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독일 통일(60)] 4강국 협정에 이어진 동서독 부속협정 체결

칼럼니스트 취송 승인 2019.08.22 05:15 의견 0

모스크바조약 협상을 마치고 서명을 앞둔 시점에서 에곤 바르는 “서독이 서방 동맹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의 승인 하에 협상하지 않았다면 소련과의 어려운 협상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 속에 신동방정책이 추진되고 있음을 말하는 발언이었다.

정확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4강국의 베를린협정 체결 후속으로 5월 카셀에서의 양독 총리 회담 이후 소강상태에 빠진 동서독 양자 간의 협상에 관한 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귀국 후 브란트 총리는 소련이 제안한 유럽안보협력회에 지지 의사를 표명하였으며, 서독 내부의 공산당 합법화 조치를 취했다.

서독 공산당(Kommunistische Partei Deutschlands: KPD)은 1951년 아데나워 총리 정부의 해산 심판 청구로 1956년 서독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해산되었다가 1968년 재창당되었지만 아직 합법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브란트 총리와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회담 후 당명을 독일공산당(Deutsche Kommunistische Partei: DKP)으로 바꾸어 합법화되었다.

공산당 합법화는 동서독 간 협상의 걸림돌이 되던 울브리히트 사임, 베를린에 관한 4강국 협정 타결과 동·서독 협상 지원 약속에 대한 성의 표시였을 것이다. 사실 동·서독의 교섭은 그 해 10월로 접어들면서 속도가 더해졌다.

우선 베를린에 관한 4강국 협정 2장에 따라 동·서독 양자 간의 부속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부속협정은 4강국 협정 이행을 위한 세부 사항을 정하는 것으로서 큰 문제는 없었다.

12월 17일/20일 서베를린 출입 및 서베를린에서 동독 출입 협약(Abkommen zwischen der Regierung der Deutschen Demokratischen Republik und der Regierung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über den Transitverkehr von zivilen Personen und Gütern zwischen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und Berlin (West). Transitabkommen)이란 이름의 부속협정이 타결을 보았다.

이 협약은 서독의 정무장관 에곤 바르와 동독의 서독문제 담당 국무장관(Staatssekretär für westdeutsche Fragen) 미하엘 콜(Michael Kohl) 양자가 협상하고 서명한 것으로서 동독과 서독 간 정부 수준의 최초 협약이었다. 그리고 협약에서 고립된 경계선 부근의 자투리땅은 교환에 의해 해결하기로 한 것에 따라 서베를린과 동독 당국은 교환에 합의하고 동독이 내준 땅이 더 넓다는 주장에 따라 400만 마르크를 지급함으로써 이 문제를 종결하였다.

참고로 에곤 바르와 미하엘 콜은 1965년 베를린 통행협정, 1971년 베를린 통행협약을 협상하였고, 동·서독 기본조약도 이 두 사람이 실질적인 협상 상대였으며 타결도 이 둘에 의한 것이었다. 미하엘 콜은 1973년 서독 주재 동독 대사 그리고 1974년 6월 20일부터는 동독 상임대표로 1978년 6월까지 서독 본에 주재하였다.

동·서독 간의 부속협정의 효력 발생은 베를린에 관한 4강국 협정 3장의 최종 의정서에 정한 날에 발생하기로 한다는 합의 내용에 따라 1972년 6월 3일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외무장관이 최종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효력을 발하게 되었다.

그런데 4강국 협약 서명에 앞서서 모스크바조약과 바르샤바조약 비준 동의라는 국내 절차가 남아 있었다. 연방의회는 1972년 2월 23일부터 두 조약 비준 토의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를 두고 서독 국내 정치가 소용돌이 속으로 치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