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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_이야기(16)] 지방분권, 삼합의 요소(2) 좋은 공무원

2부: 지방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 #02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2.09.15 19:33 의견 0


대한민국 직업 공무원을 가리켜 흔히 ‘철 밥통’이라고도 부릅니다.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최근 정년이 보장된 직업이 거의 없다보니, 정년 보장은 직업을 선택할 때 큰 이점(merit)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봉급은 적어도 수십 년 동안 안정적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고, 진급 경쟁도 사기업과 비교하면 치열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들의 안이한 자세를 비판하는 말로 ‘복지부동’이라는 표현도 등장했습니다. 말 그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발전보다는 현상유지를 선택하고 무사안일주의를 추구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괜히 일을 만들어서 서로 얼굴 붉히지 말자라는 것이죠.

그러나 지방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공무원’들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단체장’이 선출돼 좋은 정책을 실현하려고 해도 혈관과 혈액 역할을 해야 하는 공무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실현할 수 없습니다. 물론, 단체장은 인사권을 갖고 있어서 본인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공무원들을 압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수동적인 태도로 일관한 공무원을 ‘좋은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런 공무원이 실행한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공무원이 ‘좋은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선, 자신의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우수사례 선정 지역을 취재하면서 만났던 공무원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맡고 있는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전문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공무원 조직은 2년 주기로 보직이 순환되는 데, 반해 이들은 최소 4년 이상 같은 일을 하면서 전문성을 키웠습니다. 물론, 같은 일을 계속하면 ‘무사안일’, ‘매너리즘’ 등으로 인해서 일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공무원’은 무사안일하지 않고 사업의 지속성과 발전을 위해서 스스로 발전을 위한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서 모니터로 일하는 게 아니라, 지역 곳곳을 발로 찾아다니면서 주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요. 그런 살아있는 정보를 토대로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하니,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이런 노고가 있어도 성공하지 못하는 사업도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문성 있는 공무원은 자치단체장의 의도로 길러지기도 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두 요소가 동시에 작용할 때도 있고요. 예를 들어서 경상남도 산청군은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서 최대 8년까지 같은 부서에서 일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전문가가 되지 않으려 해도 될 수밖에 없었죠.

증평군은 자치단체장의 의지와 공무원의 자발적인 노력이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고 있었습니다. ‘미래전략실’이라는 부서 신설은 자치단체장의 의지였지만, 담당자들도 추진한 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 전심전력(全心全力)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6년 연속 우수사례에 선정 됐습니다. 당연히 전국 최다 선정이고요.

다음으로 추상적인 요소지만 열정이 있었습니다. 우수사례 선정 담당 공무원들은 업무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 있어도 추진은 사람이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요.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필요한 부분이 바로 열정입니다. 장애물이 있어도 넘어서려는 의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더라도 상황을 헤쳐 나가려는 마음. 이러한 것이 바로 열정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충북 증평군을 상징하는 인물은 ‘김득신’입니다. 아마도 자주 들어보지 못한 낯선 인물일 듯합니다. 이 인물이 바로 증평군의 상징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늦게 자치단체로 조성된 지역이 증평군입니다. 2003년 8월 30일 괴산군에서 분리돼 편성된 자치지역입니다. 인구도 적고, 기반 시설도 부족해서 인근 지방단체에서는 몇 년을 못 버티고 원래 괴산군에 흡수 편입될 거로 예상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은 증평군의 미래를 구상하면서 ‘미래전략실’을 신설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설부서에서는 가장 먼저, 증평군의 랜드마크를 만들어서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했고요.

그때 발견한 인물이 김득신입니다. 김득신은 만학도로 59세 때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증평군이 대한민국 막내 자치단체라고 할 때 이 지역 출신 김득신만큼 어울리는 인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김득신이라는 인물과 관련한 사업을 위해서 중앙 사업에 공모했습니다. 그러나 심사 기준에 못 미쳐서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이쯤 되면, 대부분 사람은 포기합니다. 오랜 기간 애써서 준비했으니, 그 허탈감도 굉장했을 테고요.

하지만, 담당자는 포기하지 않고 심사위원한테 “어떻게 하면 사업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심사위원은 김득신이라는 인물의 공론화를 내걸었습니다. 즉, 김득신이 등장한 책을 찾고, 방송에서 김득신이라는 인물을 다뤄주기를 요구한 것이죠. 심사위원들의 기준은 절대 낮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담당자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담당자는 고서점을 돌면서 김득신이 등장한 책을 찾았고, 이후 김득신을 스토리텔링화 해서 여러 방송국에 보내서 홍보했습니다. 그 결과 공영 방송에서 두 번이나 김득신을 다뤄줬습니다. 모든 조건을 갖췄으니 당연히 이듬해에 김득신은 증평군의 인물로 선정됐고, 관련 사업할 수 있도록 지원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직접 뛰어다니면서 주민을 꾸준히 만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탁상공론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공론을 했으면 바로 움직였습니다. 작은 마을까지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중앙정부의 담당자는 지방자치단체의 실무자들 – 단체장, 공무원 등 – 을 만나면 되지만, 지방자치단체는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해서 시민(주민)을 직접 만나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주민을 만났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고요.

우수사업으로 선정된 사례는 다양합니다. 지역 특산품을 토대로 사업을 이끌어 낸 경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 경우, 지역네트워크 조직 결성을 만든 경우, 도서관 등 하드웨어 등을 조성한 경우 등 지역의 특성을 발견하고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서 사업을 추진해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업을 사무실에서 문서를 만들고 회의실 안에서만 실행했다면 어땠을까요? 실제 주민이 원하는 바람과 지역 실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을까요? ‘수박 겉핥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용은 잘 알지 못하고 겉만 대충 훑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몸속을 흐르는 혈액이 수박 겉핥기 수준으로 지나만 다닌다면, 건강한 삶이 가능할까요? 적혈구, 백혈구, 혈장 등 각 역할을 충실히 이해할 때 우리 몸이 건강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은 인체에 쉬지 않고 흐르는 혈액처럼 지역을 돌면서 많은 주민과 소통해야 합니다. 문을 두드리면 열리는 법이고,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습니다. 주민과 소통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꾸준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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