중 ‘형사 드라마’가 6개로 전체의 37.5%나 차지하고 있다. TV 주요 시청자들이 중․노년층이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이 폭력물을 선호하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사회 내에서도 모호한 존재였던 야쿠자는 1992년 ‘폭력단 대책법’과 2011년 10월까지 전국 도도부현에서 정비된 폭력단 배제조례에 따라 몰락의 전기를 맞는다. 그들은 예금계좌를 만들 수도 없고, 보험 가입도 안 되며, 자동차는 물론 임대주택도 빌릴 수 없다. 특히 기업 간 계약을 체결할 때는 사회규범 일환으로 ‘반사회적 세력 계약서’(反社会的勢力 誓約書)에 서명하여 야쿠자와 같은 반사회적 세력과 관련이 없고 협력도 하지 않을 것임을 서약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등 그들의 입지는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폭력단 추방운동추진 도민센터와 경찰은 2020년까지 10년간 약 5,900명이 폭력단으로부터 빠져나온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가운데 취업할 수 있었던 사람은 전체의 3.5%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공개된 ‘야쿠자와 가족’ 이란 일본 영화에는 아버지를 잃고 방황하던 주인공 ‘겐지’가 야쿠자 두목의 목숨을 구해준 것을 계기로 야쿠자의 길에 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이때 부두목이 야쿠자에 대해 “의리․인정을 중시하고 남자로 만들어 끝까지 가는 것(漢を磨き漢を極める)”이라고 정의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주인공 겐지가 살인으로 감옥에 갔다 14년 만에 나오니 야쿠자는 장어 치어를 잡아 돈을 모으거나 건설 현장의 인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야쿠자를 그만두어도 ‘5년 룰’이라는 규제 때문에 구좌, 집, 보험 등의 제한을 받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특히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주인공 겐지가 야쿠자 두목을 구해주는 식당이 ‘어머니(オモニ) 식당’이다. 영화에서도 주문표 옆에 각종 한글 표식도 있었다. 사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 혹은 재일한국인을 줄여 ‘자이니치’(在日、ざいにち)라고 하는데 이들을 부를 때 연상되는 것이 ‘파친코’, ‘야쿠자’ 등이다.
영화에서는 “야쿠자는 인권도 없다”라는 대사가 있는데 야쿠자가 조직에서 이탈해도 그들은 인사이더는 될 수 없듯 재일교포 역시 귀화를 하더라도 교포인 것이 밝혀지면 바로 아웃사이더로 떠도는 것이 일본사회다. 이에 대한 반발로 유력 정치인들이 ‘자이니치’ 사업가들과의 관계로 이어지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야쿠자가 일본 사회의 ‘쿠로고’인 것처럼 재일교포도 아웃사이더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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