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금투세 폐지, 대한민국 헌법의 초심에서 멀어지는 결정
칼럼니스트 이완
승인
2024.11.08 10:43
의견
0
세금 혐오가 또 한 번 이겼다. 11월 4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금투세 폐지에 동참했다. 국민의힘은 11월에 함께 논의하자며 기뻐했다. 기존 금투세의 단점을 개선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민주당은 일부 목소리 큰 사람들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달성한 성과를 무너뜨렸다.
사소한 일이 아니다. 거대 양당은 지대추구 분위기를 부추겼다. 변덕을 부려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건국 정신을 정면으로 거슬렀다.
흔히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했다고 이야기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굉장히 모호한 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좌파, 공산주의자에 맞서 시장 자유를 수호하는 것으로 통한다. 그래서 자칭 자유민주주의자들은 항상 자유방임과 감세를 요구한다.
물론 공산주의 혁명을 거부하는 것은 우리 건국 정신이 맞다. 중국이나 북한이 보여주는 공산주의는 결코 우리나라에 어울리지 않는다. 광복 직후 첫번째 헌법을 제정하는 데에 참여한 사람은 좌파, 우파를 가리지 않고 공산주의에 뚜렷하게 반대했다.
문제는 시장 자유다. 대한민국헌법 제1호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제84조.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어느 사회주의 정당의 강령 같아 보이지만 분명 우리나라 첫번째 헌법에 나오는 조항이다. 이 84조는 1962년 12월에 5차 개헌이 이뤄지기 전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 의미는 뚜렷하다. '사회정의가 시장 자유보다 먼저다.'
첫번째 헌법에 이런 조항이 생긴 것은 당시 일반적인 인식 탓이었다. 1948년 3월 15일, '독재와 착취 없는 건국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동전 오기영 선생은 이렇게 썼다. "국가의 권력 그것은 용이하나 이는 개인의 모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권력으로서 용인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는 실제에서 개인의 자유 활동에 유해한 부의 편재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여기 토지개혁, 중요 산업 국유화 등의 경제적 민주평등이 요청되는 것이다."
1940년대 정치인과 지식인 상당수는 공산주의 뿐만 아니라 고삐 풀린 시장경제도 경계했다. 고삐 풀린 시장경제가 경제 권력의 격차와 계급 갈등을 초래해서 결국 갓 태어난 민주공화국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당시 국민의 대표자들은 공산주의와 시장만능주의 사이에서 중도의 길을 걸으려 했고, 이는 좌파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사회 정의를 위한 적극적인 경제 관리야말로 우리의 건국 정신이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사회정의에 얼마나 진심일까. 청년이 희망을 잃고, 중년이 자부심을 잃고, 노인이 굶어죽는 나라가 정의로울 리가 없다.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정부 뿐이고, 정부가 힘을 발휘하려면 넉넉한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권력을 쥔 양당은 근시안적인 감세 경쟁을 반복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종부세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금투세를 없앴다. 조만간 상속세나 부가세에도 손을 댈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